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년전 1.5군 멤버도로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하며 넓은 선수풀을 과시했던 독일은 불과 1년 만에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충격의 패배를 기록했다.

멕시코와 월드컵 본선 첫 경기를 치른 독일은 모든면에서 멕시코에게 밀렸다. 결과적으로 멕시코에 패한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의 자존심이 무너짐과 동시에 멕시코 축구에 새로운 역사를 써주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독일, 체력·스피드에서 완패했다

멕시코 에레라, 혼신을 다해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멕시코 경기에서 멕시코 엑토르 에레라(가운데)가 독일 토마스 뮐러(13)의 슛을 혼신을 다해 막아내고 있다.

▲ 멕시코 에레라, 혼신을 다해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멕시코 경기에서 멕시코 엑토르 에레라(가운데)가 독일 토마스 뮐러(13)의 슛을 혼신을 다해 막아내고 있다. ⓒ 연합뉴스


전반 15분까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한방씩 날리는 경기를 선보였지만 이후부턴 멕시코의 상승세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스피드에서 승패가 갈렸다. 독일의 공격 전개는 스피드가 받쳐주질 못하면서 그 폭발력이 감소됐고 결과적으로 멕시코 수비를 흔들지 못했다. 또한 측면전환 속도가 늦으면서 멕시코의 수비가 전열을 가다듬는 데 충분한 시간을 제공해줬다.

수비에서의 전환속 도도 아쉬웠다. 공격을 나갔다가 멕시코의 거친 압박에 공격이 차단된 이후 멕시코의 역습상황에서 독일의 공수전환 속도는 너무 느렸고 멕시코의 개인기 좋은 공격수들에겐 그야말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셈이었다.

결국 수비전환 속도가 느린 것은 결승골의 빌미를 제공했다. 중원에서 공격이 전개되다 상대의 압박에 공격이 차단된 독일은 이후 멕시코의 빠른 공수전환 속에 뒷공간이 무너지며 어빙 로사노에게 결승골을 허용했다.

특히 독일은 체력이 완전하지 못한 모습이었는데 이는 부상 후유증 여파도 컸다. 본선을 앞두고 부상을 입었던 제롬 보아텡과 마츠 훔멜스의 경기력은 기대에 못 미쳤고 역시 본선을 앞두고 무릎과 등 부상으로 고생했던 메수트 외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력이 받쳐주질 못하니 압박이나 스피드에서 따라갈 수 없었고 독일의 경기력은 자연스럽게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노이어, 내가 먼저!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멕시코 경기에서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멕시코 미구엘 라윤(7)에 앞서 공을 잡아내고 있다.

▲ 노이어, 내가 먼저!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멕시코 경기에서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멕시코 미구엘 라윤(7)에 앞서 공을 잡아내고 있다. ⓒ 연합뉴스


독일에 비해 멕시코는 체력과 스피드에서 그 위력이 빛났다. 멕시코는 상대의 볼을 탈취한 이후 벨라를 중심으로 치차리토, 로사노, 라윤 등의 빠른 스피드와 개인기량을 앞세워 라인을 올린 독일의 뒷공간을 잘 공략했다. 결국은 미드필드에서 볼을 탈취한 이후 로사노를 중심으로 한 역습으로 선제 결승골을 터뜨렸다.

체력 싸움에서도 멕시코는 전반전을 시작으로 후반전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체력이 한창 떨어질 시기인 후반 중반을 넘어서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독일 공격을 잘 막아냈다.

2선 선수들의 부진, 공격의 위력 감소되다

멕시코전에 출전한 독일의 공격자원은 드락슬러, 외질, 뮐러를 중심으로 베르너가 원톱으로 포진한 4-2-3-1 포메이션이었다. 하지만 3자리에 포진한 3명의 선수들이 부진하자 전방에 포진한 베르너는 전반 2분 상대 뒷공간을 노린 침투를 통한 슈팅기회 외엔 아무런 활약을 하지 못했다.

멕시코 미드필더의 거센 압박에 독일의 2선자원들은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했다. 또한 선수들의 정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양질의 패스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었다. 토니 크로스와 메수트 외질의 장점이라면 양질의 패스공급과 창의적인 공격전개로 볼 수 있었지만 이들의 장점은 발휘되지 못했다.

