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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의 저자, 박세길 작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의 저자, 박세길 작가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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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의 대학은 바로 1년 전 광주의 참혹한 실상이 퍼져나가며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조직 사건이 여럿 터지고 주모자라 규정된 몇몇이 칠성판에 끌려 올라갔지만 분노를 식히지는 못했다. 대학은 학생운동의 열기로 펄펄 끓어올랐고 시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박세길은 다른 동기들이 그랬듯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참여하다 제적 처분 끝에 군대로 끌려갔다. 그렇지만 운이 좋았다. 동기들은 녹화사업(전두환 정부가 입대한 학생운동 출신 신병을 프락치로 활용해 학생운동 와해를 노린 공작 사건)으로 고통 받았지만, 그는 입대하자마자 크게 다쳐 1년 만에 의병 제대를 할 수 있었다.

제대 후, 다른 친구들이 그랬듯 그 역시 인천에서 노동현장 투신을 준비했다. 그 와중에 아끼던 후배 이재호가 전방입소교육 반대를 외치며 신림동에서 분신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5일 후, 1년 뒤에 다가올 6월항쟁의 서곡이 된 5.3인천항쟁이 일어났다. 1986년의 봄이었다.
 
"인천항쟁 직후에 일어났던 대대적인 검거열풍 속에서 잡혀갔는데, 당시에는 재호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컸어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가 문제였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현대사 관련 자료를 구해서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맥이 잡히더라고요."
 
당시 구치소에서는 집필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어렵게 구한 볼펜심으로 우유팩의 껍질을 벗겨 한국현대사의 내용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우유팩 50개 분량의 원고가 작성되자 당시 구치소에 어마무시하게 끌려와 있던 양심수들이 첫 독자가 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장 많이 읽힌 역사책 중 하나임이 분명한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이하 다현사)가 탄생한 순간이다.

다현사와 함께 한 15년, 다현사와 결별한 10년

10개월의 옥살이 끝에 사회로 나온 박세길은 자신이 정리한 현대사를 팸플릿으로 만들어 돌려보다 아예 책으로 출판하기로 한다. 흥행은 감옥 안에서 검증되었다고 믿었지만 찾아간 출판사마다 퇴짜를 놓았다. 주장이 너무 세고, 이런 책을 내놔봐야 읽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출판사 사장에게 무릎을 꿇다시피(정말 꿇었을지도 모른다) 매달려 겨우 승낙을 받았다. 단, 조건이 있었다. 원고료 대신 인세로 받으라는.
 
"당시에는 책을 팔아도 수익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먹고 살아가려면 인세보다 원고료를 받는 게 유리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잘 팔리지도 않을 책이라고 보고 원고료라도 아낄 요량으로 인세 계약을 한 거죠. 그 때 원고료를 받았다면 땅을 치고 후회했겠죠.(웃음)"
 
통사정까지 하면서 힘들게 낸 책은 출판되자마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3권짜리 역사책은 어느 대학, 어느 동아리방을 가도 꽂혀 있는 필독서가 됐다. 이쯤되면 세속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얼마나 팔렸고 얼마나 벌었을까?
 
"지금은 출판사들이 몇 쇄 나갔다고 정확히 기록하지만, 당시에는 세금문제 때문에 몇 권 팔렸는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인세 들어오는 거 보면서 '엄청나게 팔렸구나' 짐작만 했죠. 액수요? 글쎄... 그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사고 결혼한 후에 10년 동안은 먹고 살았으니까요. 여러 단체에 후원도 좀 했고."
 
이산하 시인과 박노해 시인이 필명으로 시를 쓰다 잡혀갔던 시대, 실명으로 책을 낸 박세길은 오히려 책 때문에 잡혀간 적은 없다. 다만 그의 책은 각종 공안사건에 증거자료로 자주 등장했고 이적표현물이 됐다. 그렇지만 압수해갈수록 잘 팔렸으니 서점에서는 계속 책을 들여 놓았다.

이후 그의 인생은 '다현사와 함께 한 10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운동이 새로운 사회를 불러올 핵심 동력이라 믿었던 그는 노동자 역사학교를 조직해 현대사 강좌를 열면서 철도와 완성차 노조 조직화에 열정을 쏟았다.

90년대 말에는 소위 586세대가 여권으로 쭉쭉 빠져나가고 덩그러니 남아 있는 사회운동 전선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에 들어가 정책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2000년대를 맞이하고 조금씩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90년대 내내 강좌 중심의 노동자 교육활동에 주력했어요. 절대 노조를 만들 수 없다는 철도와 기아차에서도 제 강좌를 들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어용노조를 민주화하는데 성공했어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가서 보니까, 대공장 중심의 노동운동으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커지더라고요. 대공장 노동자들은 이미 기득권이 된 것 아닌가 싶었고. 환경은 디지털 혁명이니 뭐니 하고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 콘텐츠는 예전 그대로고. 저 조차도 이제 '다현사'와 결별해야할 때가 왔다고 봤어요."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우선 버려야 했다. 2007년 9월 13일, 그는 몸담았던 조직을 스스로 떠나 치악산으로 들어가 홀로 2년을 보냈다. 그리고 2008년, 그 고민의 결과를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이라는 책으로 모아 냈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책 내용에 90년대 북의 경제위기를 분석한 부분이 있는데, 이게 국가사회주의의 결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했어요. 위기 상황에서 국가만 쳐다보고 아무 것도 못했다고. 여기저기서 변절했다, 전향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더군요. 그런데 사실 이건 북한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던 것들이었어요. 그만큼 우리 안에 관성이 크게 남아 있을 때였죠."
 
