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마시되, 첫잔으로 끝내라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지 못했다"(33)

등록 2007.09.13 11:58수정 2007.09.1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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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관한 한 누구나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여자든, 남자이든 술로 인한 추억과 기억은 결코 적지 않다. 여기서 술의 근원과 역사에 대해서 논할 생각은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식이 술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술의 필요성과 장·단점 역시 개개인의 입장에서 삼일 밤과 낮을 두고 설파해도 모자랄 것이다.
 

“근심을 없애는 데는 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 동방삭전(東方朔傳)에 실려 있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 있는 곳에는 으레 술이 있게 마련이고, 술이 있는 곳에 술자리가 펼쳐지게 돼 있다. 세상사 시련을 잊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데는 이만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술자리의 처음은 어디이든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 첫 잔을 꿀꺽하고 넘기는 맛과 같다고나 할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잔이 잔을 부르고, 특히 한국인들처럼 잔을 상대편에 넘겨주는 방식을 좇다 보면 종국에는 술이 술을 부르는 형국으로 끝나게 된다.

 

법화경(法華經)의 지적대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경지로 이끌리게 된다.
 

술은 사회생활, 특히 직장생활에서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교와 접대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부탁과 영업을 하는 자리에서도 술은 자연스럽다.

 

사람을 소개받을 때 가장 편한 곳이 술자리이며, 그 사람과 가장 빨리 친하게 되는데도 술자리만한 곳이 없다. 상사나 동료와의 섭섭함을 풀거나, 회사 내 정보를 전해 듣는데도 술자리는 정말 유익하고, 유효하게 활용된다. 술의 힘을 빌리는 일들이다.

 

그러나 술의 힘이 이처럼 좋거나 바람직한 쪽으로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자주 활용된다. 미인계(美人計)니, 독배(毒杯)니 하는 말들이 이를 대변한다. 술이 술술 넘어가며 일도 술술 풀리면 좋겠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술에 독이 든 경우이다.
 

술자리는 회사의 단합이나 업무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기 위해 일부러 마련되기도 한다. 자신의 치부나 부정한 행위에 대한 입막음을 위해 상사와 동료가 일부러 술자리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술자리에서의 ‘러브 샷’과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만큼 큰 힘을 내는 무기도 없다.
 

술은 근심을 덜어주고 없애주는 역할도 하지만, 정작 술을 마시다 보면 술이 없으면 더 불안해지는 것이 문제다. 처음에는 근심풀이지만, 나중에는 근심거리가 되는 것이다.

 

술자리에서의 이야기도 처음에는 화합과 협력과 도움의 뜻으로 해석되지만, 어느덧 새벽이 가까워올수록 그 술로써 일을 망치는 쪽으로 이끌게 된다.
 

술자리로 동료나 후배들을 불러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그 술로 달래기 위해서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대담해진 나머지 폭언(暴言)과 폭로(暴露)도 서슴지 않게 된다.

 

그것이 병이 되고,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다. 술자리가 막판 싸움으로 끝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각자가 다 나름대로 아픔과 사연을 갖게 마련이다 보니 술자리에서의 버릇이나 행태가 제각각이게 마련이다.
 

“전쟁, 흉년, 전염병, 이 세 가지를 합쳐도 술이 끼치는 손해와 비교할 수 없다.” W.E.글래드스틴은 오죽 했으면 이렇게까지 표현했을까?
 

술이 들어가면 말이 나오고, 말이 나오다보면 실수를 하게 돼 있다. 그 실수가 단순히 그 자리에서의 해프닝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한번의 실수가 몸과 마음까지 망치게 한다.

 

술 주사로 분위기를 몇 번 흐트러뜨리거나, 다음날 미처 깨지 못한 얼굴로 냄새를 풍기면서 출근길에 나서보라. 사람 꼴이 말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미움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는 눈길이 문제가 된다. 사람값을 못하게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술을 저녁내 마시고 바로 출근하는 것이다.
 

남의 이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몇 번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술자리의 일은 누구나가 쉽게 잊어버린다.

