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전황제가 큰 국가 행사시에 잠시 머무르던 곳이다.
노시경
보화전 바로 앞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단아한 건물인 중화전(中和殿)이 있다. 황제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중화전은 보화전이나 태화전(太和殿)에서 큰 국가 행사가 있을 때에 황제가 잠시 머무르던 곳이다. 3대전 중 규모는 가장 작지만, 중국의 황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중국의 황제는 이 중화전에서 제사의 제문을 읽기도 하고, 농사정책을 장려하기도 하며 중국의 정치를 이끌었다.
우리 일행은 삼대전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석축 기단을 내려왔다. 삼대전이 더욱 거대하게 보이는 것은 3층이나 되는 이 석축 기단 때문인데, 우리나라 서울의 경복궁과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백색의 기단이 당시 동아시아를 주름잡던 중국의 위세의 높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일행이 이 석축기단 위의 핵심 건물인 태화전을 둘러보지 못하고 석축 기단을 내려온 것은 이 태화전이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경 시내가 올림픽을 앞두고 온통 파헤쳐지고 있는데, 이 자금성 정전(正殿)까지 수리를 하고 있었다. 아마 정전 처마 및 기둥에 도금 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몇 년 전에 본 태화전의 위용을 생각하면, 태화전이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금성 안의 일사불란한 통일미가 사라진 듯 보였다.
중국 최대의 목조건물인 태화전은 자금성 내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면서 한 없이 넓고 참으로 시원한 공간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넓은 공간에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다. 이는 황제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대, 대규모의 출정의식 등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진행되던 태화전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암살자의 은폐물을 없애기 위함이다. 모든 구조물이 사라진 이 공간은 우리나라 서울의 경복궁에서도 볼 수 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길 없는 이 거대한 공간에 멈춰 섰다. 태화전 앞에 무수하게 깔린 직사각형 모양의 박석(薄石)을 내려다 보았다. 큰 돌로 만들어진 일종의 바닥 타일인 박석도 암살자의 궁궐 침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암살자가 땅을 파고 지하를 통해 궁궐 안으로 침입할 수 없도록 정전 앞의 이 넓은 공간을 모두 돌로 깔아버린 것이다.
이 박석을 넓은 바닥에 까는 데에는 엄청난 공력이 들었을 것이다. 또 이 박석을 현대에 유지 보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는 북방의 오랑캐를 막기 위해 산 위에 만리장성을 올렸던 중국인들의 무지막지함을 이 태화전 앞의 끝없는 박석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