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불능화 합의'가 갖는 의미

6자회담, 남북정상회담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등록 2007.09.04 09:25수정 2007.09.0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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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국에 대해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도 ‘선거’에 대통령 선출과 정권이 달린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지지율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선거가 다가오면 그 정도는 더 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선은 2008년 11월입니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1년 안팎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그다드 안정화 작전(2007년 2월에 미군·이라크군 합동으로 개시된 소탕 작전)'이 실패하는 등 이라크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고, 대북강경책이 통하지 않으면서 지지율이 꽤 낮은 상황입니다. 2007년 6월을 기점으로, 32%였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배럭 오바마, 존 에드워즈 등이 가장 부각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후보들이 이렇게 부각되는 이유 중 하나는,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정권 지지율이 낮은 것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차기정권을 야당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으로서는 정책 기조의 변화를 주는 방법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부시 정권이 이라크와 북한에 견지했던 전략은 ‘윈-윈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와 북한 양쪽 모두를 전쟁으로써 상대해도 이길 수 있는 ‘2개 전쟁 동시 승리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의 상황과 ‘이란의 핵개발 가능성’ 등이 부시 행정부의 ‘윈-윈 전략’을 사실상 좌절시킨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서 북한이 돌출하기 시작합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이런 사정을 아주 화끈하게 이용합니다.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을 매개로 일종의 협박을 시작한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이라크’와 ‘북한’, 두 곳 모두에서 건질 것이 없어질 수도 있게 된거죠.


그래서, 북한과 대화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된 것이고, 실제로 2006년 11월에 중간선거에 공화당이 패배하면서 네오콘의 한 축이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해임됩니다.


이때부터 MD(미사일 방어체제)를 위해 ‘북한 핵’을 악용하던 네오콘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부시 행정부는 본격적인 대화의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지난 2월 13일의 ‘2·13’ 합의로 가시화되기 시작합니다.


북미, 연내 핵 신고ㆍ불능화(혹은 무력화) 합의


지난 2일에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에서 발표된 ‘핵 불능화 합의’는 과거의 ‘2·13 합의’에서 보다 진일보된 합의입니다.

 

‘연말’이라는 구체적인 시한까지 못박아둔 상태에서 북한의 비핵화 2단계 조치인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연내 전면신고를 실행한다는 합의이며, 미국은 대신 상응하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등, 일종의 ‘기브 앤 테이크’를 합의한 것입니다.


참고로, ‘테러지원국 명단’과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는 ‘대북 경제 제재’의 근간을 이루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조치가 해제되고 북한이 핵포기 수순을 순순히 밟는다면 ‘경제 지원’이나 ‘경제 교류’ 등을 비롯한 북한과 미국 간의 전면 교류, 나아가 북미 관계의 정상화의 최종도착지점인 ‘종전 선언’과 ‘북미 수교’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럴 경우, 이 선언의 영향은 한반도 주변 정세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일본은 태생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나라이며, 여기에서 소외되면 ‘왕따’를 면할 수 없게 됩니다. 일본 역시 북일관계 정상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10월 2일로 연기된 이유 중 하나로 “6자회담을 고려한 미국의 불만”을 고려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합니다. 참고로 6자회담 본회담은 9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 6자회담에서 ‘제네바 합의’를 추인하고 세부적인 계획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을 합니다. 아주 중요한 회담인 것입니다.


