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이학수 부회장은 본인의 능력에다 인맥파워가 있었기 때문에 클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또 자신이 내부에서 키워온 인맥(이른바 '이학수 사단')이 있지 않나. 거기에는 똑똑하고 유명한 사람이 많다. 주로 관리, 재무쪽 인사들이다.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발생시키거나 장기적인 성장을 생각하는 전략가는 별로 없다."
- 이학수 부회장의 주변에는 어떤 성향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포진돼 있나?
"인사, 관리, 재무, 이런 쪽에 있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재무에 김인주(삼성전략기획실 사장), 인사에 노인식(삼성전략기획실 부사장), 관리에 누구 하는 식이다."
- 그룹 안에서 영향을 크게 미칠 만한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는 것 같은데.
"모든 (계열사) 사장단 등의 인사권을 거기서 쥐고 있으니까 누구도 꼼짝할 수 없다. 또 각 계열사에 큰 돈이 들어가는 것도 그쪽에서 휘어잡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거액을 주고 유람선을 사서 장기간 방치하다 똥값에 처분했다. 몇백만불의 손해가 났지만 하루 아침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큰 손해를 보고 유람선을 처분한 일을) 없애 버린다."
- 결국 삼성의 변화를 위해선 우선 이학수 부회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인가?
"물러나 줘야 한다.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제도, 시스템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인가, 뭔가 혁신적인 방향으로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것인가, 그 기로에 서 있다. 전자로 가면 우리 사회의 변화와 미래는 없기 때문에 후자로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학수 부회장이 물러날 때가 됐다. 그때 누구로 바뀌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 변화를 주도할 만한 사람들이 안에 있나?
"그렇게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다. 그래도 삼성이 그런 인재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임원 인사 중 70%는 잘했지만, 나머지 30% 인사가 문제다."
- 삼성그룹이 이학수파와 윤종용파로 나뉘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학수 사단과 윤종용 사단,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이학수 사단은 제일 큰데, 자금이동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반면, 윤종용 사단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쪽이다. 두 사단이 싸우고 마찰한다. 문제는 10년 이상씩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사단(의 영향력)이 상당히 세다.
그 사단 안에 안들어가면 생존할 수 없다. 능력이 없어도 사단에 들어가면 생존할 수 있다. 사단에 있어서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단이 형성되지 않고 내부에 좋은 인사시스템을 가동하면 80-90% 정도로 좋은 인사가 될 것이다."
- 최고경영자 회의에서 참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때 이건희 회장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이학수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로 있으면서 이건희 회장의 의중을 읽는 듯 하지만, 이학수 부회장의 의도대로 끌고 가는 걸 많이 느꼈다. 이건희 회장이 볼 때 (이학수 부회장이 끌고 가는 방향이) 경영권, 왕권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학수 부회장을 신임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경영권 세습)에 문제만 없다면 이건희 회장은 황제의 역할만 하면서 가는 것이다. 회사가 왕권세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인수합병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 작은 회사야 인수합병하겠지만 큰 회사를 인수합병하면 (경영권 세습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에 안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병철 회장 시대부터 그랬다. 80년대 말 이병철 회장 시절 비서팀쪽 사람들과 얘기해봤는데, '왜 인수합병을 다 무시하느냐?'고 했더니 '그걸 하면 지배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에 500만불 이상 되는 인수합병은 할 수 없다'고 얘기하더라."
"이학수 부회장, 아들 유학특혜 위해 사규까지 개정해"
- 대기업(재벌)에서 가신의 문제점은 어떤 것인가?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사리사욕을 챙긴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누가 자신의 주인인지 모른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그런데 주주를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1-2%의 지분을 가진 사주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러다 보니 현대차문제나, 김승연 한화 회장의 폭행사건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신격화시키고 나면 그 사람이 시키는 것은 뭐든지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니까 내부 비판이 없어지고 건전한 조직문화가 안 만들어진다. 그래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경찰청장 했던 사람을 데려오고 검찰이나 세무서 출신을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법적인 일을 해결하기 위한 것 아닌가. 법을 맘대로 재단하지 않나."
- 삼성에서 가신들이 사리사욕을 챙긴 사례에는 무엇이 있나?
"비상장회사를 만들면 거기에 다 지분을 가지고 참여한다. 나중에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 걸 아는 것이다. 이학수 부회장도 4만주 이상의 비상장 주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만 해도 몇십억원은 될 것이다. 현대 글로비스 주식도 가신이라는 사람들이 다 받았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이익을 남겼을 것이다."
- 가신에 대한 감시시스템은 전혀 없나?
"(감시는) 주인이 해야 하는데 사주가 주주를 대표하는 것처럼 돼 있다. 사주라는 사람이 가신을 감시할 생각을 안한다. 더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가신문제는 인사문제, 도덕성해이 등이다. 사주가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밑에서 다 챙겨먹게 돼 있다."
- 일부 대기업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지 않았나?
"전문경영인이 기업운영의 책임을 다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조정본부 등이 사주의 지시를 받아서 의사결정을 한다. 전문경영인이라고 해도 전문경영인이라고 할 수 없다. 윤종용 부회장 정도가 전문경영인이다. 그런데 그가 인수합병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걸 할 수 있을까? 못한다. 그렇게 할 경우 지배구조가 흔들리기 때문에 사주가 못하게 한다.
