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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은 코로나 재확산 이후 맞는 명절입니다. 겪어보지 못한 재난 앞에, 명절을 맞는 자세도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추석이라면 으레 지내던 차례, 가족과의 단란한 모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못 하거나 안 하는 게 많아진 이번 명절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2016년 23살의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이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편의점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시급 5000원을 제시했습니다. (사진은 영화 <리틀포레스트> 스틸컷)
 이번 추석에는 연휴 내내 대타 알바를 하게 될 것 같다. (사진은 영화 <리틀포레스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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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는 대타 알바를 합니다

주말 알바를 하는 편의점까지는 자전거로 1시간쯤 걸린다. 이런 출퇴근 방법은 평일에 컴퓨터로 글만 쓰는 반백수에게 최소한의 운동량을 제공해 준다. 요즘 페달을 밟을 때는 자전거 도로에 흘러넘치는 볕이, 정신 없는 땡볕과는 다른 느낌으로 사람을 멍해지게 만든다. 이런 볕을 나는 추석볕이라고 부른다. 추석볕을 쬘 때면, 생활에 따라 시간을 쪼개던 단위가 녹아없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음만은 괜히 여유롭고 낙낙해진다.

이번 추석에는 연휴 내내 대타 알바를 하게 될 것 같다. 원래 계획은 연휴 중 평일에는 본가에 다녀오는 것이었지만, 어머니가 말리셨다. 처음에는 오빠 내외도 못 오게 하셨다가, 미안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하셨다. 

"느이 오빠 말이... 겨울에는 확진자가 훨씬 많이 나올 거라고 이번에 다녀간다고 하네. 근데 애기들이 있잖아..."라며 비슷한 말씀을 연신 반복하셨다.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고 먼 길을 대중교통으로 오가는 내가 혹시라도 어린 조카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게 될 수도 있으니 오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 말을 하는 게 어떻다고, 혼자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그럼요, 당연하죠." 서운할 일은 없었지만 가족들을 못 보는 것은 좀 아쉬운 맘이 들었다. 보통 가족들이 모이면 (비혼인 나에게) 연애와 혼담 진행 상황을 물어오는 게 은근히 부담스러워서, 명절에 본가에 안 갈 타당한 사유가 생기면 안심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못 가게 되니 괜히 더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뭘까. 게다가 1년째 조카들을 못 보고 있어서 어떻게 컸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빠 내외는 추석 한 주 전 미리 다녀가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을 때 본가에서 놀고 있는 조카들의 영상이 가족 카톡방에 올라왔다. 아이그, 이쁜 것. 아이들을 '작은 인간'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 나에게도 핏줄은 달리 보이는 데가 있어서, 직접 안고 볼을 꼬집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고모 기억하냐고 물어봐 줘요!' 물었더니 첫째는 아직 고모를 기억하고 있단다.

신이 난 나는 갑자기 영상이라도 보내볼까 하고, 혼자 잇몸 만개한 채 손을 흔들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영상을 찍었다. 영 어색해서 다시 찍다가, 담배 매대가 배경이라니 교육적이지 않잖아 싶어 반대로 서서 찍었다가, 아 맞다  CCTV가 있었지, 하고 그만두었다(평소에는 열심히 일하는 알바입니다). 하마터면 영상통화까지 시도할 뻔했다.

외상 대신 한가위 온정이라 불러 봅니다

일하고 있는데 낮에 오셨던 중년의 여자 손님이 다시 오셨다. 가져온 돈이 모자라 넌지시 외상을 부탁하셨던 분이다. 들고 온 현금이 부족해 상품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분은 많았지만 외상 요구를 받는 것은 나도 편의점 일을 하며 처음이었다.

앞치마를 한 채로, 안 되는 줄 안다면서도 정감 있게 부탁해 보시는 모습에 나는 어쩐지 그깟 4000원 뭐 대수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사장이 아니라서 일단 제 돈으로 메워둘 테니 저 일하는 시간 맞춰서 오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안 오셔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잊어버릴 요량으로 전화번호도 받지 않았다. 

