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낼 당시의 김수행 선생.
한길사
역사강좌와 역기행이 나름대로 진행되어가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 '한길사회과학강좌'의 기획에 나섰다. 역사강좌가 매주 목요일에 진행되었고 사회과학강좌는 매주 월요일 같은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는데, 한길사회과학강좌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콘텐츠와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한길사회과학강좌의 제1강좌는 1987년 5월 19일부터 6월 29일까지 진행된 김수행 교수의 '정치경제학의 이해'였다.
런던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그 무렵 한신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학교와의 마찰로 학교를 그만두고 있었는데, 1985년 나는 김 교수에게 '정치경제학'의 집필을 의뢰했고 사회과학강좌를 기획하는 1987년엔 그것을 거의 탈고한 상태였다.
나는 이 원고로 정치경제학 특강을 해보자 했고 한길사회과학강좌의 첫 번째 강의가 된 것이다. 전 7강좌였는데 ①상품경제와 화폐경제 ②이윤획득과 노자대립 ③자본의 운동형태 ④다수 자본들 사이의 경쟁과 협조 ⑤독점과 국가 ⑥제국주의 ⑦제3세계로 그 주제가 구성되었다.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우리 강의실은 마루까지 해서 100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는데, 200명 가까이 운집해서 일부는 되돌아가야 했다. 당시 서울대학에서는 학생들에 의해 정치경제학 설강운동이 펼쳐지고 있었고, 이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이 대거 몰려왔던 것이다.
우리의 한길사회과학강좌는 서울대 정치경제학 설강운동을 도와주는 한편, 대학교 밖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정치경제학 강의가 된 셈이었다. 한길사는 김 교수의 <정치경제학원론>(1988)을 이어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학자로서는 최초로 저술한 마르크스경제학 이론서였다. 우리는 김 교수의 <자본론연구 1>(1988·오늘의 사상선서 117)를 이어 출간했다. <정치경제학원론>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그의 입론을 밝혔다.
"근대 경제학의 실질적 시조를 왈라스라고 한다면, 정치경제학의 그것은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정치경제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는데, 그 뒤의 정치경제학의 발달로 독점·제국주의·사회주의를 그 체계 속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의 정치경제학의 발달을 모두 포괄하여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제시하려했다."<자본론연구1>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자본론>에 대한 일반적인 공포심과 적대감을 경감시키고 <국부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위대한 고전이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고자"한다고 했다.
김수행 교수는 비봉출판사(대표 박기봉)와 손잡고 이미 1981년부터 <자본론>의 번역작업에 나섰다. 드디어 1989년 2월부터 <자본론>이 출간되기 시작해 1990년 11월에 전5권으로 완역 출판되었다. 그러나 문공부는 세계의 학자들이 읽고 연구하는 <자본론>을 번역출판해 냈다 해서 이론과 실천사 김태경 대표를 고발하는 전근대적 행태를 보여주었는데, 1987년 한 대학신문의 요청으로 나는 '자본론의 출간에 대해 생각한다'라는 제목을 붙이고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자본론>의 출간에 대해 생각한다"우리 사회에도 드디어 <자본론>이 번역출판되었다. 문공부가 이 책의 출판사를 사법당국에 고발했다고는 하지만, 책의 내용 또는 논리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서, 또 사법당국이 어떠한 견해를 표명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자본론>이 출판되어 독자들에 의해 현실적으로 구독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땅의 학문사(學問史)나 출판사(出版史)에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될 것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우리의 민족사회는 무한한 가능성과 풍요로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1945년 이후 한동안 이 땅의 출판문화도 '해방의 시대'를 구가하면서 <자본론>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책들을 창출해 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족과 국토가 분단되고 6·25를 겪으면서 이루어지는 남과 북의 갈등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민족사의 전개에 치명적인 것이 되었다. 민족적인 출판문화 및 학문과 사상은 편향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다시 1980년대를 살아오면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치열한 운동적 삶을 통해 분단과 분단이데올로기의 성격 또는 그 정체를 주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땅의 역사와 사상을 진보적 민족주의적 논리로 해석하는 힘을 축적하게 되었고 학문세계와 출판문화가 질적·양적으로 성장했다.
<자본론>의 번역 및 출판 현상을 우리 사회의 질적·양적 성장과 지적 역량의 축적의 귀결로 보고자 하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일 것이다. 그것은 번역자 또는 출판인 몇 사람의 의식 또는 역량에 의해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보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당국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이 사회는 <자본론>을 요구하고 창출하고 수렴하려는 다양한 조건을 이미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은 궁극적으로는 한 시대, 한 사회를 살아가는 그 공동체 성원의 지적 삶의 총체적 조건에 의해 창출되기 때문에 사직당국이 <자본론>을 여전히 '판금도서' 목록에 기입해놓고 그것을 출판했다 해서 어떻게 규제하려 들지는 몰라도, 그것은 결국 일시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민족사회의 삶이 권위주의적이고 단선적인 인식 또는 발상구조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급속하게 변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론>을 비롯한 이른바 문제성이 있다는 책들을 '금'(禁)하는, 반문화적이고 반문명적인 진부한 주장에 대해 나는 늘 확신을 갖고 비판하는 터이지만, 이 사회의 '권력 당국'은 금서에 대해 그것의 불가피성을 이렇게 주장한다.
첫째, <자본론>이란 책의 내용이 반역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유물로 오늘의 상황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자본론>이라는 책은 우리에게 극단적으로 유해한 존재로서 그것이 세상에 나오면 마치 큰 난리라도 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이젠 제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자고 강조하고 싶다. 당국자라도 만나서 금서 또는 출판정책에 관해 토론이라도 하게 되면, 나는 <자본론>이라는 책이 왜 시대착오적인가, 아니다, 최대 고전의 하나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세계가 부인하지 않는 고전을, 오늘에도 여전히 연구되고 있는 고전 가운데 고전을,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고전을 무엇 때문에 '역사적 유물'로 박물관의 창고에 처박아두어야 하는가.
'금서'를 만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