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만에 공개된 이응태 부인의 편지1998년 안동대 박물관에서 고성 이씨 분묘 이장시에 발견한 죽은 남편에게 보낸 한글 편지. 한글은 이처럼 부녀자들의 편지에 쓰였다.
안동대박물관
국립국어원의 1년 예산은 100억 원이 채 못 된다. 그것도 절반쯤은 민간단체·학계 지원에 쓰인다. 그러나 경기도의 영어마을 두 곳의 예산은 300억 원이 넘는다. 작년 경기도는 191억, 서울 7억 원의 적자를 냈다. 반면 최근 2년간 영어마을의 정규교육 과정을 이용한 학생은 경기도내 전체 초·중학생의 5%에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지방 자치단체는 경쟁적으로 영어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영어마을로 성이 차지 않는지 정부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2013년 완공을 목표로 한 제주 영어 교육도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국제 경쟁력과 선진화를 영어와 등치시키는 맹목의 심리 속엔 '나만 빠질 수는 없다'는 소외에 대한 두려움과 박탈감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라밖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약 50만 명에 이르지만 정작 그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다. 우리나라 영어마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 미네소타주 '콩고디아 언어마을'에 있는 '한국어 마을(일명 숲 속의 호수)'에는 우리 국제교류재단에서 고작 6000달러를 지원하는 데 그친다. 이는 미국 프리만재단의 지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모두 우리 말글살이의 그늘에 드리운 씁쓸한 풍경들이다.
영어 교육을 '빡세게' 시킬 수 있는 부모의 능력이 아이들의 언어적 능력으로 이해되고, 그런 능력이 장차 한 사회의 계급으로 전화되는 이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영어 광풍에 대해서,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적을 가진 박노자 오슬로 대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 단계에서 다수 노동자들의 언어가 지식사회에서 시민권을 잃어가는 것과 패권 제국의 언어가 사회귀족 특권의 상징으로 부상하는 것은 사회의 대다수 피지배 구성원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이는 결코 '선진화'가 아니며, 사회 양극화의 언어적 표현이자 동아시아 시대에 역류하는 대미 예속의 강화일 뿐이다." - <한겨레>(2005. 10. 3.)백성의 눈 밝힌 세종 임금의 뜻그런 우울한 풍경 가운데서 그나마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세계 최고 부자라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덤핑과 끼워주기를 서슴지 않는 그 문서편집기 무른모(소프트웨어) '엠에스 워드'가 아직도 공략하지 못한 지구상의 마지막 시장이 한국이라는 점이다.
한글 문서편집기 시장을 지킨 것은 프로그램을 쉽사리 바꾸지 않는 사용자들의 보수성이라는 견해도 만만찮지만, 엠에스는 한글 자모 40개(자음 19, 모음 21)가 무한한 조합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 시대의 기호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완성형을 택한 반면,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은 조합형을 선택했던 것이 승패를 갈랐던 것이다. 이는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서 '한글의 승리'이기도 하다.
2005년도에 구입한 내 휴대전화에는 아직도 '똠방각하'나 '쑛다리', 또는 '찦차'를 쓸 수 없다. 이 단말기가 멍텅구리 완성형 코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형이 완성된 글자를 일종의 그림처럼 다루어 이미 만들어진 글자를 불러오는 방식이라면 조합형은 한글의 구성 원리인 초성·중성·종성의 세 갈래 음운을 코드 자료로 삼아 설계해 현대 한글에서 조합 가능한 글자 '1만1172'자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완성형 코드를 표준으로 삼은 것, 한글 자판의 표준을 세벌식 아닌 두벌식으로 정한 것 등(지금 나는 세벌식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은 1991년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제외한 것과 함께 세종 임금이 '백성의 소리’' 만든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노태우 정권이 한글날을 기념일로 격하한 명분이 가관이었다. "노는 날이 많아 산업 생산력이 떨어지고 과소비 풍조가 발생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여론을 존중했다는 것. 이는 당시 노 정권이 신정 연휴와는 별개로 '민속의 날(설날)'과 추석을 연휴로 늘렸는가 하면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칠 경우 다음날까지 휴일을 연장하기도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조치였던 것이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원상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이 14년이다. 하기야 일제가 붙인 '국민학교'를 반 세기 만에 버린 데 견주면 다행인지 모른다. 다시 10년이나 20년 후 한글의 모습을 그려 보기가 어쩐지 두렵기만 한 것은 그간 한글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본 까닭이다.
이 위대한 문자에다 '한글'이란 이름을 붙인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다. 말글이 단순한 의사 소통의 수단에 그치지 않고 얼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꿰뚫어 본 것이다.
유네스코의 국가별 비문맹률 조사(2001~2005)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문맹률은 98%로, 문맹률은 2%에 그친다. 오백예순한 해 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우쳐 날로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 밝힌 세종 임금의 사랑이 그나마 이 땅 온 백성의 눈을 밝혔으니 그 뜻의 '도타움'으로 이 우울을 갈음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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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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