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 제안하면 한나라 당황할 줄 알았다
수류탄 던졌는데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려"

[오연호 리포트 : 인물연구 노무현 ③] 대통령의 자만

등록 2007.10.10 11:31수정 2009.05.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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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6일 인터뷰 중인 노무현 대통령.
지난 9월 16일 인터뷰 중인 노무현 대통령.청와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자들이 나 때문에 구박받는 것이 제일 미안하다"면서 "근데 내가 뭐를 잘못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것이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의 잘못'을 말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이렇게 답했다.

-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렇죠. 탄핵 당해 쫓겨난 대통령을 다시 그 자리로 돌려보내고, 탄핵 당한 직후의 4·15총선에서 의회권력까지 여대야소로 만들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지지자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줬다, 그런데 그 이후에 돌아가는 것을 보면…  결국 그렇게 대통령과 당에게 열심히 좀 해보라고 밀어줬는데 결국은 반듯한 대선후보 하나 못만들어내고, 당도 없어져버릴 지경이 됐으니….

"유시민 의원이 나한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왜 당신이 해야 한다고 하는 거만 합니까, 우리 국민들 기분 좋은 거 좀 해 주셔야지'. 또 조기숙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는 나한테 왜 국민들과 스킨십을 하지 않으냐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던 노 대통령은 자신이 잘못한 것 가운데 하나를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합의 부족을 들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난데없이 대통령이 나서서 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 난데없이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나라당과의) 연정 그 놈 들고 나와 가지고, 국민들이 '연정이 뭐요?'하게 만들었죠. 그건 사전에 내가 워밍업도 없이 불쑥 들고 나와버렸고…. 그 뒤에 또 안그래도 골치 아픈데 개헌까지 들고 나오고, 언론하고 지속적으로 싸우고, 한미FTA도 안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는데, 그 거 해치워버렸거든요. 골치 아픈 일을 두루두루 다 하니까 '저 사람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요?' 한 거지요.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정서에 와 닿지 않는 일들을 계속 꺼내니까."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덧붙였다. "그 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조중동이 필두지만 나와 국민들 사이에 언론들이 적절하게 이간질을 잘 해 가지고…."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합의 부족과 조중동의 이간질이 합쳐져 그 결과가 "열심히 한 것 마저 아무 것도 안한 것처럼" 되어버렸다고 했다.

"사실은 경제에 대해서 얼마나 내가 골머리를 앓고 열심히 했습니까? 경제 하나만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열심히 했는데, 안 했다고 하니까 또 안 한 거가 되어버리더라고요. 경포대, 뭐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그런 말까지 나오고 그게 확 유행을 해 버리니까, 경제를 안 한 대통령이 돼 버렸어요, 실제로는 했는데. 아주 열심히."


"보통의 경우 내 전략이 옳았다는 자만심이..."

대통령은 한편으론 그렇게 억울해 하면서도 '내탓이요'를 확실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국민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을 난데없이 들고 나온" 사례를 이야기할 때는 더욱 그랬다. 대표적인 것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시도였다.

사실 나는 노 대통령을 만나면 꼭 이 대목을 묻고 싶었다. 왜 대연정을 시도하려고 했는가는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됐지만, '대연정을 하자'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어느 정도 참모들의 의견을 수렴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왜냐면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을 제안한 2005년 7월 28일을 전후로 돌아가보면 대연정 시도는 전통적 노무현 지지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나라당과 대연정 하는 꼴 보려고 우리가 그토록 눈물 흘려가면서, 탄핵 막아가면서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었나? 이런 배신감을 집단적으로 갖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지지자들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었는데, 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시도 했을까? 무엇을 믿고?

- 대통령께서 대연정을 시도할 때 청와대의 한 참모를 만나 물어봤습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시도는 대선 때 노무현을 찍은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지지자들을 무장해제 시킬 것이다, 왜 꼭 하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이러더군요.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론이 있는데,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이러한 큰 흐름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대통령의 직감이 가장 옳았다, 그래서 우리는 따르기로 했다.' 어떻습니까? 지금 되돌아보면 그 대통령의 직감이라는 것에 대해….
"연정은 조금 그… 바로 내 전략이 보통은 옳았다라고 하는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입니다. 내 딴엔 건곤일척의 카드라고 던졌는데, 그게 흑카드가 됐어요."

