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예수의 종교는 유대교가 아니라 기독교다. 한국교회는 과연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라 할 수 있을까? 사진은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소재 구산성지에 있는 예수의 형상.
김종성
미국의 군사적 세계패권에 편승하여 해외선교라는 명목으로 중동·중국 등 제3세계의 비(非)기독교 혹은 비서구적 문명에 대해 종교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태도는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유대교적이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유대교와 기독교(예수교)의 차이점은 율법에 대한 태도로도 설명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 대한 태도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방인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방인에 대해 각각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모세에게 준 율법의 내용이 창세기 다음에 있는 출애굽기 20장 이하에 기술되어 있다. 그중에서 출애굽기 22장 20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이어지는 23장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그들의 소위(공동번역판 표현으로는 '예식')를 본받지 말고 그것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을 타파하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23~25절).내가 너의 지경(영역)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찌라(31절)."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았다고 말한 이 부분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이방민족들인 아모리·헷·브리스·가나안·히위·여부스 등을 '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방의 신을 숭배하거나 그 종교의식을 모방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이방 종교를 다 '훼파'하고 '타파'하겠다는 열의에 불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31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인들은 온 세상을 자국의 영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물론 신의 명령으로 표현됐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모세 등 이스라엘 지도부의 의지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모세 시대 이스라엘인들의 인식 능력을 고려하면, 위 31절에 나와 있는 지역 정도만 해도 당시 개념으로는 '온 세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출애굽기 기록과 비교할 때에, 한국의 단군 이야기에 나오는 '홍익인간' 이념은 꽤 평화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홍익인간 이념에서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했지 환인천제를 믿지 않는 자들을 모조리 멸종 시키라고는 하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온 세상의 이방신들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율법에 반영되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작동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한손에는 성경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주변 민족들과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같은 배타적 열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대교인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바빌론 유수(BC 6세기, 바벨론제국에 멸망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바빌론에 끌려간 일) 이후 모세 율법을 근간으로 형성된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이방민족에 대한 위의 적대적 태도를 계승한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과 유대교는 이방 민족에 대해 배타적이었지만, 그러한 배타성은 기원 원년을 전후하여 세상에 태어난 한 인물의 도전을 받게 됐다.
유대교인들의 배타성에 도전한 인물은 다름 아닌 예수였다. 예수는 율법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라는 보편적 이념으로써 낡은 율법을 개혁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사랑에 바탕을 둔 관용의 정신을 표현했다.
형식에 얽매인 유대교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며 예수를 떠보자,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2천년이 넘도록 회자되는 유명한 대답을 던져 유대교인들이 스스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요한복음 8장 1~11절).
그리고 예수는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사랑과 관용을 보였다. 유명한 산상수훈(산 위에서의 설교)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태복음 6장 43~48절)예수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빗물을 내리는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미국에게만 햇빛과 빗물을 내리는 게 아니라 아프간에도 내리고 중국에도 내리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율법이 지배한 모세시대에는 가당치도 않을 이야기였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원수들을 멸종 시키지 말고 도리어 그들을 사랑하라는 말은, 보수적인 유대교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다. 오늘날에는 보편적 인류애가 세상의 지배이념이 되었지만, 그 시대의 유대교인들에게는 그저 생소하기만 한 개념이었던 듯하다.
보편적 인류애를 바탕으로 했기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이스라엘 편도 들지 않고 로마 편도 들지 않고 모든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면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신약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인간 사회의 다툼에서 초연한 입장을 취하고 오로지 영적인 자세만을 견지했다.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의 숙원이었던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외면한 것은 한편으로는 비판 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보편적 사랑을 설파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을 편드는 것도 편파적인 일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속적인 국적에 얽매이지 않는 영적 세상을 추구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인 에베소서 6장 12~13절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이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혈과 육'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악의 영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며, 고대 이스라엘에서처럼 실제적인 갑옷을 입을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전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아프간 저항세력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오로지 영적인 관점에서 선교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이로부터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국적과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사랑으로 다가섰으며, 그런 정신을 기본 바탕에 깐 상태에서 세상에 복음을 전파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 역시 이방인들에 대한 사랑을 갖고 해외선교에 나서는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의 해외선교는 분명 '반미'적인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것은 에베소서 6장에서 말한 영적인 싸움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 편승 내지는 부응함으로써 교세를 확장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지 않으므로 한국교회의 해외선교는 어쩌면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는 방향으로 선교를 가는 게 아니라 미군이 가는 방향으로 선교를 가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분명 의심 받을 만한 여지가 있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 했다.
또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려고 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상대방의 신조나 태도를 바꾸려면, 일단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런 상태에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소위 '불량 청소년'을 선도하려면, 그가 좋아하는 이야기나 취미를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일단 불상이나 단군상부터 먼저 파괴하려고 드니, 이것이 어찌 남을 이해하는 태도이며 또한 상대방을 사랑하는 태도라 할 수 있을까? 이는 불량 청소년을 이해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로 몽둥이부터 드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이나 유대교인들은 이방인에 대해 적대적이었지만(1-1),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이방인에 대해 관용적이고 평화적이었다(1-2).
또 고대 이스라엘과 유대교는 믿지 않은 이방인들을 멸종 시키려 했지만(2-1),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인내심을 갖고 '악한 자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댄다'(마태복음 5장 39절)는 정신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2-2).
또한 고대 이스라엘과 유대교는 국가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이방민족들을 상대로 '혈과 육'의 싸움을 했지만(3-1),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이스라엘이니 로마니 하는 세속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영적 싸움을 했다(3-2).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 대해 적대적이고(1-1), 믿지 않는 중동·중국 등의 정치권력이 어떻게든 미국에 의해 혼이 나기를 바라며(2-1),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 편승 혹은 부응하는 등 세속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3-1) 한국교회를 과연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라고 볼 수 있을까?
그래서 한국교회는 기독교인가 유대교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각주
* 기독(基督)이란 말은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 즉 왕이라는 의미)를 가리키는 중국어 ‘지두’를 한글 발음으로 옮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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