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금성의 황제다

<중국기행 40> 자금성(紫禁城) 외조(外朝) 기행

등록 2007.09.05 09:29수정 2007.09.0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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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금성에서 여인들의 생활공간인 내정(內廷)의 공간 여행을 마쳤다. 한참을 걸었지만, 아직 황제가 정치활동을 하던 곳에는 이르지 못했다. 자금성의 내정과 외조(外朝)를 구분하는 정문인 건청문(乾淸門)을 나섰다.

외조의 삼대전(三大殿) 중의 하나인 보화전(保和殿)이 눈앞에 떡 버티고 서 있다. 황제의 정치공간인 이곳에서부터 시야가 시원하고 넓게 트인다. 세계 최고의 권력이라고 자부하던 명나라 당시의 황제들이 온갖 공력을 들여 세계에서 가장 크게 만들고자 했던 궁궐의 모습이다.


보화전 대석조 산과 바다 위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꿈틀거린다.
보화전 대석조산과 바다 위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꿈틀거린다.노시경

보화전에서 사람들의 기를 죽이는 것은 바로 보화전 뒤쪽에 자리한 돌층계이다. 이 층계 중앙에는 현란한 중국 석조기술이 농축된 대리석 조각, 운룡대석조(雲龍大石雕)가 남아 있다. 나는 보화전에 이르는 높은 계단을 한발 한발 내딛으면서 이 조각을 살펴보았다. 이 조각에는 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산과 바다 위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며 생동감 있게 꿈틀거리고 있다. 중국의 황제는 이 대석조 위를 가마를 타고 지나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길이 17m에 무게가 약 250톤이나 되는 이 조각이 하나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자금성 내 최대의 석조 작품인 이 하나의 대리석은 베이징 남쪽 50km 지점의 방산에서 수송해 왔다. 당시 이 대리석을 수송하기 위해 2만 명이 동원되었는데, 추운 겨울에 이 대리석을 빙판 위로 밀어서 운반했고, 빙판을 만들기 위한 우물이 10리마다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이야 불도저와 굴착기가 있어서 토목공사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지만, 과거에는 이 엄청난 작업을 인력으로만 수행했다. 과거에는 이 같은 공사가 인력이 넘치는 중국에서만 가능한 공사였다.

3단의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보화전 전면에서는 새해 초하루와 보름에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황제는 보화전 내부의 황좌에 앉아서 신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연회에는 공신들이 참석했고, 중국에 협력적인 독립국이면서 형식적으로는 속국의 위치에 있던 조선 등에서 온 사절들도 참가하였다.

나는 보화전 앞 한 구석에 서서 중국의 황제를 올려다보았을 조선의 신하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황궁에 서 있는 자신의 위치가 자랑스러웠을까? 나는 문득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던 조선 조정에서 파견된 신하가 베이징을 보고 남긴 글을 보고 싶었다.


중화전 황제가 큰 국가 행사시에 잠시 머무르던 곳이다.
중화전황제가 큰 국가 행사시에 잠시 머무르던 곳이다.노시경

보화전 바로 앞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단아한 건물인 중화전(中和殿)이 있다. 황제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중화전은 보화전이나 태화전(太和殿)에서 큰 국가 행사가 있을 때에 황제가 잠시 머무르던 곳이다. 3대전 중 규모는 가장 작지만, 중국의 황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중국의 황제는 이 중화전에서 제사의 제문을 읽기도 하고, 농사정책을 장려하기도 하며 중국의 정치를 이끌었다.

우리 일행은 삼대전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석축 기단을 내려왔다. 삼대전이 더욱 거대하게 보이는 것은 3층이나 되는 이 석축 기단 때문인데, 우리나라 서울의 경복궁과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백색의 기단이 당시 동아시아를 주름잡던 중국의 위세의 높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일행이 이 석축기단 위의 핵심 건물인 태화전을 둘러보지 못하고 석축 기단을 내려온 것은 이 태화전이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경 시내가 올림픽을 앞두고 온통 파헤쳐지고 있는데, 이 자금성 정전(正殿)까지 수리를 하고 있었다. 아마 정전 처마 및 기둥에 도금 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몇 년 전에 본 태화전의 위용을 생각하면, 태화전이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금성 안의 일사불란한 통일미가 사라진 듯 보였다.