더 시간이 흐르자 민중운동도 많은 것이 변했고 그를 변절자라 비난했던 이들 중에서도 생각을 바꾼 사람이 여럿 나왔다.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총 3권으로 출판된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는 90년대 운동권 필독서로 꼽히며, 민족주의 계열 학생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총 3권으로 출판된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는 90년대 운동권 필독서로 꼽히며, 민족주의 계열 학생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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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을 쓴 이유

얼마 전, 박세길은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포스트 코로나,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부제가 달린 <대전환기 프레임 혁명>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시장의 위기가 아닌 자본 중심 경제의 위기로 분석한다. 소위 4차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변화도 자본 중심 경제에서는 일자리 감소와 저임금 구조를 고착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자본'의 자리를 '사람'으로 대체하는 프레임 혁명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에 시작된 고민을 정리한 것이니 길게 보면 27년이 걸린 책이에요. 당시 피터 드러커의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라는 책을 봤는데, 미국을 대표하는 경영학자가 자본주의의 수명이 다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너무 놀라웠어요. 강성 좌파들도 소련이 붕괴하니 일시에 자본주의로 투항하던 때였는데 말이죠. 냉전적인 사고를 벗어나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함께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제 조금 정리한 결과가 이 책입니다."
 
박세길은 자본의 자리를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이 국가 대 시장 프레임 안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이 아니라 프레임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시대는 가치 창출의 주요 원천이 노동력에서 창조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간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본 중심 경제에서 자동화는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으로 나타나요. 그렇지만 사람 중심 경제에서 자동화는 사람의 역할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동화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4.0을 추진하면서 오히려 고용이 늘었어요. 자동화가 사람을 대체해버리면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 악화로 귀결됩니다."

'자본'만을 중심에 둔 경제를 사람이 중심에 선 체제로 바꾸자는 제안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해법으로 들어가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사회의 온갖 기득권의 작동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는 민주화세대와 노동운동은 그가 말하는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핵심적 동력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며 새롭게 등장한 촛불세대에 주목한다. 공통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일정한 정체성을 형성해온 유일한 청년 집단은 '촛불세대'며, 이들에겐 개방성과 수평성, 다양성 등 사람 중심 경제에 필요한 속성이 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도 586세대지만, 민주화세대의 주축인 586세대는 적어도 새로운 개혁의 핵심 동력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상당부분 기득권화 되어 있고, 교육에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자녀에게 세습하려는 욕망이 강해요. 이 점에 대해서는 대공장 중심의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586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 민족문제나 통일문제에서는 이 세대가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의제 자체가 실종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586세대는 새로운 세대(촛불세대)가 주역으로 등장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역할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저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보면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목격했어요. 이들이야말로 사람 중심 경제를 만들어낼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586세대에 대한 비판이 언론의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지만, 그는 586세대의 종말이나 청산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주문한다. 물론 그 역시 586세대지만, 현실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동년배에 대한 실망감은 숨기지 않았다. 진영논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고 있고, 더욱 시대착오적인 세력이 다시 힘을 가질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대교체에 실패한다면 다음 총선에서는 그들에게 크게 패배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최근에 펴낸 <대전환기 프레임 혁명>은 1991년 소련의 몰락 이후 27년 동안의 고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이 자본을 대체해야 하며, 촛불세대로의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에 펴낸 <대전환기 프레임 혁명>은 1991년 소련의 몰락 이후 27년 동안의 고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이 자본을 대체해야 하며, 촛불세대로의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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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세대 위해 기성세대가 손 잡아야
 

어느 때이고 세대교체의 당위성이 강조되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만큼 세대교체는 상당 기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어느 때고 세대교체가 기성세대의 아량이나 배려로 이뤄진 적도 없다. 오직 견고한 기성세대의 틈을 비집고 나온, 새로운 세대의 역량으로만 가능했다.

그러나 촛불세대는 새로운 속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90년대 중후반 이후 노골화된 전사회적 신자유주의화에 그대로 노출된 세대이기도 하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이며 다양하지만, 그 만큼 각자도생, 약육강식 논리에 익숙하다. 출생연도로 퉁 치기엔, 하나의 성향으로 이 세대를 아우르는 것도 무리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로 되면서 (촛불세대가) 집단적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한 세대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세대가 자연스럽게 성장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세대교체는 '세대 협력'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배 세대의 역사성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세대와의 연결성을 갖추고 있는 70년대 후반에 출생해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97세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586세대가 환경 조성과 지원 역할을 맡고, 97세대가 세대를 연결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면서 촛불세대로의 세대교체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가 제안하는 세대교체의 출발점은 촛불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몇몇 정치인이 드문드문 등장했을 뿐, 아직 새로운 세대는 세력화되지 못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선택의 문제라면 가능성을 살펴봐야겠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 무조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처럼 놔두면 미래가 없어요. 이 문제를 공적문제로 인식하고, 동의하는 사람, 세력, 단체들의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의 주장이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다양한 논쟁거리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큰 방향성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을 달기 어렵다. 문제는 어렴풋이나마 비전을 그려보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들, 실현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그 길이 꼭 가야 할 길이라면, 그의 말처럼 무조건 가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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