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사건을 보자.
[상해] 2016년 4월, 피고인은 주먹으로 다리, 팔, 얼굴을 때렸다.
[폭행] 2017년 1월, 피고인은 피해자의 옆구리를 걷어 차 폭행했다.
[폭행치사] 2017년 4월, 피고인은 주먹으로 피해자의 배를 수 회 때리고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그 날 새벽, 피해자는 복강 내 과다출혈로 생을 마감했다.
판결문 '범죄사실'에 적힌 사건 경위다.
피고인은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둘은 2012년부터 동거하던 연인사이였다. 피고인은 2012년 9월 피해자의 얼굴을 때려 입건돼 수사를 받기도 했다. 피해자가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반복된 폭력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2018년 11월 열린 1심 재판에서 판사는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피해자의 몸을 닦고 속옷을 갈아입히는 등 죄증을 인멸하는 행위를 한 다음 119에 신고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피고인은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빌기는 커녕 태연히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 8차례 폭력 범죄로 처벌 받은 전력도 있었다. 판사는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선고한 형량이 징역 4년이다. 2016년 4월 이후 발생했던 상해·폭행·폭행치사를 모두 합친 형량이었다.
일러스트 - 고정미
3년 동안 여성 108명이 '교제살인'으로 목숨을 잃었다. 남성 108명이 한 때 가장 사랑했던 자신의 연인을 살해했다. 때려 죽였고, 목 졸라 죽였고, 찔러 죽였다.
그에 따른 형량도 천차만별이었다.
<오마이뉴스>는 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이용해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발생한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을 찾아 분석했다.
108건 중 살인죄가 선고된 경우는 85건(78.7%)이었다. 치사죄가 적용된 경우 또한 23건(21.2%)이나 됐다. 108건 중 감옥 수형 기간을 수량화할 수 없는 무기징역(8건)과 집행유예(2건)를 제외하고 98건을 대상으로 평균 형량을 계산했다. 연인을 죽인 가해자 98명의 평균 형량은 14.9년이었다.
형량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살인과 치사를 나눠서 분석해봤다. 98건 중 살인은 77건이었고, 치사는 21건이었다. 살인 사건 77건의 평균 형량은 17.1년이었다. 범행 유형별로 따져봤더니 흉기나 둔기로 살인한 경우가 4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평균 형량도 18.2년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는 교살(목 졸라 죽임)이 29건으로 많았으며 평균 형량은 15.6년이었다. 추락 살인은 1건(징역 15년)이 있었다. 폭행 살인도 3건이나 있었는데, 평균 형량은 13년으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 중 2건이 미필적 고의로 인한 살인이었다.
살인 17.1년, 치사 6.6년... 흉기 들면 18.2년, 목 조르면 15.6년
"살인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폭행 등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였다면 충분하며, 그 인식이나 예견은 확정적인 것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이른바 미필적 고의로 인정되는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2016고합○○○ 판결문 중)
미필적 고의도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치사다. 치사 사건 21건의 평균 형량은 6.6년이었다. 그 중 3건은 방화치사(징역 25년), 특수감금치사(징역 10년), 강간치사(징역 7년)였다. 대화를 거부한다고 버스에 불을 질러 운전사로 일하던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이별을 통보했다고 모텔방에서 칼을 들고 위협하는 남성을 피하던 여성이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강간하고 화가 난다고 피해자를 밀어 머리를 방바닥에 부딪혀 숨지게 했다.
나머지는 모두 폭행 및 상해치사였다.
그 중에는 피해자를 골프채로 구타한 사건(징역 5년)도 있었고, 주먹으로 때리다 피해자가 실신하자 복도로 끌고 나가 20분을 방치했다가 다시 폭행한 사건(징역 4년)도 있었다. 가해자가 격분하여 "주먹과 발로 온 몸을 수십 회 때리고, 넘어진 피해자를 수 회 발로 짓밟고", 그 후 대화를 하다 다시 격분하여 "머리 부위를 수 회 때리고, 발로 옆구리 부위를 수 회 밟고, 손으로 목 부위를 쳤고", 이어 재차 분노하여 "주먹으로 얼굴을 수 회 때리고, 손으로 목을 쳐 넘어뜨리고, 넘어진 피해자에게 올라타 손으로 목을 조른" 사건(징역 3년 6월)도 상해치사였다.
사람을 죽도록 폭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고의나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고 검찰과 재판부는 판단했다. 폭행 및 상해치사 사건 18건의 평균 형량은 5.4년이었다.
여기 또 다른 사건이 있다.
피해자는 2016년 10월, 2017년 6월, 2017년 8월 등 세 차례에 걸쳐 남자친구를 폭행 신고했다. '남자친구'는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이었다. 2017년 9월, 그는 또 다시 주먹으로 피해자의 복부를 때렸다. 피해자는 그로 인해 숨졌고 사건은 상해치사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됐다. 1심 재판부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피고측은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고, 검사는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오래 전부터 조현병 등으로 치료를 받아왔고, 이 사건 당시에도 심신 미약 상태"란 걸 유리한 정상으로 판단하면서도 그렇게 판결했다. 이는 '심신 미약 감경으로 인한 권고형의 범위(징역 2년~4년)'를 크게 상회하는 양형이었다. 김복형 재판장은 "피고인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면서 이렇게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가 아무런 동기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피고인은 여성인 피해자의 복부를 강타하여 젊은 나이의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바, 그 결과가 너무 중하다. 생명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하고도 엄숙한 것이며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