결국 공격루트는 오른쪽 풀백인 조슈아 키미히 쪽에서 이뤄졌는데 결국 단조로워진 공격루트는 멕시코 수비로 하여금 예측 가능한 공격이 되면서 전반 초반 이후로는 그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키미히 쪽에서 이어진 공격은 결과적으로 수비 뒷공간을 노출하며 멕시코의 결승골이 터지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중원에서 양질의 패스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그나마 키미히쪽에서 이어지는 공격루트마저 막히자 자연스레 크로스 위주의 공격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르너는 상대 뒷공간을 이용해 동료들과 연계플레이를 펼치거나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유형의 공격수로 독일의 공격은 제대로 이뤄질래야 이뤄질 수 없었다.

멕시코 승리 환호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멕시코 경기에서 멕시코 선수들이 독일을 1-0으로 꺾은 뒤 환호하고 있다.

▲ 멕시코 승리 환호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멕시코 경기에서 멕시코 선수들이 독일을 1-0으로 꺾은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후반전에도 교체카드는 위력이 없었다. 독일은 이날 가장 부진했던 사미 케디라를 빼고 마르코 로이스를 기용했지만 경기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경기 막판 베르너 대신 투입된 브란트는 경기에 영향력을 끼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기대해볼 수 있었던 프리킥이나 코너킥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한 경기로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멕시코전에서 보여준 독일의 경기내용을 봤을 때 르로이 사네의 최종명단 탈락에 대해 요아힘 뢰브 감독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독일의 2선 자원 중 유일한 '크랙형 선수'라 볼 수 있었던 사네는 이렇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본인의 역량으로 멕시코의 수비진을 흔들면서 동료들에게 득점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사네가 빠지면서 교체카드 및 전술의 다양성 측면에서 카드 하나가 사라져버린 독일은 결국 이번 대회 내내 사네의 공백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격파한 멕시코, 새로운 역사를 쓰다

멕시코가 마지막으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건 1985년 9월 이후 33년 만에 기록한 승리였다. 그러나 그 승리는 친선경기였으므로 메이저대회에서 독일을 상대로 주요 대회에서 승리를 거둔 건 이번이 처음인 셈이었다.

오소리오 감독의 전술역량이 돋보였던 경기였다. 지난 평가전에서 저조한 득점력과 수비 불안으로 골머리를 썩었지만 독일전에서 보여준 멕시코의 경기운영은 짜임새 있고 오히려 독일보다 더 노련미가 돋보였다.

미드필드에서 엑토르 에레라와 안드레스 과르다도가 펼친 거센 압박과 벨라, 로사노, 치차리토, 라윤을 중심으로 한 역습이 빛을 발하면서 결국 역습 한방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전반전 멕시코의 움직임을 봤을 때 오버페이스의 우려도 있었지만 멕시코 선수들의 체력은 후반전에도 변함없이 버텨줬다.

이르빙 로사노 멕시코는 독일과의 F조 첫 경기에서 로사노의 결승골로 승리를 챙겼다.

▲ 이르빙 로사노 멕시코는 독일과의 F조 첫 경기에서 로사노의 결승골로 승리를 챙겼다. ⓒ 피파 공식 홈페이지


교체카드를 통한 경기 콘셉트도 인상적이었다. 오소리오 감독은 벨라를 대신해 에드손 알바레스, 로사노 대신 라울 히메네스, 과르다도 대신 라파엘 마르케스를 투입하며 수비를 강하게 하면서 공격에 대한 여지를 남겨뒀다. 4-2-3-1과 4-3-3 포메이션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며 후반전 독일의 공격을 철저히 봉쇄했다.

33년 만에 독일을 격파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 멕시코. 이들은 또 하나의 역사를 썼는데 바로 라파엘 마르케스의 5회 연속 월드컵 출전 기록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첫 월드컵을 치른 마르케스는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무려 5번의 월드컵에 모두 출전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한 선수가 3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5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은, '이 선수가 얼마나 꾸준한지를 증명하는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만 23세에 월드컵에 데뷔했던 마르케스는 이제 39세의 노장이 되어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렇게 해서 마르케스는 안토니오 카르바할, 로타어 마테우스에 이어 3번째로 월드컵 5회연속 출전이란 대기록을 작성했다. 멕시코 선수로서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부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까지 5회 연속 출전한 안토니오 카르바할에 이어 2번째 선수로 기록됐다(잔루이지 부폰은 1998년부터 2014년까지 5회 연속 참가했으나 1998년 월드컵은 경기출전 없음).

멕시코가 독일을 상대로 승리하며 F조 역시 죽음의 조가 형성됐다. 그리고 멕시코의 승리로 인해 앞으로 멕시코, 독일을 상대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신태용 감독의 한국 축구대표팀 역시 험난한 일정을 앞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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