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스타일이 완전 좋은데요?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어요?"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


13세 소녀와 98세 패션 콜렉터 할머니와의 대화로 꾸며진 광고를 기억하는가. 100살 아니, 1000살이 넘었다 하더라도 잊을 수 없을 끔찍한 일을 겪은 피해자들을 조롱해 사회 문제를 일으킨 이 광고에 나도 격분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이 광고는 곧 송출이 중단됐다.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보상이 끝났는데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보상을 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피해자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잘 알고 있어야 누군가 내게 물어볼 때 대답도 해줄 수 있고, 뉴스를 보며 함께 분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찾아간 곳은 2015년 12월에 개관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관. 우리나라에 딱 하나뿐인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다. 이곳을 11월 초에 다녀왔다.

"우와~, 전망 좋다!"

상설전시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4층부터 전시실이 시작된다.

사진 속 가족들은 어떻게 됐을까
 
상설전시실의 첫 전시물, 식민지 조선의 한 가족사진 상설전시실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사진이다. 3대가 함께 한 이 사진에서 중간에 있는 청년은 군복을 입고 있다.
▲ 상설전시실의 첫 전시물, 식민지 조선의 한 가족사진 상설전시실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사진이다. 3대가 함께 한 이 사진에서 중간에 있는 청년은 군복을 입고 있다.
ⓒ 정문주

관련사진보기


전시실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벽면을 가득 메운 가족사진이다. 3대가 함께한 이 사진에서 청년은 군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아마도 강제동원으로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가족사진일 듯하다. 일제강점기를 보내며 이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 강제동원은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았다던데, 다들 뿔뿔이 흩어져 버리진 않았을까. 시작부터 울컥하며 가슴 속에 작은 응어리가 생긴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갑자기 벽에 있는 커다란 화면에 영상이 재생된다. 버튼을 눌러 재생하는 방식이 아니다. 움직임을 인식한 자동 재생이다. 이 동영상은 일제가 전쟁을 시작하고 세력 확장을 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뿐 아니라 중국, 사할린, 타이완,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여러 섬까지 점령한 지역의 지도를 보니 그 광범위함에 새삼 치가 떨린다. 피해국과 피해자들의 규모가 엄청날 텐데 일본은 뻔뻔하게 이를 인정하지도 않고 제국주의를 되레 위대한 역사로 여기고 망언을 일삼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및 점령지 지도 1942년 동남아시아 및 중, 서부 태평양 일대에 이르는 일본군 최대 전선 형성. 피해자들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일본의 식민지 및 점령지 지도 1942년 동남아시아 및 중, 서부 태평양 일대에 이르는 일본군 최대 전선 형성. 피해자들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 정문주

관련사진보기

 
국립강제동원역사관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역사를 알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시실을 돌다 보면 실제 피해자들의 다양한 강제동원 사례를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피해 사례가 사진, 당시 물건과 함께 전시돼 있는데 모두 피해자들이 기증한 것이다.
 
위안부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증언 영상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셨던 김복득 할머니는 2018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 위안부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증언 영상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셨던 김복득 할머니는 2018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 정문주

관련사진보기

 
전시실 곳곳에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인터뷰 동영상들이 재생되고 있어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고자 애썼던 김복득 할머니는 동영상에서 죽기 전에 사과를 받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과를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지난해 별세하셨다.
 
어린 노무자 15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동원되었다.
▲ 어린 노무자 15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동원되었다.
ⓒ 정문주

관련사진보기

 
일제는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다양한 구실을 앞세워 사람들을 끌고 갔다. 강제동원된 노무자 중에는 열다섯밖에 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우리 딸과 같은 나이, 중학교 교실에서 만난 철없고 장난기 많은 중2 아이들이 생각난다. 가족과 학교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야 할 아이들까지 강제동원에 이용하다니 참으로 잔인하다.

여성들도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동원돼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위안부'로 끌려가 군인들의 성노예로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근로정신대와 위안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잘 알게 됐다.

현재까지도 일본은 위안부로 동원되거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고된 노동과 학대를 받은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있다. 패전 후 청구권협정을 통해 보상이 끝났다는 게 일본의 입장이다.