중국 최대의 목조건물인 태화전은 자금성 내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면서 한 없이 넓고 참으로 시원한 공간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넓은 공간에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다. 이는 황제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대, 대규모의 출정의식 등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진행되던 태화전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암살자의 은폐물을 없애기 위함이다. 모든 구조물이 사라진 이 공간은 우리나라 서울의 경복궁에서도 볼 수 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길 없는 이 거대한 공간에 멈춰 섰다. 태화전 앞에 무수하게 깔린 직사각형 모양의 박석(薄石)을 내려다 보았다. 큰 돌로 만들어진 일종의 바닥 타일인 박석도 암살자의 궁궐 침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암살자가 땅을 파고 지하를 통해 궁궐 안으로 침입할 수 없도록 정전 앞의 이 넓은 공간을 모두 돌로 깔아버린 것이다.

이 박석을 넓은 바닥에 까는 데에는 엄청난 공력이 들었을 것이다. 또 이 박석을 현대에 유지 보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는 북방의 오랑캐를 막기 위해 산 위에 만리장성을 올렸던 중국인들의 무지막지함을 이 태화전 앞의 끝없는 박석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금수교 유교의 다섯 가지 덕을 상징하는 다리이다.
금수교유교의 다섯 가지 덕을 상징하는 다리이다.노시경

나는 태화문(太和門)을 나와 명당수인 내금수하(內金水河) 위를 건넜다. 내금수하 위로는 유교의 다섯 가지 덕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한백옥(漢白玉) 다리인 금수교(金水橋)가 걸려 있다. 이 중 가운데 다리는 과거에 황제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이다. 물론 이 다리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나도 물론 가운데 다리를 건넜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운데 다리를 건넌 데에는 절대 권력을 누렸던 이의 생활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다.

나는 자금성의 입구인 오문(午門)에 도착해서, 5개의 성문 중 황제가 출입한 가운데 문을 통과했다. 오문의 동쪽 문은 중국의 관료들이 출입했고, 오문의 서쪽 문은 제후와 왕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가마나 말을 타고 온 관리들은 이 오문 앞에 도착하면 가마나 말에서 내려야 했다. 오문을 나선 이후에도 자금성의 면적이 워낙 크니, 그들은 한참을 걸어 궁궐 내 목적지까지 걸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오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문이었다.
오문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문이었다.노시경

이 오문은 비로소 자금성에 들어가는 정문으로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성문이었다. 오문은 남쪽을 향해 ㄷ자 모양으로 축성되어, 높은 성벽 위 성루에서 침입자에게 집중사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중국의 황제는 오문의 2층 문루에서 오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축전 때에 이곳에서 종을 치거나 북을 두드려서 위엄을 과시했다. 그 소리가 ㄷ 공간 속에서 울려 퍼졌을 것이다. 중국의 황제는 특히 자신의 병사들이 전장으로 나가는 날이나 전장에서 귀환하는 날에 이 오문에서 병사들을 치하하며 한껏 위엄을 과시하였다.

과거에 천안문(天安門)을 통과하여 이 오문 앞에 들어올 수 있는 민간인들은 사형수나 전쟁포로들이었다. 황제가 오문에 앉아 이들을 내려다보며 사형에 처하거나 채찍형 등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흐르고 흘러, 황제와 그 자손들은 간 곳이 없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오문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는 또 천안문을 향해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나는 성문 사이의 끝없이 긴 거리가 황제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기를 죽이기 위한 거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세계 최대의 성문 몇 개를 한참을 걸어 통과해도, 자금성 내부 황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황제와 거대한 자금성 내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감과 경외감을 심어 주었을 것이다. 자금성을 거대하게 만든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금성 #보화전 #중화전 #태화전 #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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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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