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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와 헤어져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준수 곁을 떠나면 일주일 뒤에나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준수는 늘 밝은 표정으로 아빠를 보내주었습니다. 수술 직후에는 희미한 미소로 보내주었고 약의 독성에 취해 얼굴이 찐빵처럼 부풀어 있을 때도 웃으려 애를 썼습니다. 휠체어를 탄 이후에는 재활 병동 현관까지 따라와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 아들 준수
ⓒ 이기원
그런데 오늘 준수는 떠나려는 아빠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의자 짚고 일어선 자세가 일주일 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지고 왼발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좋아진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전에 없던 일에 무척 당황했습니다.

아빠가 떠난 후 일주일을 또 답답한 병실에서 지낼 생각을 하니 슬퍼서 그려려니 생각하고 녀석을 다독거렸습니다.

"준수야, 갑갑하고 힘들어도 잘 참고 견뎌라. 지금까지 잘 참아왔잖아. 이제 힘든 고비 많이 넘기고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으니 틀림없이 좋아질 거야. 힘내고 일주일 뒤에 보자."

준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도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돌아서 재활병동을 나서는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애절한 심정이라고 하지요.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이란 말이 이런 경우구나 싶었습니다.

재활 치료는 환자 본인의 의지가 절대적이라고 합니다. 녀석이 이러다가 제풀에 지쳐 주저앉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우는 녀석을 두고 돌아오는 마음이 너무 아파 잠도 못 잘 거 같다면서 집에 도착할 무렵 준수가 아빠에게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억지로 밥을 챙겨 먹었습니다. 엄마가 없는 집이 제대로 일 수 없습니다. 청소기를 들고 방안 곳곳을 청소하고 빨래거리 모아서 세탁기에 집어넣고 돌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준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준수야, 아빠가 간다고 할 때 왜 울었어?"
"학교 다닐 때가 되어도 걷지 못할 거 같아서…."

그 말을 듣고서야 준수가 운 이유를 알 거 같았습니다. 내가 병원을 떠나기 전에 의사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들은 것이지요.

다른 환자에 비해 회복이 빠르고 다리에 힘도 많이 붙었지만 걷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배설 조절도 어려운데 병원을 떠난 후 가장 큰 어려움이 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휠체어 타고 경사로를 오르는 훈련을 꾸준히 계속하라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되어 등뼈가 휠 수도 있으니 꼭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술만 끝나면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녀석입니다. 그런데 벌써 두 달이 흘렀습니다. 다리에 힘은 붙었지만 의사 선생님 얘기로 미루어 졸업식과 중학생이 되어서도 자신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 거란 불안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오줌이라도 싸고 싶다던 준수에게 오줌을 빈 병에 받아내기 시작한 게 수술 한 달만입니다. 두 손으로 의자를 잡고 처음 일어선 게 수술 후 50일만입니다. 그런 과정을 전화로 준수에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두 달 정도 남았고 중학교 입학은 3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조급한 준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발가락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는 것에만 들떠 지내온 날들입니다. 아빠라고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애절한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 심정이 어찌 당사자인 준수의 마음만이야 할까요.

전화로 준수에게 얘기했습니다.

"준수야, 미안해. 아빠가 준수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했구나. 그래도 힘을 내라. 지금까지 준수는 잘 견뎌 주었어. 준수가 힘을 내야 아빠도 힘을 낼 수 있단다."

준수가 대답했습니다.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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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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