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고 봄은 오나 봅니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한 꽃송이들에 맘이 설레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죠. 하지만 봄 꽃의 향연을 만끽하기도 전에 아쉬운 소식이 먼저 들려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올 봄꽃 축제 일정 대부분이 취소됐습니다. 아쉬운 대로 집에서 잠시나마 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봄에 보면 딱 좋을 영화가 있어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우즈미는 훗카이도에서 도쿄로 이사를 온 무사시노 대학의 신입생이다.

우즈미는 훗카이도에서 도쿄로 이사를 온 무사시노 대학의 신입생이다. ⓒ (주)팝 파트너스

 
봄은 설렘이다. 그리고 추억이다. 훈훈한 온도 속에 안락한 풍경을 바라보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시작'을 의미하는 이 계절은 처음이라는 낯섦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1998)는 홋카이도에 살던 우즈미(마츠 다카코)가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대학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고 플라잉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호수의 잔잔한 물줄기 같은 영화다. 봄의 풍경, 개강한 대학 캠퍼스의 설렘, 상대방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하나의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요즘처럼 밖에서 봄을 만끽하기 어려운 시기.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영화이지만 방구석에서 봄을 느끼기에 충분한 영화다.

우즈미의 표정에는 긴장과 설렘이 섞여 있다. 캠퍼스를 걷다 밴드 공연을 보기도 하고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다 옆 벤치에서 키스하는 커플을 힐끗 쳐다보기도 한다. 혼자 영화관에 흑백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허공에서 낚시질을 연습하는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기도 하며 카레를 많이 해 이웃집 여자에게 함께 먹자고 했다가 거절 당하기도 한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는 풋풋함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의 스무살을 떠올리다
 
 영화 <4월 이야기>의 한 장면.

영화 <4월 이야기>의 한 장면. ⓒ (주)팝 파트너스

  
우즈미를 보면 우리의 스무 살이 떠오른다. 나이는 어른이었지만 몰랐던 것들이 많았던 그때.  낯선 것 투성이였지만 신기하게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그 시절 말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영화 이야기에 살포시 녹아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실 우츠미가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한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한 살 많은 선배가 이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 우츠미는 자전거를 타고 선배가 일하는 서점을 찾아간다. 우츠미는 선배를 보고도 긴장했는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선배는 책을 계산하다 "혹시"라며 묻는다. "기억하세요?"라며 우즈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지만 여전히 눈은 선배를 오래 보지 못한다. 사랑하는 상대를 쫓아 같은 대학까지 입학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 앞에서 긴장한 우즈미의 떨림을 우리는 한 번씩 가지고 있지 않나.
 
 영화 <4월 이야기>에서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

영화 <4월 이야기>에서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 ⓒ (주)팝 파트너스

    
이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은 벚꽃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폭설이 쏟아지듯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벚꽃 잎이 흩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곁들어지면서 스크린은 분홍빛이 되며 봄의 향기가 전해진다. '벚꽃 비'가 내리는 장면은 2분 남짓. 이 짧은 틈에서 우리는 봄과 교감한다.
 
'벚꽃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소소하지만 재미있다. 우즈미의 집을 찾아가는 이삿짐센터 트럭이 등장한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길가에 있던 한 남성에게 길을 물어본다. "사쿠라가오카 2번지가 어디죠?" 벚꽃을 의미하는 '사쿠라'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옷을 갖춰 입은 신부와 그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우산을 씌워준다.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들 몇 명이 가까이 몰려가 궁금한 듯 신부를 보려고 한다. 이삿짐센터 직원들도 그런 광경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봄과 4월의 그림이란 이토록 어느 한 장면 놓칠 것 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4월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4월 이야기 이와이 슌지 마츠 다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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