삼성 계열사 가운데 어떤 사업부문을 자르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나? 안된다. 사주가 구조조정본부나 비서실을 통해 못하게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전문경영인이라고 할 수 없다. GE 같은 경우가 전문경영인체제라고 할 수 있다. 사업부분을 잘라내고 붙이고 다 하지 않나."
"직무순환제 도입으로 가신의 문제점 극복해야"
- 가신의 문제점을 극복할 방안은 있나?
"인사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직무순환제를 제대로 도입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주의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 사주가 회사를 투명하게 운영하겠다, 법대로 운영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들을 한자리에 오래 앉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편법, 불법을 해야겠다고 하면 자기 오른팔을 옆에 (오랫동안) 앉힐 수밖에 없다. 사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주주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주주의 발언권이 높아져야 한다. 사주들이 1-5% 지분 가지고 순환출자를 통해 다 해먹고 있지 않나. 일반주주는 발언할 수가 없다. 또 물은 한곳에 고여 있으면 썩게 마련이다. 그래서 직무순환을 해야 한다. 또 내부고발을 보장해 내부 문제점을 내부에서 스스로 보고받고 그것을 바꿔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 직무순환제가 과연 효과 있을지 의문이다.
"틀림없이 효과가 있다. GE 같은 경우 잭 웰치가 나가면 GE가 어려워질 거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주가도 올라갔고, 기업가치도 올라갔다. 잭 웰치가 너무 오래 있었는데, 제프리 이멜트로 넘어오면서 직무순환이 된 것이다."
- 삼성 등 재벌의 경영권 세습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나?
"경영권을 세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금을 제대로 내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신세계처럼 정상적으로 세습하면 누가 뭐라고 하나. 내야 할 세금을 안내면 결국 일반 국민이 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진다. 세금을 안내려고 편법, 나아가 불법까지 하는 게 제일 큰 문제다."
- 경영권 세습문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주주총회에서 가진 영향력만큼 발언하면 된다. 그런데 왜 꼭 회장이 돼야 하나? 전문경영인을 배려하는 시스템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경영권이 꼭 집안으로만 넘어가야 한다고만 생각한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
- 삼성의 글로벌기업 명성이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반도체, 휴대전화, 텔레비전, 모니터 등에서 앞서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것을 위해 열심히 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감추어진 부분이 있다."
- '감추어진 부분'이란 언론의 홍보로 가려지는 부분을 말하는 것인가?
"그거는 굉장히 크다. 돈으로 하면 다 된다. 애프터 서비스를 보면 체감은 굉장히 낮은데 해마다 1등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라. (애프터 서비스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도 상관없다. 언론에서 그런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는데 안한다. 삼성이 광고와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 삼성의 대언론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무섭다. 무서울 정도로 그룹 홍보팀이 체계적으로 잘 움직인다. 평소 인맥관리는 물론이고, 어떤 기사는 쓰고 안쓰고부터 어떤 광고는 내고 안내고까지 간섭하는 걸 보면 (삼성이)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다. 삼성에 비판적인 얘기가 있으면 (언론에서) 먼저 (삼성에) 보고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 것 같다."
"이재용 상무, 회장 취임하면 나름의 리더십 발휘할 것"
- 삼성의 3세인 이재용 상무에 대한 내부의 평가는 어떤가?
"괜찮다고 얘기하더라. 아버지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처럼 업무를 위임하는 게 아니라 직접 챙기려고 한다. 그가 회장에 취임하면 나름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포진돼 지원해주면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요즘 경영권이 2세나 3세로 넘어갈 때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점은 이 사람들이 주로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단기 업적주의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외국이론을 배웠더라도 한국 풍토에 맞게 해야 하는데 이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외국이론에만 집착해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문제다."
- 이건희 회장은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나?
"안한다. 자기 취미생활 하면서 산다. 승마나 차 모으기 등 비싼 취미를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영화 보기를 무지 좋아한다. 한편 외로운 사람이기도 하다."
- 이재용 상무로 세습이 완료돼 3세체제로 바뀌면 삼성의 문제점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과거 가신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포진된다면 그런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대리자들이 포진돼 잘 보좌하면 그럴 만한 역량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 노무현 정권과 삼성의 유착관계설이 파다했는데.
"대통령은 국민이 뽑아준 사람이고, 5년밖에 안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접해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언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걸 보라. 그런데 이건희 회장을 그렇게 씹는 걸 본 적이 있나? 더 나쁜 짓도 하는데도 (대통령을 비판하는 만큼) 비판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영원한 황제다. 재벌공화국이 아니라 재벌왕국이다. 종신제다. 대통령은 5년제니까 맘대로 씹어대고 (재벌 총수는) 종신제니까 안씹고, 이게 말이 되느냐."
- 요즘 삼성의 분위기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외환위기 때 직원들을 많이 잘랐다. 게다가 요즘은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줄었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회사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면 침체될 수 있다. 삼성이 망하면 안된다. 삼성을 망하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삼성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쓴 것이다."
- 꼭 삼성에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삼성이 변하면 우리나라가 많이 변화할 수 있다. 삼성이 잘 할 수 있는 핵심역량에 집중하면서 신수종사업(장래 성장사업)을 키워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직무순환제를 통해 가신들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 또 사주가 최고경영자라면 최고경영자답게 활동해야 한다. 나같은 사람이 (밖에서) 떠들지 않아도 되도록 내부고발제도를 도입해서 내부의 비판적 의견에 귀기울여야 발전할 수 있다."
2007.10.02 16:17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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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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