"내 전략이 보통은 옳았다는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 연정에 대해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내탓'을 분명히 한 것은 처음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실책"(한겨레, 6월13일)이라고 표현한 적은 있지만 그때는 '나의 자만심' 때문이라고 분명히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수류탄을 (적을 향해) 던졌는데, 그게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렸다"고 했다.

"나는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할 줄 알았어요, 상대방이. 내가 그때 내다본 것은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지고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일사불란하고 우리쪽은 갑론을박이 돼 버렸어요(웃음). 거꾸로 총알이 그냥 우리한테 날라오고. 수류탄을 (적을 향해) 던졌는데 데굴데굴 굴러 와 가지고 막 우리 진영에서 터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이, 감당할 수가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아주 뼈아프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수류탄은 함부로 던지지 말아야죠(웃음)."

"상의할 때는 아무 말도 없던 사람들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005년 9월 1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저와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연정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005년 9월 1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저와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연정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종호
그렇다면 "아주 뼈아프게 생각"하는 이 대연정 시도 실책에 대해 노 대통령은 어느 정도 당쪽이나 참모들과 상의를 했을까?

"당 지도부하고는 얘기 다 해 놓았습니다."

- 정말 그랬나요?
"당 지도부와 핵심 장관들하고는 다 의논했어요. 그중 몇몇은 참, 내가 다 얘기할 땐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침묵하고 있었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연정 구상을 처음으로 여권 핵심부 인사들과 집단적으로 상의한 '11인 모임'(2005년 6월 24일)을 말하고 있었다.

- 그냥 지나가면서 얘기한 게 아니라 정식으로 모여 상의를 한 건가요?
"모아놓고 얘길 했어요. 전략으로서 여러 가지 논의를 했는데 한 마디 말이 없이 가니까 뭐 내 마음대로 할 수밖에 없지요. 하라, 마라 말이 있어야 내가 뭐 어떻게 할 건데…. 하라는 말도 안 하고 안 하라 말도 안 하고 알아서 해라 이거지. 그래서 알아서 했지요(웃음). 듣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은 '난 별 의견이 없다' 이거거든. 그래 놓고 몇몇은 나중에야 '왜 너 알아서 했냐' 이래 된 거죠. 그 사람들 참…(웃음)."

그 11인모임 한 달 후, 언론(<연합뉴스> 2005년 7월 29일자)엔 이런 보도가 실렸다. "여권 유력주자인 정동영 통일부장관, 김근태 복지부장관은 노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안한 채 함구하고 있다."

어쨌든 대통령 스스로 "중요하게 상의한 사람들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고 한 것을 보면 '충분한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최종 결정은 청와대의 참모들과 상의해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내렸다고 했다.

"그때 나는 (한나라당이 6월 27일 제출한 윤광웅) 국방부장관 불신임이 통과될 줄 알았어요. 그걸 전제로 분위기 잡는다고 연정 계획에 대한 페이퍼를 (긴히 상의할 이들에게) 돌려놨는데,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이 부결돼 버린거죠. 그럼 도로 거둬 들여야 될 거 아니오? 도로 이제 회수하고 연정 안한다로 가야 되는데… 참모들이 '도로 거둘까요? 이거 상황이 달라졌는데 도로 거둘까요?' 이랬는데, 내가 '어쩌면 좋겠나? 확 한 번 밀어볼까?' 이러니까 '해 보시죠 뭐' 그래서…(웃음)."

노무현의 정치적 감각으로 "확 한 번 밀어본" 것이 결국은 패착이었다.

"나는 상대방이 상당히 당황할 거라고 봤어요. 당황하고 내부에서 갑론을박 하고 논쟁이 붙을 걸로 봤는데, 이 사람들이 아마 나한테 놀랬나봐요. 내가 던지는 건 무조건 받지 마라, 내가 던진 거는 처음에는 뭐 호박 같아도 나중에 그건 다 지뢰다, 이렇게 보는 모양이야."

