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배 띄워 낚시대를 드리운다조선시대에 진경산수화로 이름을 날린 겸재 정선의 작품 중 일부입니다. 강가에 작은 배를 띄워 놓고 낚시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가롭게 잘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몰아치면 작은 강도 무섭게 변하곤 합니다. 하물며 드넓은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친다면 작은 배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울까요?
호림박물관 소장
하얀 파도가 부서지고 갈매기가 나는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멀리 바다 건너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찬란한 햇빛이 해안을 감싸는 맑은 날의 이야기이고, 만약 그 반대의 경우처럼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잡아먹을 듯이 밀려올 때면 바다는 거대한 공포의 현장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먼 바닷길로 무역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바람은 반드시 넘어야만 할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는 않는 듯 그렇게 바다로 떠난 사람들이 영영 못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무슨 무슨 표류기처럼 풍랑에 좌초된 후 깨어나 보니 딴 세상이었다는 이야기와 그곳의 경험담은 어릴 적 탐험가를 꿈꿨던 사람들에게 아직도 가슴 설레게 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기구한 표류인의 이야기가 있으니 한번 그 험난한 여정을 함께 가보실까요.
도대체 그 말이 뭔 말인지...1807년, 순조 7년 8월 어느 날, 제주목사 한정운이 보내는 서신이 임금께 전달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표류했던 여송국(呂宋國 : 필리핀)의 사람들을 본국으로 송환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6년 전에 제주도에 난파당한 배에 이끌려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이들 필리핀인들은 5명이 제주도로 떠내려 왔는데, 글과 말이 모두 통하지 않자 비변사의 회의에서 청나라의 성경(盛京)으로 압송하라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죽을 고생 끝에 청나라에 도착한 그들은 다시 청나라에서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알 수 없다며 떠밀자 다시 제주도로 험난한 길을 다시 걸어와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타깝게 한 사람이 죽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난민 생활을 하던 중 또다시 한 사람이 풍토병으로 죽고 나머지 세 사람만이 가족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 사람들의 언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어느 나라로 보내줘야 할지를 판단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 여송국 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면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로 한참을 말하다가 그 나라의 모습을 땅바닥에 그리고 언제나 "막가외(莫可外)"라 일컬으며 멀리 동남쪽을 가리키곤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사람 어느 누구도 '막가외'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한동안 그들은 제주도에 회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도저히 상황 판단이 안 된 제주목사는 우선 근처의 목장에 머무르게 하고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식량을 계속 대주면서 조선의 언어를 익히라고 명령하였고, 이후 이들의 고달픈 삶은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특별한 군사적 사항이 아니면 조선시대 당시에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조선에 표류했지만 대부분 일정한 조사를 마치면 본국으로 보내 줬습니다. 특히 명이나 청나라의 사람들은 정말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배 굶지 말라고 식량과 여비까지 두둑이 챙겨줘서 보내 주곤 했습니다.
또 만약 배가 부서졌을 경우 배를 고치는 장비를 빌려 주거나 중요한 부품을 만들어서 스스로 떠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세종의 경우는 표류한 뱃사람들에게 원래 실었던 양의 쌀을 내려 주고 음식까지 잘 챙겨 먹여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기도 했습니다.
흑산도 홍어장수 문순득, 필리핀 방언에 능통하다그런데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그 뜻이 하늘에 통한다고 하듯이 몇 년 후 드디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조선 사람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흑산도 홍어장수 문순득이었습니다. 문순득은 한 번에 그 사람들의 외모와 복장을 보고 여송국의 사람인 것을 알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여송국의 언어로 서로 물어보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렇듯 조선에서 자신들의 나라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자 그들은 미친 듯이 울기도 하고 외치기도 하며 얼싸안고 기뻐했습니다. 이후 그들이 줄기차게 외쳤던 "막가외(莫可外)"가 그 나라의 관음(官音)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여송국인이라는 것을 문순득이 보증하자 표류인들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무도 자신들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몰랐는데, 홍어 장수 문순득이 짠∼ 하고 나타나 통역을 해주니 어찌 아니 기뻤겠습니까. 이후 이들 여송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라감사 이면응과 제주목사 이현택이 상세히 기록해서 임금께 상소를 올리니 임금은 드디어 여송국으로 송환하라고 답변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