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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어렵던 시절 살다보니 학교 못 다니셨다. 그래서 한글과 숫자 모르신다.
그래서 어릴 적 내 기억 속에 우리 엄마 서울 큰 누나 집에 갈 때 엄마 지갑에는 꼭 시골집 전화번호하고 큰 누나 집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가 들어 있었다. 혹시 누나를 못 만나거나 잘못 내리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쪽지 보여주며 전화해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 엄마, 나와 형 그리고 누나 집에 전화할 줄 아신다. 몇 년 전에 누가 전화번호 대신 눌러주지 않아도 자식들하고 통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 집 전화하고 형, 누나 집에 전화하는 법 알려 달라 하시기에 가르쳐 드린 적 있는데 그 때 배우셔서 다른 곳은 못해도 나와 형, 누나에게는 전화를 할 줄 아신다.
그래서 우리 엄마 전화 받으면 기분 좋다. 손주 녀석들 목소리 듣고 싶을 때 당신 혼자 힘으로 전화해 당신의 작은 행복 누리시니, 엄마 전화 받으면 기분 좋다. 엄마도 당신이 한글과 숫자 몰라 답답하실 때 많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식들에게 전화할 줄 아시니 아마 그것만으로도 큰 행복 느낄 거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 시골 갔더니 우리 엄마 몇 번이고 뭔가 할 말 있는 눈치기에,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119 전화 하는 법 알려 달라 하셨다. “지난번에도 아버지 마비 왔을 때 바로 와서 병원 데려가고”하시며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니 당신께서 119 전화하는 법 알아두었다가 일 생기면 전화하기 위해서란다.
노트를 찢어 수성펜으로 큼지막하게 ‘119’ 숫자 써서는 엄마 보여드리며 “엄마, 여기 적힌 숫자를 순서대로 이렇게 누르면 돼”하면서 엄마 손잡고 몇 번이고 ‘119’ 누르는 연습을 시켰다. “니들 전화번호보다 쉽다”하시며 당신 혼자 몇 번이고 ‘119’ 눌렀다.
그런 엄마 보며 마음 시렸다. 당신의 못 배운 것에 새삼 한이 되었을 엄마 생각, 늘 걱정이 떠나지 않는 엄마 생각에 마음이 많이 시렸다.
아마 우리 엄마, 나 떠난 뒤에도 수시로 119 전화하는 법 연습했을 것이다. 지금도 연습하고 계실 것이다. 안 잊어버리려고. 아픈 아버지와 그 옆에서 119 전화하는 법 잊어버리지 않으려 오늘도 119 누르고 있을 엄마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부모님 생각하면 늘 이렇게 마음 한 구석 시리고 아프다. 연세가 많이 드시고 아픈 곳 많아지는 탓일까. 문득 문득 ‘하늘 아래 부모님이 더 이상 안 계신다면,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마음이 어떨까?’ 하는 슬픈 생각도 든다.
어쩌면 다들 그러하듯 ‘후회’라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난 어떤 후회를 하게 될까? 맛있는 것 못 사드린 것, 좋은 옷 못 사드린 것, 좋은 곳 구경 한 번 못 해드린 것, 속 썩여 드린 것….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후회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것에 후회가 들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근데, 참 못났고 못 됐다. 오늘 이렇게 부모님 생각하지만 아마 몇 시간 후, 아니면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난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부모님 생각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내 아이들 맛있는 것 사주고, 그 아이들이 먹는 모습 바라보다가 문득 문득 ‘아버지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지?’하면서도 금세 나는 부모님 생각 잊어버렸다.
참 못 나고 못 됐다.
2007.09.11 10:54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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