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봉 전남대 교수
남소연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철학자인 전남대 김상봉 교수와 나는 과거에 몇 번인가 만났던 적이 있다.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는 2000년이었는데, 당시 그는 해직교수였고, 나는 박사과정을 자퇴한 직후의 다소 의기소침한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만남의 계기는 그가 활동했던 시민운동 단체인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에서, 학벌주의의 폐해와 관련해, 특히 나 자신의 상황을 고백적으로 거론하면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제안의 당사자는 김상봉 교수였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선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가 '문예 아카데미' 교장으로 있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문예 아카데미' 기획위원이자 강사로 일했다. 그와 함께 일한 기간은 한 3개월 정도였지 싶다.
그리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다가 2005년 인사동의 분주한 밤거리에서 우연히 어깨가 마주쳤는데, 그 때는 선생이 연고란 전혀 있을 수 없는 전남대에 특채로 임용되었을 때다. 그 때는 나 역시 한 대학의 문학선생으로 운좋게 임용되었던 시점이기도 했다, 김상봉 교수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현장 지식인에서 교수가 된 서로에 대해 축하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지 어색했던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나는, 과거의 김상봉 교수와 마찬가지로 때이른 해직교수가 되었는데, 그런 사정과는 무관하게 2007년 서울에서 그를 또다시 우연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의 상임공동의장이었고, 나는 해직교수 주제에 민교협의 편집위원장으로 있었는데, 우리가 만난 것은 광주와 서울에서의 소원했던 근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우연한 만남과 무관하게, 이번에는 내가 자청해서 광주로 그를 찾아갔다. 내 의지로 그를 만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늦더위가 아직 퇴각하지 않은 9월 초순이었고, 한국사회는 '신정아 사태'가 야기한 학벌주의 논쟁으로 시끄러웠으며,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되어 5·18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때였다. 남북정상회담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나는 철학자 김상봉을 만나서, 이렇게 요동치는 현실을 바라보는 철학자로서의 '깊은 시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왜 한국의 저널리즘은 철학자들에 대해 그토록 무신경한가. 이런 은밀한 문제의식도 내 '광주행'의 한 근거이기도 했다.
자청해서 그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 '깊은 시각'을 보고싶었다
현실에서 드물게도 이른바 사회철학적 탐구라 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현안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지속해왔다. <학벌사회(2004)>라는 저작을 통해 한국적 학벌사회에서의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탐구를 펼치는가 하면, <도덕교육의 파시즘(2005)>에서는 한국의 도덕교육이 노예도덕과 파시즘적 국민교육의 폐해로 점철되어 있음을 비판했다. 그런 동시에 그는 서구철학의 퇴행적 자기반영성과 나르시시즘을 비판하는 작업을 <나르시스의 꿈(2002)>과 <서로주체성의 이념(2007)>에서 펼쳤고, 최근에는 5·18 광주민중항쟁을 철학적 분석과 탐구의 장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내고 있다.
그의 저서 중에는 <호모 에티쿠스(1999)>가 더 있고, 예술론 격에 속하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2003)>도 있는데, 이런 책들의 제목이야말로 김상봉의 철학자로서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의 철학은 한국적 현실의 비극성에 대한 윤리적 인간학에 가깝다. 동시에 그의 철학은 오늘의 현실에서 드물게 '대지의 형이상학' 또는 '땅으로 강림한 철학'의 가능성과 고투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것을 '묶인 자의 철학'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의 철학적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주체성'과 '자기의식'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20세기의 한국철학을 ‘묶인 자의 철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들어보자.
"20세기 한국철학은 처음부터 '묶인 자의 철학'이었다. 유영모나 함석헌 모두 식민지 피지배민족의 일원으로 철학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철학엔 지배계급의 어떠한 허위의식도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 한국철학의 고유하고 독보적인 사상은 참된 의미의 민중성이다. 이전의 소수의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철학이 20세기 한국 철학에 와서는 민중의 철학, 우리가 즐겨 표현하는 씨알(민중을 일컫는 함석헌의 표현)들의 철학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가 철학의 전제가 아니라 자유를 박탈당하고 노예 상태에 있는, 억눌리고 묶인 자들이 자기를 해방시키고 도야하고 계몽하는 과정에서 씨알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인 동시에 더불어 싸우고 항쟁하는 요구하는 부름의 소리가 20세기 한국철학이었다. 이는 세계 철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철학의 새로운 보편성이다. 인류의 역사를 상기해보라. 여가 속에서 철학을 향유하는 사람들보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묶여 있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 이들을 배제하고 말하는 철학의 보편성은 허위의식에 갇힌 것이다. 함석헌은 철학자이면서 농부였다. 그의 존재 기반 자체가 민중적 보편성에 기반하고 있었다."김상봉의 철학에서 무교회주의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는 함석헌 사상과의 만남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사상적 '원체험'에 해당한다. 김상봉이 연세대 철학과에 입학한 것은 1976년이었다. 이 시기는 긴급조치와 10월 유신으로 상징되는 박정희 파시즘 정권 말기였는데, 많은 수의 한국인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 시절은 그에게 "아주 끔찍한 시기"로 기억된다. 비유컨대 그토록 엄혹한 겨울공화국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철학도가 느꼈던 절망은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왜 국가 파시즘이 두발과 치마길이까지 억압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