최저 시급을 받고 있으니 4000원을 못 받는 건 30분가량의 노동의 대가를 포기하는 셈이다. 하지만 평소에도 계산 실수로 정산이 맞지 않는 경우를 각오하고 매일 만 원 정도는 사라져도 좋은 돈으로 여기고 있으니,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니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몇 시간 후 다시 와서 돈을 건네시고는, 대뜸 나의 인성을 극찬하셨다. "날 뭘 믿고 외상을 주겠어요. 요새 그런 데 없습니다. 내가 정말 감명받았어요" 하며 가슴에 손을 얹으시고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시는 통에 나는 오히려 고개를 못 들고 그분을 보내 드렸다.

희한하게 그날은 그 후로도 두 번이나 더 외상을 주게 됐다. 반려견을 데려오신 한 아주머니는 400원이 부족하다며 나중에 주겠다고 당당히 말씀하셨고, 나는 그 옆에서 혀를 내밀고 있는 시바견을 1초라도 더 보고 싶어서 몽글몽글해진 눈빛으로 그러마 했다.

그새 뇌에 외상근육이 생겼는지, 그다음에는 리모컨용 건전지를 사러 오셨다가 300원이 부족해 돌아나가시는 아저씨를 내가 붙잡아 외상을 드렸다. "당장 리모컨은 쓰셔야 될 거 아녜요?"라는 말에 "그릏지!" 하고 반색하시는 게 재밌어서, 잠시간 아주 유능한 알바라도 된 기분이었다.

300원, 400원. 참 적기가 민망하도록 별스럽지도 않은 얘기다. 적은 돈이라서 두 분 다 안 오실 줄 알았다. 그런데 건전지 손님은 다음날 들르신다더니 일부러 집에 다녀오셔서 돈을 갚으셨다. 시바 견주님도 안 잊으려고 메모까지 해 뒀다면서, 고맙다고 여러 번 말씀하고 가셨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사람들은 참 고마워하고, 다정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겨우 몇백 원에 좋은 사람도 돼 보고, 포스기가 아닌 이웃으로서 손님들을 만나는 기분도 맛본다. 

이 상황을 알바생 교육용 자료화면으로 쓴다면  '따라 하지 마세요'라는 자막이 필요하겠다. 알바가 얼마나 번다고 외상은. 외상을 습관처럼 주다가는 알바비도 제대로 못 챙길 수 있다. 그래도 내가 남에게 고마웠던 일, 딱 그 정도만큼만은 가끔 베풀면서 살아도 좋을 것 같다.

1년 전쯤 나는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연필 대신 컴퓨터 사인펜을 챙겼다가, 연필을 사러 급하게 편의점에 들어간 일이 있다. 그때 알바를 하시던 분은 샤프밖에 안 팔아서 난감해하는 내 모양새를 보고 왜 연필이 필요한지 묻더니, 본인이 가진 연필을 내주었다. 

어버버 인사하며 나가는 내게 시험 잘 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참으로 소소해서 잊고 있던 일인데, 편의점이 도움을 주고받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인식만은 그때 확실히 남았던 것 같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마시로'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세계는 말이야, 사실은 행복으로 가득 찬 거야.  모두가 요구한 걸 다 들어 줘. 택배 아저씨는 내가 여기라고 말한 곳까지 무거운 물건을 옮겨 줘. 비 오는 날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준 적도 있어. (중략) 돈이라는 건 분명 이런 것 때문에 있는 걸 거야. 사람의 성실함이나 친절함 같은 게 눈에 확 띄게 보이면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모두 부서질 거야. 그러니까 모두 돈에 기대서 그런 걸 못 본 척 하는 거야."

어쩌면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2주 전에는 우리 상가가 있는 아파트의 경비분이 고기구이용 전기팬을 들고 점포에 오셨다. "아가씨, 이런 거 쓰나? 새 건데." 우리 점포에도 자주 오시고 집에 갈 때 같은 버스를 타면서 곧잘 얘기를 나누는데, 아파트 주민이 쓸 만한 물건을 내놓으면 나에게 먼저 필요한지 물어봐 주신다. 답례로 좋아하시는 커피를 몇 잔 사 드리면, "이런 거 받으려고 그런 거 아냐~"라고 손사래를 치시다가 결국 "고마워~" 하며 받아주신다.

그래, 가족들하고 보내야만 한가위인가. 근처에 있는 사람들하고 뭐든 나누는 게 명절이고 한가위지. 그런 생각을 또 소소하게 해본다.
 
