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도 나는 북엇국을 끓였다. 술 먹은 남편을 위해서도 아니고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애완견을 위해서다.
전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외출하면 보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뚱뚱해요"라고 한마디씩 하곤 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왜 이렇게 말랐어요?"라거나 아니면 "그때 그 강아지 아니지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먹는 것도 잘 먹고 평소와 같이 운동도 잘하는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걸 보다 못해 동물병원을 갔다. 우리가 종합검진을 받는 것처럼 강아지도 여러 가지 검사가 있나 보다. 초음파검사에 혈액검사 CT 촬영까지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특별한 병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검사결과는 '당뇨병'이란다. 소변검사결과 당뇨 수치가 +표시가 한 개만 나와도 당뇨인데 무려 네 개나 찍혀 있었다. 당뇨 수치가 6.7이란다.
주위에서 당뇨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아는 왔지만 강아지가 당뇨병에 걸렸다는 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만큼 강아지 키우기에 무심했었나 보다. 지금껏 애완견을 예뻐한다며 우리가 먹을 때 똑같이 고기도 주고 빵도 주고 치즈도 주었으니 비만이 되었다.
반려동물로 오래 데리고 살려면 먹는 걸 조심해서 먹여야 하고 사람 먹는 건 아예 주지도 말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충고를 그동안 수차례 들어왔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그렇게 냉정하게 딱 끊고 주던 음식을 안 주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모질게 마음먹고 우리끼리 음식을 먹고 있노라면 살며시 와서 빤히 쳐다보다가 발로 살짝 신호를 보낸다. 얼른 달라는 뜻이다. 몇 차례 모른 척 거절하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도루 주길 여러 차례! 이제 와서 누구 탓을 하겠는가. 다 내가 자초한 일인 걸.
동물병원에서 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싸우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치료를 하자는 내 의견과 사람도 당뇨병에 걸리면 고치기 어려운데 강아지 당뇨병 치료가 가당키나 하냐는 남편과의 이견차이 때문이었다. 이십만원이나 하는 검사비도 부담되는데 앞으로 인슐린 주사를 꼬박꼬박 맞히러 가며 치료를 할 수 없다는 남편의 말이다.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집 팔아서 치료 해 줄 거냐?"며 다그치는 남편의 말에 맞서고 싶지는 않다.
며칠 동안 서로 말도 안 하면서 지내다, 하도 답답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인터넷을 통해 강아지 당뇨병치료를 위한 민간요법을 알게 되었다. 마른 북어를 주기도 하고 맥문동을 끓여 그 물을 먹이기도 하고 브로콜리도 주면 혈당치가 낮아진다고 한다.
내 정성이 통한 건지 아니면 민간요법이 맞아떨어졌는지 생기가 나서 큰소리로 짖기까지 하니 대견하다. 용기가 났다.
'그래 고칠 수 있을 거야!'
내친김에 사람도 못 먹는 홍삼 편을 이만오천원이나 주고 사왔다. 식구들 눈치가 보여 몰래 먹이기까지 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더니 이내 나 없을 때 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차도가 보이니 희망을 갖게 되었다.
섣부른 희망은 때론 더 큰 절망을 가져오나 보다. 이틀 전 산책을 하러 데리고 나갔다가 나무에 부딪히는 걸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그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나 보다. 안쓰럽고 딱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집 안에서조차 늘 다니던 길로 어림짐작으로 다녀 이리저리 부딪히곤 한다. 티 테이블 바닥에서 낮은 포복으로 기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 베란다에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저도 어지간히 답답한가 보다.
앞이 갑자기 안 보이니 당황하고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이 되어 다른 기능도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한다. 토요일 병원에 가서 얻은 수의사로부터의 답은 치료를 하는 데까지 하긴 하겠지만 나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란다. 함께 해 온 십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병원 가서 예방접종이며 치료받을 때마다 남편은 "너 때문에 수천만원 들어. 이구!"하면 우리 타잔은 막 대들며 짖어댄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남편도 나도 가족 이상으로 대접을 해왔다.
강아지한테 들어간 돈이 천만원이 넘는다 해도, 우리에게 준 즐거움은 수억원의 가치도 넘는다는 남편의 말에 동감이다.
오늘부터 인슐린투여를 하며 통원치료를 받는다.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함께 산책도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제는 앞이 안 보이면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눈을 감고 아파트 올라오는 길을 걸어봤다. 잠깐이었지만 어디로 잘못 들어설까 두렵고 무서웠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늘 다니던 길을 안고 다니며 차근차근 설명을 하며 산책을 했다.
"여긴 횡단보도야. 여기 토끼가 있네, 저기 자동차가 오네" 등 다른 사람이 보면 반미치광이처럼 말이다. 가끔 숨을 몰아쉬면 겁이 나다가도 쌔근쌔근 잘 자고 전화받으려 소릴 하는 모양을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하루에도 여러 번 희비가 엇갈린다.
며칠이 될지 몇 년이 될지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두 내외는 최선을 다해 치료도 해 보고 정성을 다하려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