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까리와 담쟁이이승철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아파트에 살고 있는 큰아들이 모시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작은 텃밭을 가꾸는 소일거리마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며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겠다고 한다.
"가난이야 내 평생의 동무인데 뭘, 이젠 가난이 뭔지도 몰라."
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난이 너무 익숙하여 이젠 가난을 느끼지도 않는단다. 고추밭 옆에 역시 정말 손바닥처럼 좁은 이랑이 가지런하다, 뭘 심었느냐고 물으니 김장용 무랑 배추 씨앗을 뿌렸단다.
또 다른 텃밭의 가장자리엔 예쁜 꽃들이 함초롬히 피어 있다. 나무 위를 타고 올라간 넝쿨들 사이로 빨간 꽃과 남색 꽃을 자랑이라도 하듯 피워놓고 서늘한 바람 속을 나는 벌 나비를 부르는 모습이다. 그 옆에는 해바라기 한 송이가 달랑 피어 식어가는 태양을 저 혼자 독차지라도 하려는가 보다.
모과나무와 배나무가 서 있는 작은 마당을 가진 어느 집 블록 담장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하게 뒤덮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넓은 이파리 사이로 언뜻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아 들여다보니 역시 열매들이다. 열매가 전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담쟁이도 작은 열매들을 촘촘히 맺고 있었던 것이다.
"가을아, 너 벌써 여기 와있었구나. 아직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정다운 풍경에 취해 비좁고 초라한 골목길을 한 시간 가까이 돌아다녔지만 땀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선선해진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들녘에 나가면 황금물결이 출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