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09.22 16:08수정 2007.09.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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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학년도 학술답사의 마지막 여정은 경기도 광주의 어느 시골이었다. 2박 3일간의 강행군으로 인해 피로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갔던 위안부 역사관.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은 하나의 동상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한숨 섞인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던 그 할머니의 상은 연못에 반쯤 몸을 담그고 상반신을 드러낸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녹이 슨 듯 푸른빛의 살갗과 주름진 얼굴, 축 쳐진 가슴은 그간의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듯하여 더욱 처연해 보였다.
▲위안부 역사관에 있는 할머니의 상.신혜선
▲ 위안부 역사관에 있는 할머니의 상.
ⓒ 신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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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영상관과 전시관으로 향했다. 할머니들의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그분들과의 만남을 대신한 것이었다.
제1 전시관은 증언의 장이었다. 일제의 군 위안부 만행을 기록한 영상물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육성을 담은 그곳에 발걸음한 이들의 차가운 분노가 서렸다.
제2 전시관은 체험의 장이었다. 당시 위안부들이 살았을 한 평 남짓의 방은 우리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였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그 속에 담긴 아픔은 실로 상상치 못하리라.
제3 전시관은 기록의 장이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우리는 또 한 번 분노했지만, 그 가운데 피어오르는 분향소의 향 내음은 가슴속 울분을 가라앉힐 만큼 숙연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제4 전시관은 고발의 장이었다. 할머니들이 몸소 그리신 그림 속에는 한 맺힌 세월이 녹아있었고 그간의 아픔이 스며있었다. 끌려가는 소녀의 눈동자와 잔뜩 웅크린 여인의 몸짓은 그 당시의 억누른 고통을 나타내고 있었고, 일장기와 순사를 향해 겨눈 총부리는 일제를 향한 억누른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림 속에는 그야말로 할머니들의 삶이 굽이쳐 있었다.
출구를 향해 나가며 단편의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군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세월을 겪은 한 소녀가 죽지 못해 살아가며 지금은 북망산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내용의 만화책은 기어이 나로 하여금 미어진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가슴이 아팠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수모를 겪으며 살아왔을 그분들의 삶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내 옆에서 또 하나의 만화책을 읽으며 망연자실해 있던 일본인들을 지나쳐 차로 향하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맺힌 역사의 산 증인들이 계신 그곳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고,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그분들에게 죄인이었다. 그 참람했던 삶의 빚을 갚지 못하고서야 어찌 동족이라 할 수 있을까. 어찌 조국이라 할 수 있을까.
▲"못다 핀 꽃"이라는 이름의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동상.신혜선
▲ "못다 핀 꽃"이라는 이름의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동상.
ⓒ 신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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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그것은 아픈 역사 속에서 짓밟힌 조국의 딸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대일본제국의 자랑스러운 신민으로서 국가에 이바지하기 위해" 군의 위안부로 보내어졌던 그녀들은 인간 이하의 고통과 치욕 속에서 통곡의 세월을 보내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눈물을 억누른 채 숨죽여 살아왔을 그분들을 우리는 이제 기억해야만 한다. 반만년을 이어온 한반도에는 슬픈 역사가 있었노라고, 슬픈 딸들이 있었노라고….
꽃다운 나이 일본군들에게 끌려가 짓밟히고 잃어버린 인생 되찾는데 오십년 세월이 걸렸다. 이제는 주름투성이 할머니 되었지만 용기 있는 증언 그 증언의 힘으로 우리는 진상을 알게 되었다. 늘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그들의 세계에 이제 환한 빛을 쪼여주자. 돌아갈 수 없는 시절 할미꽃이 되었다 해도 색깔 옷 떨쳐입고 날개를 펼친다. 여기서 다시 진정으로 원하던 그들의 삶을 산다. 구천을 떠돌던 슬픈 넋도 이제 승천하게 하자.
- 못다 핀 꽃
2007.09.22 16:08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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