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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단단장 관련 아사히 신문 사회면 기사. '한국민단 단장, 소녀상 철거를 호소', '재일동포가 가장 큰 피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민단단장 관련 아사히 신문 사회면 기사. '한국민단 단장, 소녀상 철거를 호소', '재일동포가 가장 큰 피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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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재일동포들의 공통되고 절실한 마음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 관계 악화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재일동포다."

지난 1월 12일 재일동포 단체 중 하나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아래 민단)의 신년회에서 민단 단장인 오공태씨가 위와 같이 발언했다.

지난해 12월,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부산 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자 일본 측은 "지난해 '위안부' 협의로 10억 엔을 지불한 게 보이스피싱 당한 것 같다", "일본이 성의를 보였으니 이번에는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할 때다"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측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가 뒤바뀐 듯한 발언을 일삼고 있는 가운데, 재일동포 단체의 하나인 민단의 대표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게다가 이 자리에는 일본의 정계 관계자들도 다수 참석했다고 한다- 한 이 발언은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일본 야후 홈페이지에 민단 단장의 소녀상 철거 발언이 메인 페이지의 톱 뉴스로 올라와 있다.
 일본 야후 홈페이지에 민단 단장의 소녀상 철거 발언이 메인 페이지의 톱 뉴스로 올라와 있다.
ⓒ 인터넷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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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즉각 이 발언을 보도했다. 다음 날인 13일에는 포털 사이트인 일본 야후 메인의 톱 뉴스로 등장할 정도로 크게 다뤘다. 마치 일본에 있는 한국인 모두가 부산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것처럼 알려졌다. 

이에 분개한 재일동포들은 민단중앙본부에 전화하거나, 오공태 단장 개인 SNS에 글을 올리는 등 항의 활동을 전개했다. 또 본인의 SNS를 통해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우리는 부산의 소녀상을 지지합니다'는 해시태그를 달고, 해당 문구가 적혀있는 인쇄물을 들고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있다. 이 모든 운동은 평화의 소녀상 철거가 결코 재일 동포 전체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필자도 13일 민단본부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이번 발언이 민단 중앙 간부 소수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에 지나지 않고, 민단의 일반 단원들과는 어떤 논의나 토론도 거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또한 "민단은 재일동포 전체를 대표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오공태 단장의 발언이 마치 일본에 있는 동포 전체의 뜻인 양 알려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즉각적으로 발언을 취소하고 동포 사회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참고하겠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이런 상황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 123명이 뜻을 모아 민단에 대한 항의문을 발표했다. 특별한 단체의 조직 없이 발표된 이번 항의 성명은 2~3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만들어졌다. 그만큼 많은 재일 동포들이 소녀상 철거를 바라기는커녕 오히려 소녀상을 설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루빨리 부당한 한일 협의를 폐기하고 재협상이 이뤄지길 바란다.

항의문엔 한일 협의 자체가 외교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동시에, 문제의 발언에 대해 ▲ 발언을 즉각 철회하고 재일동포에게 사죄할 것 ▲ 이번 발언으로 다시 한번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한 것에 대해 할머니들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 사회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

민단단장 발언 이후 재일동포 사이에서 부산소녀상을 지지한다는 페이스북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민단단장 발언 이후 재일동포 사이에서 부산소녀상을 지지한다는 페이스북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 페이스북 사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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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한일 문제에 대해 목소리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지난 90년대 말 북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일본인 납치 사실인정으로 시작된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정신적, 물리적 폭력과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헤이트스피치(증오 집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조선학교 학생들은 지난 민주당 정권이 약속했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도 배제되어,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만으로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SNS를 통해 부산 소녀상 지지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한 김우기씨에 따르면,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등을 일본 넷우익이 무단으로 전제하면서 온라인에서 악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재일동포들이 더 살기 힘들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의문에 적힌 내용과 같이, '위안부' 문제의 참된 해결, 즉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법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는 한일 양 시민 및 재일동포의 '공통된 간절한 바람'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재일동포들이 안위를 위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을 유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이를 은폐·왜곡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항의문과 항의 활동, 소녀상 지지 활동이 말해 주고 있다.

민단은 이런 동포들의 뜻을 깊이 헤아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로잡아 역사의 죄인으로 남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일본의 정치권, 언론 등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이런 발언을 확대, 악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구실로 삼아선 안 된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이 신년회에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 자격으로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참석했다고 한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최우선 청산 대상자 중 하나인 정치인이 한국의 정계를 대표한답시고 이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참 부끄럽다. 또 이런 정치인이 참석한 자리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민단이 시대의 흐름을 읽고 동포 사회의 아픔과 요구를 제대로 담아냈을지 의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 뉴스에도 중복 송고할 예정입니다.



민단단장



태그:#부산 소녀상, #재일동포 , #민단단장,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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