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빈 속의 러시아, 성소피아 성당의 모습할빈이 러시아의 동만철도 개통과 함께 건설되었음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서부원
할빈은 헤이룽쟝성의 수도로서 인구 400만명(2004년 기준)이 넘는 거대 도시이지만,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습니다. 20세기 초 러시아가 바이칼호 동쪽 지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기 위해 만주를 관통하는 동만 철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도시입니다.
남북 방향으로 동만 철도가 놓이고, 동서로는 내륙 수로인 쑹화쟝이 교차하고 있어 천혜의 교통 요지로서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는데, 주목을 받게 된 만큼 할빈이 겪은 역사적 상처 또한 컸습니다.
청나라의 발상지였지만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각축 속에 러시아가 조차했고,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러시아인들의 일시적인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9·18사변(만주사변)'이 일어나 일본의 대륙 침략의 전초 기지로 쓰이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소련군에 1년간 점령당하게 됩니다. 1년 뒤 중국 공산군이 탈환해 지금에 이르고 있으니,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동북아 근현대사의 산증인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적을 넘나드는 역사의 흔적을 통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일본·러시아 등 네 나라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격동의 근현대사를 공유하며 이 곳 할빈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내 중심가에 서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소피아 성당은 이 곳에 동만 철도가 지나고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세워진 할빈의 '러시아식' 랜드마크입니다.
지금은 건물 외양을 제외하고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고 내부가 건축 박물관으로 개조된 채 관광 명소로만 활용되고 있는데, 지난 문화대혁명 시기에 건물 일부가 훼손되었다가 근래 들어 복구되었습니다.
중국의 여느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 건물의 안팎을 거닐면서 한 때 이곳 할빈이 러시아 밖의 도시 가운데 러시아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음을 되짚어볼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