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모크>의 한 장면. 홍, 초, 해가 이야기하고 있다.(왼쪽부터)

뮤지컬 <스모크>의 한 장면. 홍, 초, 해가 이야기하고 있다.(왼쪽부터) ⓒ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 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이상의 시 '오감도'의 일부다. 이상의 시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문학시간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이상의 시는 '이상'하다"는 우스갯소리로 수업을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의 시는 띄어쓰기도 없이 답답해 보였고, 온통 추상적인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와 이상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시했다.

그런데 몇 년이 흘러 우연히 이상의 시 '날개'를 가사로 차용한 뮤지컬 <스모크>의 노래 '날개'를 듣게 됐다. 중독성 있고 시원시원한 멜로디에 이끌려 관람까지 했다. 뮤지컬 <스모크>는 이상의 작품 오감도 제 15호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오감도뿐 아니라 날개, 거울, 권태 등 그의 작품과 성격이 잘 묻어있다.

<스모크>는 이상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거울'이 중요한 소재다. 거울 속 세상. 나이지만 내가 아닌 존재. 그 속에서 3명의 인물들이 이상의 글, 신념, 고뇌 등을 표현한다. '그림을 그리는 해', '글을 쓰는 초', '마음을 읽는 홍'.

친구인 초와 해는 바다에 가자 약속을 했고,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홍을 납치해 몸값을 받아낼 계획을 세운다. 납치는 성공했다. 그러나 마음 약한 해는 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홍을 풀어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상할 만큼이나 서로 닮은 두 사람. 두 사람은 초의 시의 읽으면서 더 깊이 교감한다.

잔잔하던 두 사람의 시간도 잠시, 초가 돌아오고 사건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해, 초, 홍 이 세 사람의 관계와 정체는 극 내내 신비스럽고 미스터리하다. 대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서로 닮은 듯싶다가도 너무나 다르다. 그러다 마침내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면 이때까지의 대사, 행동, 노래들이 모두 복선으로 바뀌고 소름이 돋는다.

다들 예상했을 수도 있지만 해, 초, 홍은 모두 이상 자신이다.

해는 아이 같은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이상의 본체이기도 하다. 초는 27살의 이상이다. 이상이 평소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말했던 초월적인 존재. 거기서 따왔을 것 같은 이름의 '초'다. 초는 글을 쓰지만 자신의 글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괴로워하며 죽음을 갈망했다. 자신이 쓴 책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등 신경질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초에게 바다는 한없이 어둡고 깊은 절망, 죽기 좋은 곳이었다.

홍은 이상의 양심이자 '감정 보따리'다. 사랑, 희망, 슬픔, 욕망이기에 이상에게 고통이 되기도 한다. 홍은 끊임없이 초와 해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려고 한다. 홍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 속 희망일 것이다.

납치극으로 시작해 거울 속 자아를 마주하는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마치 이상의 시가 '이상'하듯 이들의 이야기도 답답하고 두서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게 복선이었고 시였고 이상 그 자체였다. 거울 속 세상에서 세 사람은 누구보다 솔직한 이상 모습들이다.

거울 속 나와 만난 이상 

 해와 초가 거울 앞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해와 초가 거울 앞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추상적인 거울 속 세상을 시각화시킨 건 스모크의 무대장치였다. 무대 전체를 거울로 삼았는데, 돔 형태의 벽이 무대 전체를 감싸고 있다. 또, 해·초·홍이 싸우는 절정에서는 빛을 이용해 거울을 만들어 낸다. 레이저와 빛으로 허공을 가르는 거울이 완성됐는데 서로 끌어당기고 미는 등 싸우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이 장면이야말로 스모크스러운 쫀쫀함과 신비함이 살아있는 최고의 장면이다.

스모크의 넘버는 극의 내용을 알기도 전 나를 사로잡았을 만큼 좋았다. 이상의 시 일부분이 가사로 쓰이곤 한다. 한 줄 한 줄 한 단어 단어가 살아서 음악과 함께 숨 쉰다. 시를 아름다운 음악과 목소리로 들으니 그 감동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전반적으로 지르는 시원한 넘버가 많아 쾌감도 느껴진다.

극은 불친절한 편이다. 이상의 시가 그렇듯이 자세한 설명은 없다. 추상적이고 늘어놓는다. 그의 시와 성격들이 뒤엉켜 나열되니 난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간다. 하지만 불친절한 와중에 이상이 겪었던 일들과 내면의 충돌은 확실하게 보여준다.

역사 속 천재들이 그랬듯이 이상도 천재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박제된 천재.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글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외로움을 느꼈다. 실제 이상은 오감도를 신문을 연재하던 중 독자들의 반발로 중단했다. 이상은 본인의 글을 못 알아듣고 비난하는 독자들에게 이때까지 본인이 얼마나 글을 열심히 써왔는지에 대한 글을 남겼다. 이는 뮤지컬에서도 잘 드러난다. 초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고통이다"고 말했듯이 극은 난해한 와중에 이상이라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 그의 작품 등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나도 이상과 이상의 시를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고등학생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고 그 이후에는 딱히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공연을 보기 하루 전날 '그래도 이상 시를 가지고 하는 뮤지컬이라는데 읽어보기는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오감도를 읽었다. 그리고 공연을 보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비로소 이상의 시를 사랑하게 됐다. 추상적인 그의 단어들을 다 이해해서도 아니고 천재가 겪는 고통을 이해해서도 아니다. 그냥 그의 시가 아름답다고 느꼈고 단어들이 예뻤다. 뮤지컬을 보고나서 그가 얼마나 글을 열심히 썼는지 글은 그의 전부였다는 걸 알게 됐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이상의 시를 읽어보고 마음에 담아둘 수 있게 해준 극이었기에 가슴 뛰었다.

뮤지컬<스모크>는 7월 15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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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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