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

[서평] 나태주 시집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등록 2007.09.13 19:14수정 2007.09.14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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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누워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시한부를 통보받거나 불치를 선고받은 환자는 어떠한 심정일까. 기약 없는 날들을 환자 곁 보조 침대에서 새우잠 자며 생활하는 보호자들은 어떤 마음일까. 그들의 마음을 시로 표현할 수 있을까.


a 꽃이 되어 새가 되어 책 표지

꽃이 되어 새가 되어 책 표지 ⓒ 문학사상사

▲ 꽃이 되어 새가 되어 책 표지 ⓒ 문학사상사

금식 석 달째
부럽다 꿀꺽꿀꺽
소 물 먹듯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물 마시는 소리.

 

- '소리' 전문


병실에 누워 밥 대신 링거액에 의존해 사는 환자들의 마음을 표현한 나태주 시인의 작품이다. 시인은 병원에서 담당 의사로부터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시를 썼다. 병실 생활이 일주일을 넘어 석 달이 되었지만 금식은 계속되고 있다.

 

옆 침대에 있는 환자가, 그 보호자가 밥 먹는 모습을 보고 물 마시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밀려오는 부러운 마음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이 병상에서 쓴 시를 모아 시집을 냈다. <꽃이 되어 새가 되어>가 제목이다. 목숨이 다했으니 세상 뜰 준비를 하라던 의사의 선고를 듣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를 쓰고 시집을 준비한 것이다.


시인의 시가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척수종양에 걸려 하반신 마비 상태로 있던 아들 녀석의 절망을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숨이 막힌다.


내게는 지금도 병실에서 사는 친구가 있다. 굴착기가 끌어올리던 합판 더미가 풀려 떨어지면서 깔려 척추를 크게 다쳤다. 수술받은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하반신 신경은 돌아올 기미도 없다. 지금도 재활 병원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다. 병원 밖 세상이 그리워지면 녀석이 전화를 한다.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친구 녀석의 음성에 절망이 묻어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던 선고, 수술, 투병의 과정을 이어가면서도 시인이 그려내는 병실 모습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누울 자리 비좁은 보조 침대에 활처럼 웅크려 자고 있는 간병인을 보며 어린 시절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운동회 전날 잠든 모습이 저랬을까. 설날이나 추석날 꽃고무신 선물로 받고 고무신 움켜쥐고 자는 모습이 저랬을까.


병실 밖 생활에서 깨닫지 못하던 걸 깨닫기도 한다. 병원 침상에 누워있다 보니 한 번쯤 소식 듣고 와줄 법도 한 사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 혼자 짝사랑했던 게 아닐까. 병원 침상에 오래 누워있다 보니 애달피 기다리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찾아와 손 부여잡고 눈시울 붉히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의 짝사랑을 어찌하면 좋을까.


시인의 시를 읽으며 병실에 있는 친구 생각을 했다. 하반신 마비가 되어 휠체어에 의존한 채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 그 친구 아내도 병실 보조 침대에 몸 뉘이고 남편을 간호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친구도 간병하는 아내를 보며 아내의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려 볼까. 멀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 못하는 나를 저 혼자 짝사랑한 게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까.


친구에게 전화 걸어 시 한 수 읽어줘야겠다. 읽어준 시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시집 곱게 포장해서 보내줘야겠다.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날마다 하루해는 사람들을 비껴서
강물 되어 저만큼 멀어지지만

 

들판 가득 꽃들은 피어서 붉고
하늘가로 스치는 새들도 본다.

 

- '꽃이 되어 새가 되어' 전문

덧붙이는 글 | <꽃이 되어 새가 되어>/나태주/문학사상사/ 2007.7. 6/7000원

2007.09.13 19:14ⓒ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꽃이 되어 새가 되어>/나태주/문학사상사/ 2007.7. 6/7000원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나태주 지음,
문학사상사, 2007


#꽃이 되어 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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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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