역풍은 대단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선 '아니 누구하고 합당한다고?' 이래 나오잖아요. 사실은 연정과 합당은 전혀 다른 것인데, 그 당시에 연정과 합당을 같이 묶어버리더구만. 그때 (내가 전부터 상의해온 여권 핵심부) 몇몇이 그걸 수습해 줘야 되는데, 아무도 수습을 안해주더구만. 그래 아이구 벌써부터 몸조심이나 하고, 그렇게 생각했죠."

무엇보다 가장 큰 역풍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지지자들의 신뢰에 큰 타격이 가해졌다는 점이다.

- 그때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이거 하라고 대통령 밀어준 게 아닌데"였습니다. 노대통령은 정치지도자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신뢰의 기본이라고 했는데, 반한나라당 하고 싶어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었더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정치적 차이가 없다'면서 한나라당하고 연정을 하자고 하니….
"바로 그런 점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시민 모두가 지도자가 되자', 이제 시민도 전략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시민이 연정과 합당을 구별할 줄 알아야 되고, 시민이 연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정치학 교과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 대통령은 대연정 시도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아무런 정치적 성과도 얻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의 자만심이 부른 뼈아픈 패착"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 발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모순 아닌가?

"나한테 모순이 있는 건 아닙니다. 나는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민주당 시절부터 연정 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4년 총선은 반드시 우리가 질 걸로 봤습니다. 그 당시 민주당도 분열돼 있었고 궤멸 상태였기 때문에. 도저히 내가 그 당을 수습해갈 자신도 없었고, 또 그 당 가지고 우리가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2004년 총선 때 난 질 걸로 봤고, 그때 카드를 소위 일종의 이원집정에 가까운, 말하자면 내각제에 가까운 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총리를 국회 다수당이 맡고, 실질적 권력을 가져가고, 국군통수권 등 헌법상 부득이한 권력과 몇 가지 대외적 권력, 그리고 의전적 권력을 내가 행사하는 것으로, 그러면서 이제 타협의 정치를 한 번 해 보려고 한 것이죠."

 노무현대통령이 지난 2005년 7월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정관련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피력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이 지난 2005년 7월 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정관련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피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패배주의와 승부사적 기질의 이중주

이렇게 대통령이 "일찌감치 가지고 있었던 구상"은 노무현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정국주도 측면에서 자신감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지자들은 '화끈하게 한번 해보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을 때, 그는 "도저히 당을 수습해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2004년 총선에 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내 한 몸 바쳐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발상을 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 권력의 반을 내놓고 선거구제 개편을 시도하려 한 것이다. 기존의 지역구도를 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 강화가 그 협상안이었다.

그런데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패배주의'를 지지자들이 거부해버렸다. 지지자들은 탄핵역풍을 만들어내면서 4·15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인 제1당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이겨 버리는 바람에, 아이 뭐 할 수가 없게… 할 수가 없게 됐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러나 대연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2004년 탄핵역풍 직후의 4·15총선으로 표면상 대통령과 의회 두 권력 모두를 장악했으면서도 자신감을 길게 가져가지 못했다. 2005년 재보선(4월 30일)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고, 과반이 무너지자 한나라당과의 연정구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2004년 총선에서 이기니까, 연정을 할 수가 없게 돼 버리는 바람에 못 했는데, 그게 이제 1년 후 재보선에서 다시 역전이 됐죠. 그 전후로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연정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게 부러웠습니다. 어떻든 한계에 봉착한 지도자는 다시 국민의 심판을 통해서 물러가든지 다시 권력을 회복하든지 그렇게 결판을 내야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정치냐,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던 참에 슈뢰더의 구상을 보고 우리도 이거 한 번 해 보자, 말하자면 걷지도 못하는 놈들끼리 우리 점프 한 번 해 보자 이래 된 거죠, 이제(웃음)."