지난 2000년 6월 15일의 남북정상회담은 중국의 장쩌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개최됐던 회담입니다. 부시 행정부 역시 이 전례를 기억하고 있겠죠. “6자회담을 고려한 미국의 불만”이라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미국의 의중이 발견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2·13 합의’에 이은 ‘9·2 합의’,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이 과정에서 실질적이고도 획기적인 변화가 합의되고 추진된다면, 미국으로서도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북 문제’가 한결 수월해지면서 미국 유권자들에게 “부시 행정부가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이란·이라크 문제’에 좀 더 매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부시 대통령 스스로도 “임기 내에 북핵을 해결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예상에서 벗어난 ‘변수’도 계산해야만 합니다. 국내 언론의 보도에는 ‘불능화’라는 말만 등장하는데, 실제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무력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불능화’는 “북한의 현재 핵은 물론, 다시 핵을 개발할 가능성까지 파기한다”는 뜻이지만, ‘무력화’는 일종의 ‘잠정 중단’과 같은 것입니다. 수 틀리면 다시 핵을 개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뜻입니다. 이 차이, 사실 엄격하게 구분하고 준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로 김정일은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미군 철수”를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그런 김정일을 향해,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설득하며 ‘평화유지군 체제’라는 틀을 제시해 동의를 이끌어낸 적이 있습니다.

 

이 ‘평화유지군 체제’는 일부분, 중국을 겨냥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예, ‘동북공정’ 때문일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면서, 북한에 정치적 혼란이 올 경우 인민해방군을 진주시켜 평양을 점령하려 할 것입니다.

 

중국의 그런 속내를 북한도 느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경제제재를 비롯한 미국의 대북공세가 오히려 중국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북한은, 생필품의 80~90% 가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그러면서 빠른 속도로 북한의 지하자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북한의 광산 장기 채굴권을 따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이 작용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북미 대화’를 매개로 경제제재 조치가 해제되면 무차별적으로 중국에 넘어가고 있는 경제적 자원들을 지켜낼 여력도 서서히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는 ‘동북공정’이라는 가장 큰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힘도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중국’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판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동북아 균형자론’, 서서히 빛을 보는가?

 

뜬금없이 여기서 왜 ‘동북아 균형자론’이 나오느냐는 이야기를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7년 전의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거론된 ‘평화유지군 체제’, ‘제네바 합의’ 등을 판단해보건데, 연결고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노무현 대통령도 거론했듯이 “한미공조가 굳건해야 한다”는 선결조건이 붙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로부터 “미군 주둔 필요성, 평화유지군 체제 전환”에 대한 동의를 얻었습니다. 이 ‘평화유지군’은 기본적인 억지력을 가질 것입니다. 중국, 나아가 ‘보통국가’에 대한 야심을 아직도 잊지 않은 일본까지 고려한 억지력일 것입니다.

 

아무리 김정일이 동의했어도, 김정일로서는 50년 넘게 북한 체제의 주요 선전선동 수단 중 하나이던 ‘미군 철수’를 섣부르게 내세우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계적으로 미국과의 대화, 경제 제재 해제 등의 성과를 얻어내면서 명분을 얻어내고, 장기적으로는 북미수교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북미대화’와 ‘남북정상회담’에서 성과를 얻어내야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진전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며, 중국과 일본 간의 패권 전쟁으로부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균형자’가 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점에서 볼때, ‘제네바 합의’는 앞서 이야기한 ‘불능화’와 ‘무력화’ 사이의 미세한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여러모로 획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죠. 남북대화, 그 성과를 얻어내면서 우리는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방안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6자회담, 남북정상회담을 주목해야 할 때

 

‘선거 변수’가 ‘생존’의 우위에 선다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북미대화’나 ‘남북정상회담’이 ‘선거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2000년 총선 때 알 수 있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는 총선 전에 발표됐지만, 막상 총선은 야당의 승리로 끝났던 것입니다.

 

‘남북대화 과정’이나 ‘남북대화 성과’ 등의 지표가 선거 자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거’를 떠나, 그 자체만을 바라보는 모습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미국’을 어떻게 활용하고,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만 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만을 주목합시다. ‘한반도 빅뱅’이라는 표현까지 오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몇 달이 우리로서는 중대한 시기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몇 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정권을 가진 유권자로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9.04 09:25ⓒ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네바 합의 #북핵폐기 #북핵폐기 #불능화 #남북정상회담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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