 

술자리에서의 일을 갖고 다음날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을 우리는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뭐, 술자리에서 그럴 수 있지… 술자린데 뭘 그래”하고 대수롭잖게 넘겨버린다. 그래서 술자리에서의 약속은 이미 부정수표이고, 의미 없는 새끼손가락 걸기다.
 

술자리는 되도록이면 안 가는 것이 가장 좋고, 아니면 가더라도 늦게 가는 편을 택하라. 물론 한국에서는 늦게 온 사람에게 ‘후래자 삼배’라는 혹독한 벌칙을 만들어 놓고는 있지만 분위기를 보고 적당히 대처하면 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술자리에서는 웬만하면 먼저 말을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술자리에서의 말은 쉽게 부풀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까지 쉬 이르게 된다. 술자리는 화해(和解)의 장이 되기도 하지만, 말을 만들어내는 공장이기도 하다. 소위 “~카더라”의 근원지이다.

 

자신이 느끼지 못한 채 내뱉은 말은 다음날 또는 언젠가 “당신이 그랬다며?”라는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그 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명해 봤자 이미 쏟아진 물이다.
 

“술의 양이 적으면 적을수록 머리는 말끔하고 피는 식어진다.” W.펜이 <고독의 보수(報酬)>라는 글에서 말하고 있다. 적게, 빨리 마무리하면 그 술자리는 정말 유익하고, 의미 있다.

 

술자리에서의 시간은 그 어떤 장소에서의 시간보다 빠르다. 몇 잔 마시다 보면, 또 돌아가면서 한두 마디씩 하다 보면 금방 서너 시간이 후딱 흘러가버린다. 정말 권하고 싶은 술자리는 술의 종류를 불문하고 단 한잔을 앞에 놓고 모든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다.

 

가장 나쁜 버릇 중의 하나가 1차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곧바로 2차, 3차를 이어가는 것이다. 1차에서 돈을 내는 사람은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2차에서는 돈을 내면 누가 계산했는지를 모르게 되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어 3차는 자기 자신이 갔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술값을 치르고도 모르게 된다.
 

직장생활에서의 술은 대개 초년생에서부터 부서장이 되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윗사람이 불러줘서 마시고, 그 술이 모자라서 마시며, 아직 깨지 않아서 또 마시는 꼴이다.

 

한창 일해야 할 시기를 술로 채운다는 것은 자신의 발전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시간을 그렇게 날리면서도 “시간이 없다” 느니 “바쁘다”느니 하면서 지내고 있다.

 

“초년생 입사 후 직장생활 3년이면 바보가 된다”고들 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술과 시간 낭비로 허송세월(虛送歲月)했기 때문이다.
 

술값에 드는 돈도 무시하지 못한다. 매일 마시면서 어떻게 그 돈을 결제하느냐는 그야말로 불가사의(不可思議)다. 술값에 못지않은 것이 부대비용이다.

 

팁 값과 택시비, 다음날의 사우나비 등은 대부분 현금지급이다. 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라도 입원하게 되면 그 액수는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나도 술을 즐겼다. 특히 언론계의 술버릇이 그리 좋지는 않은데 나 자신이 그런 분위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술자리를 빌려 많은 일을 만들었고,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일들과 사람들 중 지금 내 가까이에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남은 것이라면 “그 양반, 참 대단했지!”라는 추억의 말 한마디뿐이다.
 

술을 즐겨 입에 달고 있는 사람에게 단 한 가지 너그럽게 평가해주는 말이 있다. “술 많이 마시는 놈치고, 독한 사람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독하지 못해서 그렇게 술을 가까이 했나 보다. 늙은 나이에까지 여유롭게 술을 즐기려면 젊었을 때의 술자리를 줄여야 한다.

 

첫잔으로 끝내라. 이것이 내가 경험하고 느낀 술에 관한 확고한 진리다.

덧붙이는 글 | 아들과 딸 그리고 옛 직장의 후배들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2007.09.13 11:58ⓒ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들과 딸 그리고 옛 직장의 후배들에게 던지는 삶의 메시지입니다.
#술자리 #술잔 #술값 #미인계 #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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