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등록금-개나리, 가을에는 피지 않는다

어떤 대학생이 이 땅의 선배들에게

등록 2007.09.24 12:10수정 2007.09.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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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등록금 투쟁을 이야기할 때 이런 표현이 있다.

"개나리투쟁"

 

그렇다. 개나리가 피는 계절에만 투쟁을 하고 결국 바뀌는 것은 없다는 냉소적 외침이다.

이는 학생회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개나리가 피는 봄에는 학생회나 언론이나 정치권이나 모두가 등록금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개나리가 지면 논의는 끝난다. 왜? 개나리가 졌으니까.

 

"개나리투쟁"은 이제 대한민국 대학사회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이해당사자인 학생들의 머릿 속에 이미 그렇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취를 하며 3년째 학교를 묵묵히 다니고 있는 본인의 이야기와 함께 이 땅의 선배들에게 편지를 띄운다. 개나리의 계절이 아닌, 수확의 계절 가을에.

 

나의 이야기

 

우리 학교에는 등록금 분할 납부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3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일시불로 납부하기 힘든 사람을 위해 3개월 동안 금액을 나눠서내는 제도입니다. 저도 작년(2006년)학기 모두 분할납부로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2학기에 일이 터졌습니다. 집안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지면서 마지막 분할 납부분 80만원을 내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학사지원과로 가서 몇 월 몇 일까지 꼭 내겠다는 사유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학사지원과에서는 반드시 사유서에 그 날까지 납부하지 못하면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말을 쓰라 했습니다.

 

그런데 열흘이 넘도록 집에 현금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단돈 80만원을 꾸려해도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이미 우리 가족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버지 어머니와의 전화통화는 '미안하다'는 아버지 어머니의 말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사유서에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학교에서는 줄기차게 전화를 해댔습니다. 오늘 저녁 6시까지 반드시 납부하라고. 그리고 제가 학교에서 등록금을 가장 늦게 내는 학생이라 했습니다. 1만3000명 중에서 최후로 냈으니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요? 저는 그 날 하루에도 수 많은 전화를 하면서 너무 지쳤습니다. 돈 80만원이 우리 가족을 이렇게 힘들게 할 지 몰랐습니다.

 

학교에서는 끝까지 납부안하면 제적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너무 미안한 나머지 학교 직원에게 '제적시켜주세요'라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한 학교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말은 '제적시켜 드릴까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극적으로 돈을 마련하셔서 돈 80만원 때문에 제적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 때 그 사건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제 이런 사유로 인해 제적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땅의 선배들에게

 

대한민국 언론은 사람이 죽어야만 기사를 쓰는 건가요? 아니 봄에만 기사를 쓰는 건가요? 올해 봄, 많은 언론에서 줄기차게 등록금이 너무 높다는 보도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보도를 한 적 있나요? 올해 2월, 딸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자신이 영업하는 가게에서 목을 매달았다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4800만 명 중 한 명이 죽은 것일 뿐인가요?

 

어른들은 아르바이트 할 시간에 공부하면 장학금 따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안 하면 등록금을 제대로 마련하기 힘듭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의 어른들은 서울 시내 여타대학에 비해 등록금이 싼 편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타대학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많은 사립대학에는 '투자와 기타자산'이라는 항목이 예결산 항목에 있습니다. 많은 언론들은 이를 '적립금'이라 부릅니다. '투자와 기타자산'수입 즉 적립금 인출을 늘리면 등록금 인상이 아니라 인하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지금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등록금 동결'이라는 말은 외환위기 직후 등록금 급상승이 시작된 2000년 2001년에나 해당되는 말입니다. 이제는 '등록금 인하'가 구호로 쓰여야 합니다.

 

2007년 등록금도 인상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2006년 등록금이 2007년도에도 동결되었으면 우리는 저렴한 가격에 학교를 다니는 것인가요? 2006년에도 전년도에 비해 인상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이미 엄청나게 올라버린 등록금 속에서 동결을 외치는 코미디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배님들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교수님들께 한 마디 하겠습니다. 교수님들은 무엇을 하십니까? 제자들이 자식같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 학기가 끝나고 휴학을 신청하는 무수한 학생들이 정말로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학교 다니면서 돈 걱정을 하는 말도 안되는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우리 학생들 뿐입니까? 교수님들이 등록금 인상 반대 성명서를 내면 안 되는 것입니까? 교수님들이 하는 등록금 투쟁은 소설로도 힘든 이야기입니까? 4.19 혁명의 과정에 교수님들이 함께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역사 속의 무용담일 뿐입니까?

 

386세대 선배님들을 비롯한 선배님들. 대학생이 개인주의화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보수화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즘 젊은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개인주의 의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386세대 국회의원님들에게 요구합니다. 선배님들 학교 다니던 80년대 대학생의 취업률과 지금 대학생의 취업률 비교자료를 노동부에 요구하고 국정감사 해주십시오. 아니 더 구체적으로 지금 대학생의 비정규직 취업현황까지 자료를 요구해주십시오. 

 

동아리 하는 시간에 책 한 장이라도 더 읽고, MT 가는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봉사활동 가는 시간에 공무원 시험공부 조금 더 하는 것이 엄연히 이 나라 이 대학사회 현실입니다. 요즘의 학생들도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20대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 되는 무서운 정글에서 그 짱돌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집니다. 사회구조와 환경이 우리 대학생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보수화된 대학생이 아니라, 변혁과 진보 그리고 혁명을 마음 속에 묻어두어야 하는 대학생입니다.

 

갑자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알바(아르바이트) 때문에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투쟁에서 먼저 빠져 나가는 친구가 떠오릅니다. 자신의 앞길 역시 비정규직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이면서도 살기 위해 알바를 가는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직 대학사회는 민주화되지 않았습니다

 

선배님들은 요즘 젊은 세대는 참 좋은 세상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민주화된 아주 좋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2007년 지금의 대학사회에서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전경이 있고, 최루탄 가스가 남발하고, 군사정권의 프락치가 상주하는 대학도 민주화되지 않은 대학이지만 돈 때문에 못 다니는 대학도 민주화되지 않은 대학입니다.

 

민주화되지 않은 대학에서 개나리는 역시나 봄에만 피고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서라도 개나리를 가을과 겨울까지 피게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가을과 겨울개나리의 힘으로 대학사회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길에 선배님들이 함께 해주십시오.

어려움은 함께 할 때 사그라지기 때문입니다.

 

2007년 9월 24일 어떤 대학생 후배가.

2007.09.24 12:10ⓒ 2007 OhmyNews
#대학등록금 #적립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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