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진리를 찾아 떠나 얻은 것을 바탕으로 저만의 예술을 하고픈 여행가 만 18세 김하온입니다."

자기소개부터 남달랐다. 이제 겨우 고2인데 '진리' 운운하는 게 어쩐지 겉멋 가득해 보이기도 하고 참 의심쩍은 친구다. 당시 방송에 출연한 멘토들과 참가자들도 하나 같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가짜 아니고 '진짜'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달 23일 첫 방송한 Mnet <고등래퍼2> 참가자 고교 2학년 김하온 학생의, 모두를 놀라게 한 싸이퍼 가사를 살펴본다.

명상나라에서 온 이상한 여행가

김하온 Mnet <고등래퍼2>에 참가한 고등학교 2학년 김하온 학생.

▲ 김하온 Mnet <고등래퍼2>에 참가한 고등학교 2학년 김하온 학생. ⓒ Mnet


"김하온 학생... 취미가 명상이에요?"

MC 넉살의 질문에 여기저기서 또다시 웃음과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김하온은 평온하게 '명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명상이라 함은 제 안을 텅 비우기 위함인데요. 저희가 살면서 굉장히 많은 자극을 받거든요.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과 아무튼 그런 것들이 몸에 쌓이다 보면 직관적인 느낌이 굉장히 무뎌지고 사람이 좀 부스스해지거든요. 그럼 그때 명상을 하면 사람이 좀 더 직관적이게 되고 좀 더 저에게 찾아오는 영감을 쉽게 잡아챌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설명에 "명상나라에서 오신 분인 줄 알았다", "저 친구 템플스테이 다녀온 것 같다" 등 멘토들의 리액션이 이어졌고, 학생 참가자들은 킥킥거렸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아주 명료하게 설명해냈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래퍼2>에 참가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묻는 물음엔 이렇게 답했다. 

"목표는 제 운명이 저를 이끄는 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보여주는 일관성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이상한 아이가 나타났다'는 확신을 얻은 눈치였다. 그리고 그 확신은 1분 후에 '제대로인 아이가 나타났다'는 확신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실없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던지곤 하는 대중의 조소는 그의 싸이퍼가 시작되는 순간 순식간에 감탄사로 바뀌었다. 김하온이 보여준 개성 있는 플로우의 랩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가 쓴 가사였다.

진리 탐구의 땀방울 느껴진 싸이퍼

김하온 Mnet <고등래퍼2> 참가자 김하온은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랩으로써 세련되게 표현했다.

▲ 김하온 Mnet <고등래퍼2> 참가자 김하온은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랩으로써 세련되게 표현했다. ⓒ Mnet


아래는 김하온이 선보인 싸이퍼의 전문이다.

"안녕 나를 소개하지 이름 김하온 직업은 traveler
취미는 tai chi, meditation, 독서, 영화시청
랩 해 터 털어 너 그리고 날 위해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
나는 텅 비어 있고 prolly 셋 정도의 guest
진리를 묻는다면 시간이 필요해 let me guess
아니면 너의 것을 말해줘 내가 배울 수 있게
난 추악함에서 오히려 더 배우는 편이야 man

거울 보는 듯한 삶 mirror on the wall
관찰하는 셈이지 이 모든 걸 wu wut?
뻐 뻔한 걸 뻔하지 않게 switch up
뻔하지 않은 게 뻔하게 되고 있으니까 ya know
I ain't trynna be something
I just trynna be me
그대들은 verse 채우기 위해서 화나 있지
물결 거스르지 않고 즐겨 transurfing
원한다면 내 손으로 들어올 테니 um

생이란 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름다운가
왜 우린 우리 자체로 행복할 수 없는가
우린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 중인가
원해 이 모든 걸 하나로 아울러주는 답
배우며 살아 비록 학교 뛰쳐나왔어도
깨어있기를 반복해도 머리 위로 흔들리는 pendulum
난 커다란 여정의 시작 앞에 서 있어
따라와 줘 원한다면 나 외로운 건 싫어서"

김하온의 싸이퍼는 방송 직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기사들이 쏟아졌고 네티즌들은 '비트 위의 박지성'이 나타났다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특히 싸이퍼 가사의 깊이에 감탄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가 쓴 가사 중 transurfing이 특히 눈에 띈다. 이 단어는 러시아의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가 쓴 저서인 <리얼리티 트랜서핑(Reality Transurfing)>에서 볼 수 있는 단어다. 바딤 젤란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크릿>의 원리를 다중우주 이론을 기반으로 설명해낸 과학자이자 신비주의자다. 전 세계에서 번역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책은 펜듈럼, 가능태 공간, 잉여 포텐셜 등을 설명하며 '진리'에 접근한다.

김하온의 싸이퍼에도 pendulum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단지 '(시계의) 추'라는 사전적 단어로 썼다기보단 트랜서핑 이론에 속한 단어로써 인용한 듯하다. 펜듈럼(pendulum)은 집단이 한 방향으로 사고할 때 에너지가 쏠리며 형성되는 것인데, 이러한 강력한 펜듈럼의 주파수 아래서 한 개인은 그것에서 벗어나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중심을 찾아야 한다. 명상, 관찰, 배움 등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김하온이 발견한 그 진리의 실체가 대략 이런 모습이 아닌가 싶다.

김하온은 학년별 싸이퍼 1위를 차지하며 겉멋이 아니란 것을, 자신만의 세계가 진정성을 지녔음을 증명해냈고 전에 없었던 '명상 스웨그'의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했다. '비트 위의 박지성'도 좋지만, 그가 쓴 가사를 보면서 '비트 위의 류시화'가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랩이란 게 말로 꽉 차 있어서 마음이 복잡할 땐 손이 잘 안가는데, 김하온의 랩은 말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텅 빈 여백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힙합이 명상적일 수 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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