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를 찾은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모형을 앞세우고 행진하고 있다.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를 찾은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모형을 앞세우고 행진하고 있다. ⓒ 성하훈


지난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주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항의하기 위해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온 문화예술인들로 시끌벅적했다. 1박 2일 일정으로 원정시위에 나선 문화예술인들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 등 정부기관 주위를 돌며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탄압을 비판하고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행진의 앞쪽에 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먹물을 뒤집어 쓴 조윤선 장관의 모형 앞에는 '당장' '구속'이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문화예술인들은 다양한 풍자와 상징으로 이들의 단죄와 퇴진을 요구했다. 빗자루를 들고 행진하다 거리를 청소하기도 했는데, 블랙리스트를 만든 주범들을 쓰레기로 규정해 청소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조윤선 장관은 안팎의 퇴진 요구에 묵묵부답이었다. 특검과 청문회 조사 등을 통해 블랙리스트 관련성이 뚜렷해지고 있고, 문화예술인들이 단체로 세종시에 내려와 항의 시위를 벌이며 사퇴를 요구했지만,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는 보이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만들어 놓고 영화발전 운운하는 장관의 이중성

 문화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 버스 기자회견이 있었던 지난 12월 29일 톱스타상 시상식에 참석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

문화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 버스 기자회견이 있었던 지난 12월 29일 톱스타상 시상식에 참석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 ⓒ 성하훈


앞서 지난해 12월 29일 문화예술인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블랙리스트 버스 계획을 발표하던 날, 조윤선 장관은 '2016 스타의 밤-톱스타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관하는 행사로 한 해의 모든 시상식을 마무리하며 열리는 영화계의 연말 행사였다.

블랙리스트 논란이 커지고 있던 상황에서 조윤선 장관의 참석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조 장관은 축사를 통해 "한국영화가 더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영화발전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형식적인 인사말이라고 해도 블랙리스트를 통해 영화 발전을 가로막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장관의 축사로는 이중적이었다. 당일 오전에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조 장관은 배우상을 수상한 곽도원 배우의 시상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이 또한 한 편의 희극 같았다. 곽도원은 <곡성>으로 수상했지만 김기춘 전 실장 등이 불편해 한 것으로 알려진 <변호인>의 주요 배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연상호 감독은 이런 분위기가 불편했는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주 짧은 수상 소감만 밝히고 단상을 내려갔다.

행사를 주최한 거룡 배우협회장이 나서 "요즘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장관님은 아니라고 하신다"며 조윤선 장관을 감싸는 발언과 함께 박수를 요청하기도 했으나 호응은 없었다. 

블랙리스트는 여러 독립영화관들을 문 닫게 했고, 정치사회 비판적 영화를 상영하는 배급사를 목 졸라 폐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장관의 '영화발전 지원' 운운은 진정성을 얻기 힘들었다.   

문체부 내부도 술렁... 더민주 의원들은 자진사퇴 촉구

 지난 11일 블랙리스트에 항의하기 위해 정부세종청사를 찾은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체육관광부 앞을 지나 행진하고 있다.

지난 11일 블랙리스트에 항의하기 위해 정부세종청사를 찾은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체육관광부 앞을 지나 행진하고 있다. ⓒ 성하훈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조 장관의 의지와는 다르게 문체부 내부에서도 장관직 유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나 장관의 사퇴는 피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게 내부 직원들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특검에 문체부 직원들이 불려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는데, 우리가 잘못한 것은 맞기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 

또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등 전직 고위인사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먼저 밝혀준 덕분에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었다"면서 "과거의 나쁜 것을 털고 가라는 선배들의 배려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 주변에서 진행된 문화예술인들의 시위에 대해서도 "안에서도 시끌벅적한 소리가 다 들렸다"며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는 반응을 전했다.  

13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표현의 자유 특별위원회 유승희 위원장과 이재정 박주민 우원식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갖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여 헌법정신을 유린한 조윤선 장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조윤선 문체부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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