건물벽에 걸린 추석 캠페인 현수막 이제껏 본 중 제일 슬픈 캠페인이네, 생각하게 되었던 문구였다.
▲ 건물벽에 걸린 추석 캠페인 현수막 이제껏 본 중 제일 슬픈 캠페인이네, 생각하게 되었던 문구였다.
ⓒ 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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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편의점을 찾는 당신, 특별히 더 환영합니다

명절이면 편의점은 평소보다 좀 특별한 공간이 되는 것 같다. 십 년 넘게 마트에서 일했던 나의 반려인은 타지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한 번도 가족들과 명절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명절 당일은 마트도 쉬었지만 연휴에는 갈 만한 곳이 없어서 혼자 집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러다 보니 명절마다 찾아오는 우울은 명절특선영화만큼이나 익숙했던 모양이다.

그런 날도 편의점만은 문을 열었다. 그 애는 자취생답게 주 4일은 편의점 밥을 먹으며 지냈는데, 명절 당일은 좀 특별한 편의점식을 먹었다. 평소에는 원터치로 뜯어서 해결하는 핫바나 삼각김밥 같은 걸 주로 먹었으니, 명절에는 비싼 정찬도시락도 고르고, 물을 붓거나 뜯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다소 '복잡한 요리법'이 필요한 것들을 샀다. 나름대로는 차례상을 차리는 마음과 비슷했나 보다.

이것이 자취생들(중에 실제로는 전혀 '자취'를 하지 않는 자취생들)의 흔한 명절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추석 연휴에는 좀 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지. 명절에 편의점을 찾는 당신에게 나는 어쩌면 연휴에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한가위도 당신 덕분에 더 즐겁고 낙낙해지면 좋겠다. 사실 그것은 몹시도 쉬운 일이다. 잔돈은 됐다며 돌아서시는 할아버님의 뒷모습만큼 쿨한 한가위, 주인 품에 얌전히 안겨 달랑거리는 반려견들의 다리만큼 앙증맞은 한가위, 인사하는 게 이뻐서 선물로 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영문도 묻지 않는 초등학생들만큼 천진한 한가위를 보내는 일. 그건 마음을 갖고 그렇게 누리면 되는 일이다.

퇴근길, 한 집에서 '찐백수'로 지내고 있는 나의 반려인이 내가 자전거를 타고 들어서는 길목으로 마중을 나온다. 자전거에는 보통 무거운 장바구니가 걸려 있다. 집에 도착하면, 나는 입으로 효과음을 넣어가며 편의점에서 수렵과 채집을 해온 것을 하나하나 꺼낸다. 최근 예능에 나왔던 신상 도시락, 반값 할인 중인 주전부리, 유통기한이 갓 지난 싱싱한 폐기 상품들을 보면서 반려인은 웃는다.

아니 물건보다는, 물건 하나하나를 자랑스럽고 신나게 꺼내놓는 나를 보며 실소와 폭소를 오간다. 아마도 추석 당일이 되면 반려인과 나는 이런 음식들을 늘어놓고, 경비아저씨께 받은 고기구이용 팬에 지글지글 고기를 구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번 명절은 적어도 한 사람을 우울하지 않게 지켜줄 수 있겠다. 

지금 이 시간 역시 돌아오지 않는 한순간이다. 가족들과는 맞은바라기에서―맞은편보다 먼 맞은편에서―바라보고 있겠지만, 이 시간도 자기 자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추억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의 자리에서 빛날 수 있는 것들이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너무 쉽게 가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새 우리 어머니는 생애 처음으로 아이돌에 입덕하셨다. 돈 아까워 내내 안 쓰시던 케이블 TV까지 신청하실 정도이니 제대로 덕행을 하고 계신 것 같다. 그 덕분에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도 하나 더 생겼다. 어머니가 이틀에 한 번꼴로 보내주시는 유튜브 링크를 챙겨 보고 "이 노래 들을수록 좋네!"라고 말씀해 드리는 것. 요즘 내가 어머니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방법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추석, 모두가 특별히 많은 '자잘한' 즐거움들로 한가위를 꽉 채우실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글쓴이의 브런치 페이지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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