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는 1979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마흔을 목전에 뒀다. '불혹'이란 수식이 아깝지 않은 나이다. 가수도, 연예인도, 셀러브리티라 불리는 인종들도 종국엔 사람이다. 경사보다 조사가 더 익숙해질 나이다.

'전직 요정'이어도, 전직일 뿐이다. 핑클이 데뷔한 게 딱 20년이다. 그 사이, 이효리는 솔로로 큰 성공을 거뒀다. 드라마 주연을 맡아서, 시쳇말로 '말아' 드시기도 하셨다. 예능인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는 결혼을 했다. 제주도로 내려갔고, 농사도 짓고 요가도 했다. 해고 노동자도 응원했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나이가 전부는 아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가 관건일 터다. 29일 선공개한 신곡 '서울'도 그런 이효리의 시각이 감지되는 곡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효리는 끊임없이 관심사와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와중에 '이효리'라는 자신의 고유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중은 각자 다른 의미로 이효리를 계속 궁금해 한다.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나온 이효리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나온 이효리 ⓒ JTBC


"사실은 제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기사를 보다가 그런 가사가 떠올라서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거창하게 제가 막 이렇게 할 수는 없고. 돌아가시는 분들에게 꼭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어떤 권력이나 무슨 기업에 맞서 싸우시다가 힘 없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게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그분들에게 뭔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되게 큰데 그걸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제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곡으로 한번 표현해 보자 해서 이 곡을 썼고 마침 이적 오빠도 너무 좋다 같이 도와주고 싶다 해서 듀엣곡을 같이 부르게 됐어요."

최근 6집을 공개한 이효리가 29일 손석희와 만났다. JTBC <뉴스룸> 인터뷰를 통해서다.
이효리의 현 위치가 궁금한 이들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었다. 아, 그에 앞서 위안부 할머니를 떠올리며 썼다는 가사가 들어 있는, 선배 이적과 함께 부른 '다이아몬드'라는 곡에 들어 있는 가사는 이러했다.

'그대여 잘 가시오. 그동안 고생 많았다오. 그대여 편히 가시오. 뒤돌아보지 말고 가시오.'

1979년생 이효리의 오늘

이효리가 한참 솔로로 주가를 올리고, 예능에서 활발하던 2010년대 초반, 전화로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평소 자주 인터뷰를 하지 않는 터라 그렇게라도 멘트를 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제는 당연히 예능 출연과 솔로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국제전화였던가.

해외에서 화보 촬영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효리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차분하고 진지했던 걸로 기억한다. 달변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전달하는데 능했다.

단어 하나하나가 세련됐다거나 문장이 유려하지는 않더라도, 당당하고 또 훨씬 더 진중했다. 단답형 답으로 당황스런 순간을 연출하기도 했다. 인터뷰어에게는 필요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이효리의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해 식상한 질문들도 많았을 것이다. '솔직하구나'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인터뷰 직후, '아, 이 사람. 생각보다 훨씬 프로페셔널하고 영리하구나'란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이날 이효리를 처음 만난다던 손석희 앵커도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손석희 앵커는 (유독 여성 인터뷰이에게 강한 면모를 덜 보이기는 하지만) 이효리의 솔직한 답변에 머쓱해 했다. 이를 테면, 이런 순간들.

"한 가지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히기는   싫다. 어떤 뜻인지는 알겠는데 이거 가능하지 않은 얘기가 아닌가요, 혹시?(손석희)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저에 대한 욕심은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냥 그게 제 욕심인 것 같아요." (이효리)

"예, 질문한 사람을 굉장히 머쓱하게 만드는."(손석희)

불가능한 것들도 꿈을 꿀 수 있고, 그러고 싶다는 마인드는 비단 '이효리'라서만 가능한 건 아닐 것이다.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나온 이효리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나온 이효리 ⓒ JTBC


마음이 가는 대로, '이효리'처럼

"못할 말은 아니잖아요."

이효리가 손석희를 또 당황시킨 한 마디다. 대개의 인터뷰어가 싫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단문식 답변, 길고 긴 질문을 한 인터뷰어를 무장 해제시키는 그 답변 유형을 이효리가 또 해냈다. 손석희 앵커가 작심하고 준비한 듯한 장문의 질문은 바로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지금 이런 얘기를 저희가 나누고 있습니다마는.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동물보호, 채식 또 옛날에 대우자동차 때는 그분들을 위해서 또 애도 써주셨고. 그다음에 다른 어떤 사회적 발언.

지난번에 이 자리에 바로 그 자리에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가 왔었는데. 그분도 그런 정치적 발언도 좀 하고 그래서 질문을 하고 했더니 굉장히 인상깊은 답변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건 굉장히 당연한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저급하거나 비열한 단어를 쓰지 않는다. 내가 왜 그 얘기할 권리가 없느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못할 말은 아닌 거고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는 거다. 아마도 이효리의 그 답변에는 '그러니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괄호가 쳐져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뉴스룸>과 손석희라는 인물에게 부여되는 상징성에 짓눌리지 않았던 이효리는 이에 대해 "참여하고 싶으니까"라며 이렇게 부연했다.

"그냥 마음이 가니까. 말하고 싶은 건 참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그래서 그냥 한 것 같아요."

보통의 삶의 궤적들도 그러하지 않은가. 결국 마음이 가는대로, 그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만나는 사람도, 일상의 터전도, 몸담는 일도 바꾸어 나가는 것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기도 하고,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도 하고, 그래서 자신의 일상과 일을 변화시켜 나가기도 하는 것이고.

 JTBC <효리네 민박>의 한 장면. 캐스팅의 묘와 기획 의도가 잘 맞아떨어진다.

JTBC <효리네 민박>의 한 장면. ⓒ JTBC


이효리가 새로 시작한 예능인 JTBC <효리네 민박> 첫 회. "내가 벌써 마흔"이라며 "마흔 동안 내가 뭘 했지"라는 투로 아쉬움을 표현하던 이효리에게 남편 이상순은 "마흔넷인 나보다 더 많은 걸 했지"라고 다독여 줬다.

그렇다. 셀러브리티라고 불리든, 가수이자 '전직 요정'이라 불리든, 이효리는 이미 많은 것을 성취해 냈다. 여성들에게는 닮고 싶은 '언니'이자 '친구', '동생'이고, 남성들에게는 과거의 요정이자 현재의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친근한 유명인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그렇게 이효리는 민박집도 열고, '서울'도, '다이아몬드'도 부르고, 위안부 할머니도 걱정하며 산다. "마음이 가니까"하고, 그러면서 불가능한 것도 꿈꾸면서 산다. 그렇게 이효리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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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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