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교 역사 수업은 국정교과서로 해야 한다."

홍준표 대선후보의 공약이다. 지난달 28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회관에서 열린 교육정책간담회에서 이렇게 천명했다. 반면 군소 후보를 제외한 지지율 상위의 다른 후보들은 일제히 "국정 역사 교과서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홍 후보를 제외하고,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든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다. 탄핵과 함께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밀어붙였던 이 국정교과서, 그런데 홍준표 후보는 왜 국정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할까.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좌파이념 교육은 잘못됐다."
"국정교과서는 정부가 당당히 대처하지 못하고 숨어서 집필한 것이 문제다."
"통설을 바탕으로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시켜야 한다."
"좌파나 친북 단체가 주장하는 내용은 대학 가서 학문적으로 논의하는 게 맞다."
"제가 집권하면 국정교과서는 한국사 통설을 바탕으로 공개적으로 새로 만들 것이다."

교총 간담회에서 홍 후보가 한 관련 발언들이다. 요약해 보자. 홍 후보의 주장은 국정교과서 이전 역사 교과서들은 '좌파적'이고, 현 국정 교과서는 부분적으로만 문제가 있으며, 통설을 바탕으로 한 국정 교과서를 공개적으로 새로 만들 것이니 '좌파', '친북' 역사 교육은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배워라 등으로 갈무리할 수 있겠다.

정당한 주장 같은가. 아니, 살짝 헷갈리시는가. 그런 독자들을 위해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로 박근혜 정권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백승우 감독이 나섰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 <국정교과서>를 통해서다.

역사학자들과 역사 교육자, 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국정교과서가 왜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논박하는 이 다큐는 대선 후에라도 홍 후보가 꼭 관람해야 할 '국정교과서 반대'의 당위들이 실려 있는 영상 교재라 할 만하다.

홍준표 후보의 "국정 교과서 강행" 논리, 완벽 반박

ⓒ 아우라픽쳐스


간단하다. 결국, 홍 후보가 천명한 논리의 거울상이라 보면 맞다. 그러나 단순히 '좌우 프레임'의 반목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국정교과서>는 "세계관이란 무엇인가"란 단순한 듯 비범한 감독의 질문에서 출발해 "우리는 왜 21세기에 국정교과서를 강요받아야 하는가?"의 연원을 차근차근 되새겨 간다.

비교 대상은 일단 일본의 '후소사 교과서'다. 일본 후소사(扶桑社)가 2001년 발간한 이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전쟁 미화, 역사 왜곡 등으로 한국 내에서도 큰 논란이 됐다. 일본 내 학교에서 채택률 0.039%에 불과했던 후소사 교과서를 국내에서 벤치마킹(?)한 것이 바로 지난 2013년 논란 속에 발간된 교학서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채택률은 0%와 함께 역사 왜곡과 부실 논란으로 학계에서 철퇴를 맞았지만 이 교학서 교과서는 결국 '국정 역사 교과서'로 부활했다.

사실 간명하다. 후쇼샤 교과서=교학사 교과서=국정 역사교과서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건국절 논란'과 마찬가지로 '누가, 왜 역사를 다시 쓰고 싶어 하는가'란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 주체는 친일파를 '건국 세력'으로 미화해야 하는 정치 세력, 학생들을 볼모로 잡아 역사 다시 쓰기에 나선 세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 '뉴라이트'라는 한 줌이었던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하는 권력자를 만났다. 슬프게도, 파면된 이후 구속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그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인 권력의 꼭짓점에 있었다. 친일파였던 자기 아버지를 미화하기 위한 '사적인' 몸부림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배경을 <국정교과서>는 다수 역사학자의 입을 빌려 낱낱이 파헤친다. 편파적이지 않으냐고? 백승우 감독은 그러한 취사선택이야말로 감독의 시선이고, 다큐멘터리의 일반적인 방법론이라는 입장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그래서

ⓒ 아우라픽쳐스


그렇게, 감독이 묻고, 역사학자들이 답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 등 역사학자들의 인터뷰는 <국정교과서>의 기본 토대다. 왜 '건국절'을 제정하려 했던 박근혜는 역사 다시 쓰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나, 뉴라이트는 왜 그렇게도 '친일파'의 위상 재정립에 나서나, 국정 역사교과서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가 이 역사학자들에 의해 '진술'된다.

진술이 끝일 순 없다. 결국 세계관의 문제고, 그 세계관은 지금도 쓰여 나가고 있는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막아야 하는 당위다. 이를 위해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정부는 물론 그 이전부터 '친일 미화'나 '역사 왜곡'에 매달렸던 이들이 써 내려간 현재진행형의 폐해를 끊임없이 소환한다.

세월호 참사부터 제주 4.3 학살과 강정 사태, 한일 위안부 합의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시위 당시 백남기 농민 사건까지. 백승우 감독이 보고 느낀 박근혜 정부의 사건·사고들은 영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오버랩'된다.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연출 의도에 부합하는 '현재'적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릇되고 편향된, 심지어 제 이익만 추구하는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벌어지는 참상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참상들은 세계관이란 측면에서 국정 역사교과서의 강행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국정교과서>도 언급하듯이,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나치 전범들을 철저하게 단죄했고, 지금도 경계 중인 독일의 역사와 현재와는 다른 퇴보와 역행으로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 아우라픽쳐스


그래서 <국정교과서>가 눈길을 돌리는 것은 작금의 청소년들이다. "어른들도 청소년 시절이 있지 않았냐"는 이 10대들이야말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했던 이들이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이들일 것이다. 놀랍게도 진일보한 토론 역사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현재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UN 청원을 성사시킨 청소년들의 얼굴은 그나마 관객들이 숨통을 틀 수 있는 여유와 희망을 전해 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던 독재자의 테제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통해 이 끔찍한 횡포를 근거리에서 경험해야 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 그들과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역사란 무엇인가', '세계관은 왜 중요한가'와 같은 물음을 함께 고민할 때다. 홍준표 후보처럼 큰 고민 없이 국정 교과서를 강행하려는 기득권층의 횡포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조기 대선 이후 일반 관객들에게 선보일 이 다큐멘터리에 역사계와 교육계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고. 지난 주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이 다큐멘터리에 역사계와 역사 교육계에 종사하는 관객들이 유독 관심을 보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백승우 감독과 제작사 아우라픽쳐스는 <천안함 프로젝트> 이후 또 하나의 논쟁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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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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