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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어느 초등학교 컴퓨터 교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윤근혁
서울 ○초 임아무개(11)양은 일주일에 세 번은 아침밥을 거른다. 학교에서 아침 8시부터 실시하는 '0교시 수업'에 한 주에 세 번씩은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특기적성교육을 들으려면 아침 7시 50분까지 도착해야 하니까 새벽 6시엔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야 해요."

이 컴퓨터 강좌는 초등학교에서 공식 진행하는 특기적성교육. 정규수업 시작 시간인 9시보다 한 시간 앞서 수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초등생 0교시는 서울, 경기, 대전, 충청 등 전국 상황

이처럼 코흘리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0교시 수업'을 벌이는 곳은 임양이 다니는 초등학교뿐만이 아니다. 서울 ㄱ초, ㄴ초, ㅅ초, ㅇ초, ㅈ초, ㅊ초 등 기자가 확인한 전체 10여 개 학교 가운데 절반 가량이 이에 해당됐다.

수업 시작 시간 또한 아침 7시 40분인 학교도 있었다. 이런 수업은 경기, 대전, 충청 지역 등 상당수의 초등학교에서 버젓이 진행되고 있었다.

▲ 국민체조를 하는 아이들. 이들은 누구의 장단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가.
ⓒ 윤근혁
특별한 통계는 없지만 전국 상당수의 초등학교가 교육부에서 금지한 0교시 수업 판을 펼쳐놓은 셈이다. 다만 학부모의 희망원을 학교에 낸 아이들 40∼1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규모 수업이란 점이 중등의 0교시 수업과 다를 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초등학교 과학정보 부장교사들은 "컴퓨터 강좌를 진행하는 민간 업체와 학부모들이 새벽 수업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오후엔 학원 예약이 되어 있는 관계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새벽 시간이 좋다'는 것.

하지만 이런 0교시 수업은 최근 논란 끝에 정부에서 금지를 지시한 바 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4월만 해도 몇 차례에 걸쳐 '고교 0교시 보충수업은 불법'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여태껏 초등학교 '0교시 수업'은 특별한 문제제기나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번번이 이런 발표에서 빠져 있었다.

방대곤 서울 난우초 교사는 "컴퓨터 강좌를 빌미로 해서 초등학생 대상 0교시 수업을 강행하는 것이야말로 중고등학교에 견줄 수 없는 반교육 행위"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 8시간 이상씩 자야 정상발육을 하는 어린이들한테 0교시 수업을 한다는 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냐. 일부 학부모들과 컴퓨터 업체들의 입김에 밀려 이런 반교육 행위를 하는 초등학교 관리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박준표 경기 천마초 교사도 "밥을 굶은 3학년 아이들이 아침 8시에 컴퓨터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히다"면서 "교사들이 반대하는데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통과되어 문제없다고 하니 할말을 잃게 된다"고 털어놨다.

서울시교육청 "실태 조사 후 금지토록 하겠다"

▲ 대한상공회의소 컴퓨터 시험일정을 전시한 어느 초등학교 컴퓨터실 입구.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윤근혁
이런 현상에 대해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교육부는 이 번 달에 초등학교 특기적성활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일 계획이지만 4일 현재 운영시간에 대한 조사 항목은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0교시' 운영실태도 파악할 수 없는 겉치레 조사인 셈이다.

교육부 학교정책과 관계자는 "교육부가 0교시 수업을 금지한 것은 중등 보충자율학습에 대한 것"이라면서 "초등 특기적성 활동을 같은 맥락의 '0교시 수업'으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사실상 단속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

반면 서울교육청 교육정책 관련 중견 간부는 "서울교육청이 0교시 수업을 금지토록 한 것은 초등학교에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해 교육부와 상반된 반응을 나타냈다. 이 간부는 "아직 초등 0교시 수업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관계 부서와 협의해 금지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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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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