결국 준비 안된, 무모한 그 점프는 실패했다. 노 대통령의 "뼈아픈 실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의 대연정 시도는 패배주의와 승부사적 기질이 동전의 양면처럼 합쳐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두 이질적 요소의 결합이 만들어낸 대도박, 그래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찍었던 그의 지지자들은 그의 시도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 대통령은 2004년에 탄핵을 당하기 전부터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너무나 버겁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신임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그 당시 심리적으로 내가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국민들한테 다시 신임을 묻지 않고 내가 대통령직을 계속 수임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버겁고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 하나의 정권에 의해서 역사가 크게 바뀌거나 발전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정권이 한번 서고 한번 무너지는 이 과정이 굉장히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나는 이미 그때는 대통령으로서 거의 말하자면 힘이 다 빠져 버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판단했었어요. 그래서 재신임을 던진 것인데, 재신임도 되지도 않았고…."

 지난 9월 2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이한기 뉴스게릴라 본부장, 황방열 기자가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뷰 하고 있다.
지난 9월 2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이한기 뉴스게릴라 본부장, 황방열 기자가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뷰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내 정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중요"

- 그런 상태의 대통령을 지지자들은 이해하지 못하지요. 얼마나 어렵게 만든 대통령인데 자꾸 힘들다고 하고, 왜 '아이고, 그만 해버릴까' 하는지…. 대통령이라는 권력은 노무현 개인의 것이 아니고 지지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를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은 마음이 안 그렇겠지만, 내 처지에서는 내 정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역사라는 건 계기가 중요한 것이고 국가라는 것은 제도가 중요한 것인데, 내 정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봐서 통 크게 한번 하려고 하는 것이죠."

내 정권보다는 역사와 제도를 택했다! 노 대통령은 '큰 거 한 건'을 겨냥하고 있었다.

"물줄기를 그렇게 바꾸어 내는 그 하나가 5년 내내 갖고 두드려 맞아 가면서 주물러 쌓는 것보다는 기록상 확실하게 남습니다. 말하자면 역사의 한 매듭을 확실하게 바꾸려고 했습니다."

무엇이 노 대통령을 그렇게 다급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왜 지지자들의 마음을, 국민들의 마음을 차곡차곡 얻으려 하지 않았을까?

"오늘 5원어치 팔고 내일 10원어치 팔고, 물론 푼돈 모아도 중요하죠. 국가 운영이라는 건 10원도 벌고 20원도 벌고 뭐 50원도 벌고 티끌모아 태산이지만, 그러나 그건 내가 안 해도 그 정도는 끌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한판의 승부'를 벌인 것이다. 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선거구와 정권을 맞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출발할 때부터 환경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2004년도의 총선은 지게 돼 있다고 보고…. 여소야대 가지고 정국을 주도할 수 없기 때문에, 정권은 분명히 노무현 정권인데 속은 그게 안 돌아가는 정권이거든요. 이게 자동차 뚜껑은 벤츠인데 안에는 경운기 엔진이 들어가 있거든. 사람들은 보고 '벤츠 저게 뭐야, 두드려 부셔 버려' 딱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노 대통령은 너무 많은 것을 얻고자 했다. "역사의 한 매듭을 확실하게 짓고자"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왜, 무엇에 동의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는, 성급한 패배주의'였다.

그래서 국민은, 지지자들은 역사에 남을 '큰 승부 한판'을 벌이겠다고 나선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않았다. 이해 못한 것이 아니라, 이해를 거부한 것이다. 큰 권력(시민사회)이 작은 권력(대통령)의 성급한 성과주의에 '정신 차려' 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0월 12일 오후 4시] 기사 본문 가운데 "슈뢰더 총리가 연정을 하고 있을 때"를 "연정을 구상하고 있을 때"로 바로잡았습니다. <편집자>


덧붙이는 글 [10월 12일 오후 4시] 기사 본문 가운데 "슈뢰더 총리가 연정을 하고 있을 때"를 "연정을 구상하고 있을 때"로 바로잡았습니다. <편집자>
#노무현 #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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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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