그러나 대일민간청구권 신고 안내서를 보면 신고대상에서 반인도적 강제동원 피해자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청구권협정을 통한 보상이 전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진 벽
 
상설전시실2로 올라가는 계단벽 3개 층 높이의 벽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진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 상설전시실2로 올라가는 계단벽 3개 층 높이의 벽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진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 정문주

관련사진보기

 
전시관 끝에서 만난 넓은 계단실, 위층으로 올라가면 두 번째 전시실이 나온다. 그 옆 벽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가족과 조국을 떠나 갖은 노동과 학대를 당한 사람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맨몸으로 타지에서 생활해야 했던 사람들, 여성정신대로 죽도록 노동만 했을 뿐인데 위안부라고 오해를 받은 사람들, 어린 나이에 위안부가 돼 여성으로서 끔찍한 기억을 갖고 돌아온 사람들... 조금 전 첫 번째 전시실에서 보았던 것들이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다시 한 번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다.

계단을 올라가서 만난 두 번째 전시실은 모형으로 강제 동원 현장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노무자 숙소 모형은 미니어처로 전시돼 있는데 당시 노무자들은 좁은 숙소에서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일어나 기계처럼 노동에 이용됐다. 만약 아파서 일을 나가지 못하는 날은 밥도 없었다고 한다. 노무자를 학대하는 동영상도 재생되고 있는데 무서워서 시청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숙소를 지나가면 실제 크기와 같은 탄광 입구가 있다. 어두운 탄광에 들어갔다가 왼쪽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작은 굴 속에 누워서 채굴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인데 얼핏 진짜 사람인 줄 알 정도로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그중, 갱도가 무너져 돌에 깔린 노무자들의 모습까지 그대로 재현돼 있어 충격적이다. 좁은 갱도에는 몸집이 작거나 어린 노무자들을 골라 일을 시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우리 아이와 친구들이 갱도에 있다고 상상하니 끔찍하다.
 
탄광 노무자 누워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좁은 갱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 탄광 노무자 누워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좁은 갱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 정문주

관련사진보기

 
탄광을 빠져나온 나를 더 충격에 빠지게 한 것은, 태평양 어느 섬 해안기지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무자들과 감시하는 군인들 사이에 꽂혀 있는 표지판이다. '조선인은 방공호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적혔다.

하늘에는 전투기가 폭격을 시작하고 있고 기지에는 방공호가 있다. 모두 피해야 하지만 조선인 노무자는 방공호에 들어갈 수가 없다. 노동력만 제공하다 물건처럼 버려지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실상이 그대로 녹아 있는 문구라 마음이 더 아팠다.
 
태평양 해안기지 '조선인은 방공호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적힌 표지판이 충격적이다.
▲ 태평양 해안기지 "조선인은 방공호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적힌 표지판이 충격적이다.
ⓒ 정문주

관련사진보기

 
태평양 기지를 지나면 위안소에 도착하게 된다. 작은 방 하나에 갇혀 일본군의 성 노리개가 된 위안부들이 생활했던 곳이다.

순진한 어린 소녀들이 취업을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서 오거나 납치, 매수 등의 다양한 이유로 끌려온 장소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고문과도 같은 폭력은 일상이며, 배식량이 적어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물론 성병과 강제로 행해진 임신중절수술로 인해 죽는 사람도 많았다.

간신히 살아남은 여성들도 국내에선 오해와 편견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에 시달려 온 피해자들은 일본의 사과와 피해보상을 원하고 있다. 위안부 건물의 끝에 다다르면 위안부로 동원된 소녀들의 슬픔을 담은 애니메이션이 재생돼 관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위안부피해자 여성이 사용하던 방이다. 침대와 세면대만 갖추어져 있다.
 위안부피해자 여성이 사용하던 방이다. 침대와 세면대만 갖추어져 있다.
ⓒ 정문주

관련사진보기

  
일본 국민들은 과거 일제의 만행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그리고 아베 정부의 보상 문제에 대한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강제 동원에 대한 증거물과 자료는 일본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게 적지 않은 시민들이 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일본에 남아 있는 강제동원 현장을 찾아내거나 유해를 발굴해 내고, 역사를 바로잡으려 애쓰고 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앞으로도 이런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전시실을 처음부터 찬찬히 다 돌아보고 나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주인공인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 기증받은 유물들과 적절히 배치된 미디어 콘텐츠,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전시물들 때문에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부산 남구 UN평화문화특구에 있다. 여기에는 세계 유일의 UN기념공원과 UN평화기념관이 있다. 부산의 랜드마크인 광안대교와 바다도 가까이 있으니 해운대나 광안리로 휴가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도 잠시 시간을 내어 방문해 보면 좋겠다.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세상을 알기에는 아직도 나는 어리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