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여러분께
저는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조합원입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을 맞아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실 텐데 저는 조금 힘든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여름의 문턱에서 시작되었던 우리의 파업이 이제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힘들고 긴 시간들이었습니다. 제 날짜에 세금을 내지 못할까 조바심내고, 분리수거 열심히 하며, 경찰서 앞만 지나가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 이것이 저희 조합원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전지를 받으면 제목만 읽고 버리고, 집회로 차가 막히면 짜증내고, TV에서 '00노조 파업'하고 보도하면 "아휴! 또…" 하며 채널을 바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의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얼마나 안일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가? 이 사회에 얼마나 무관심했던가?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외면하고 배척했던 나의 시선과 편견이 참 많은 사람들을 외롭고, 힘들게 했겠구나 생각하면 죄의식마저 느낍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은 어떤 역사적 사명감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사회나 회사를 바꿔보겠다는 영웅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희의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언제 해고통지를 받을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고, 우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접을 받고 싶다는 너무도 소박한 바람뿐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이해하고 지지해 줄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희를 보고 격려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분들을 뵈면 눈물이 핑 돌고, 용기도 나지만 저희를 나무라시고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정도의 차이고, 시간의 차이이지 결국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이해해주고 지지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왜냐면 저희의 요구와 행동의 진정성에 대해, 절실한 마음에 대해 조금의 여유와 관심으로 지켜봐 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요.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이라지요. 여성 노동자들 70%가 비정규직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정규직의 문제라는 것은 자신의 문제거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문제일 것입니다.
계약기간이 다가오면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고,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언제 잘릴 줄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 입도 벙긋 할 수 없는 자괴감이라는 고통을 겪습니다. 아마도 한번쯤 화장실에서 울어도 보고,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아도 봤을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추석 연휴, 가족들과 청명한 가늘 하늘빛을 즐기고, 함께 풍성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우리 동네 앞 홈에버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지금 거리로 내몰려 100일 동안 힘들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 떠올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7년 9월 20일
김미정
2007.09.22 17:41 | ⓒ 2007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공유하기
"홈에버 앞에선 비정규직 먼저 생각해 주세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