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005년 9월 1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저와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연정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종호
그렇다면 "아주 뼈아프게 생각"하는 이 대연정 시도 실책에 대해 노 대통령은 어느 정도 당쪽이나 참모들과 상의를 했을까?
"당 지도부하고는 얘기 다 해 놓았습니다."
- 정말 그랬나요?
"당 지도부와 핵심 장관들하고는 다 의논했어요. 그중 몇몇은 참, 내가 다 얘기할 땐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침묵하고 있었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연정 구상을 처음으로 여권 핵심부 인사들과 집단적으로 상의한 '11인 모임'(2005년 6월 24일)을 말하고 있었다.
- 그냥 지나가면서 얘기한 게 아니라 정식으로 모여 상의를 한 건가요?
"모아놓고 얘길 했어요. 전략으로서 여러 가지 논의를 했는데 한 마디 말이 없이 가니까 뭐 내 마음대로 할 수밖에 없지요. 하라, 마라 말이 있어야 내가 뭐 어떻게 할 건데…. 하라는 말도 안 하고 안 하라 말도 안 하고 알아서 해라 이거지. 그래서 알아서 했지요(웃음). 듣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은 '난 별 의견이 없다' 이거거든. 그래 놓고 몇몇은 나중에야 '왜 너 알아서 했냐' 이래 된 거죠. 그 사람들 참…(웃음)."
그 11인모임 한 달 후, 언론(<연합뉴스> 2005년 7월 29일자)엔 이런 보도가 실렸다. "여권 유력주자인 정동영 통일부장관, 김근태 복지부장관은 노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안한 채 함구하고 있다."
어쨌든 대통령 스스로 "중요하게 상의한 사람들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고 한 것을 보면 '충분한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최종 결정은 청와대의 참모들과 상의해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내렸다고 했다.
"그때 나는 (한나라당이 6월 27일 제출한 윤광웅) 국방부장관 불신임이 통과될 줄 알았어요. 그걸 전제로 분위기 잡는다고 연정 계획에 대한 페이퍼를 (긴히 상의할 이들에게) 돌려놨는데,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이 부결돼 버린거죠. 그럼 도로 거둬 들여야 될 거 아니오? 도로 이제 회수하고 연정 안한다로 가야 되는데… 참모들이 '도로 거둘까요? 이거 상황이 달라졌는데 도로 거둘까요?' 이랬는데, 내가 '어쩌면 좋겠나? 확 한 번 밀어볼까?' 이러니까 '해 보시죠 뭐' 그래서…(웃음)."
노무현의 정치적 감각으로 "확 한 번 밀어본" 것이 결국은 패착이었다.
"나는 상대방이 상당히 당황할 거라고 봤어요. 당황하고 내부에서 갑론을박 하고 논쟁이 붙을 걸로 봤는데, 이 사람들이 아마 나한테 놀랬나봐요. 내가 던지는 건 무조건 받지 마라, 내가 던진 거는 처음에는 뭐 호박 같아도 나중에 그건 다 지뢰다, 이렇게 보는 모양이야."
역풍은 대단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선 '아니 누구하고 합당한다고?' 이래 나오잖아요. 사실은 연정과 합당은 전혀 다른 것인데, 그 당시에 연정과 합당을 같이 묶어버리더구만. 그때 (내가 전부터 상의해온 여권 핵심부) 몇몇이 그걸 수습해 줘야 되는데, 아무도 수습을 안해주더구만. 그래 아이구 벌써부터 몸조심이나 하고, 그렇게 생각했죠."
무엇보다 가장 큰 역풍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지지자들의 신뢰에 큰 타격이 가해졌다는 점이다.
- 그때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이거 하라고 대통령 밀어준 게 아닌데"였습니다. 노대통령은 정치지도자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신뢰의 기본이라고 했는데, 반한나라당 하고 싶어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었더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정치적 차이가 없다'면서 한나라당하고 연정을 하자고 하니…. "바로 그런 점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시민 모두가 지도자가 되자', 이제 시민도 전략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시민이 연정과 합당을 구별할 줄 알아야 되고, 시민이 연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정치학 교과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 대통령은 대연정 시도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아무런 정치적 성과도 얻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의 자만심이 부른 뼈아픈 패착"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 발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모순 아닌가?
"나한테 모순이 있는 건 아닙니다. 나는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민주당 시절부터 연정 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4년 총선은 반드시 우리가 질 걸로 봤습니다. 그 당시 민주당도 분열돼 있었고 궤멸 상태였기 때문에. 도저히 내가 그 당을 수습해갈 자신도 없었고, 또 그 당 가지고 우리가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2004년 총선 때 난 질 걸로 봤고, 그때 카드를 소위 일종의 이원집정에 가까운, 말하자면 내각제에 가까운 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총리를 국회 다수당이 맡고, 실질적 권력을 가져가고, 국군통수권 등 헌법상 부득이한 권력과 몇 가지 대외적 권력, 그리고 의전적 권력을 내가 행사하는 것으로, 그러면서 이제 타협의 정치를 한 번 해 보려고 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