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의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인생 칠십

이영희 국악협회 이사장 고희기념연주회 민속음악 작은 축제

등록 2007.10.13 11:31수정 2007.10.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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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일찍이 인생을 단계별로 정리해놓은 바 있다. 20세를 뜻하는 약관, 40은 불혹 그리고 50의 지천명, 60의 이순까지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요즘에야 그 말이 무색해졌지만 과거에는 이순을 넘겨 사는 사람이 드물다 보니 70 나이에 대해서는 공자가 피력한 종심(從心)이란 말보다 오히려 두보 싯귀에서 따온 고희란 단어를 널리 사용해왔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따온 것이 고희라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더 이상 고희는 고희가 아니다. 이제쯤 들어서는 고희보다는 다시 공자의 종심(從心)이란 말을 생각하게 된다. 종심이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로 마음이 좇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쉽게 풀자면, 법이나 도덕에 일부러 기대지 않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는 참으로 심오한 뜻을 담고 잇다.


물론 그저 수령이 70이 된다고 누구나 종심의 경지에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12일 오후 5시에 열린 한 국악명인의 고희기념연주회는 머리 속에 희미하게 흔적으로 남아있던 종심에 대한 뜻을 다시금 새기게 하였다. 가야금 인간문화재이자 2000년부터 현재까지 국악협회 이사장의 직분을 잇고 있는 이영희 선생의 종심을 축하하는 전 국악인들의 자발적 축제였다.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인간문화재 이영희 명인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인간문화재 이영희 명인국악협회

한 달 보름 전 가야금전수관 문제로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가 계단서 굴러 갈비뼈가 부러지고, 피가 고이는 등 큰 부상을 입었지만 고통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하객들을 잔잔한 미소로 맞은 이영희 선생은 막상 소감 한 마디 묻자 손도 들지 못하고 고개만 겨우 저을 정도로 힘겨워 보였다. 국악협회 이사장으로서 국악행정을 도맡아 해온 지난 세월 동안은 선생의 연주를 자주 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비록 짧은 산조나마 큰 기대를 건 이가 적지 않을 터, 적잖이 연주가 걱정되었다.

국악 공연장으로서는 가장 큰 극장인 국립국악원 예악당이 로비부터 객석까지 잔치분위기 물씬 묻어나 그저 구경꾼도 괜히 덩달아 들뜨게 되기도 했다. 마침내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 막이 올랐다. 간단한 영상으로 선생에 대해 묘사하고는 정화영 고수의 장단에 맞춰 선생의 간만에 보는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가 시작되었다.

사실 너른 공연장인 예악당은 산조를 감상하기에는 적당치 못한 곳이다. 또한 산조의 참맛인 농현을 그것도 평소 선생이 지켜온 원리대로의 농현은 이미 부상으로 인해 완벽히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상 연주가 시작되고 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전바탕 산조를 모두 연주를 들은 듯 가슴에 뭉클한 무언가가 숨통을 틀어막았다.

이영희 선생의 가야금 산조는 특히 농현의 진수를 보인다. 누를 때에는 태산이 일거에 허물어지듯 벼락처럼 온 힘을 왼손가락에 몰아넣고 이내 좀 전의 단호함은 짐짓 모르는 체 모든 힘을 추스려 명주실 켜켜이 꼬아 만든 가야금줄의 신비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날 연주에서도 비록 맛만 보인 짧은 산조였으나 70 연세에도 불구하고 한 음 한 음 여유로움과 긴장을 놓치지 않아 듣는 이를 너른 들판에서 시작하여 심산유곡의 몰아경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14살에 처음 그 줄들 위에 손을 얹어 박절하게 따지자면 56년 넉넉하게 말해서 60년을 그 위를 하루도 떠난 적이 없으니 그럴 법도 하다. 예로부터 장단에 죽고 사는 우리음악이지만 진정 득음의 경지에 서게 되는 명인은 그 장단 위에 존재한다 하여 ‘장단을 갖고 논다’는 말로 그 음악적 깊이를 표현했다.

이날 불과 몇 분의 간략한 연주였지만 이영희 선생의 무대에 선 모습만으로도 ‘장단 위의 장단’, ‘종심의 연주’를 느끼게 하였다. 평생을 함께 울고 울었을 열 손가락과 열두 줄의 가야금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 듯 오랫동안 감춰왔던 열두 줄의 신비를 스스럼 없이 드러냈고, 한 음 한 음들은 올처럼 알알이 엮여 산조의 이름을 직조하였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분명 국악인은 아닌 얼굴의 한 중년사내가 선생의 연주에 처음부터 끝까지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는 장단을 따라 짚는 조용한 열광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참으로 간만에 산조에 대한 깊은 감흥을 준 선생의 연주가 손님들에 대한 예로 보여진 후는 국악계 후배들의 축하연주가 이어졌다. 그 모습들도 하나같이 명인이요, 독보적이었다. 무대 위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객석 또한 전국에서 선생의 종심을 축하하기 위해 상경한 얼굴들로 가득했다.

선생의 가야금 제자들 24명이 연주한 줄풍류,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집 센 단체라고 볼 수 있는 강정숙 가야금병창단의 병창, 임이조의 한량무, 양길순의 소고무와 진유림의 흥춤. 그리고 이춘희 김영임 이금미의 경기민요, 김광숙 이춘목의 서도민요, 신영희 강정숙 김차경의 남도민요. 마지막 이광수의 풍물로 판을 열고 막았다.

 축하공연 후 열린 칠순잔치에서 케이크 커팅을 위해 모인 국악계 인사들. 왼쪽부터 문화부장관을 대신한 김진곤 전통문화팀장, 김철호 국악원장, 전황 전 국압협회이사장, 이재숙 전 서울대교수, 이영희 명인, 이은주 명인, 신영희 명창, 윤미용 전 국악원장, 정인삼 명인.
축하공연 후 열린 칠순잔치에서 케이크 커팅을 위해 모인 국악계 인사들. 왼쪽부터 문화부장관을 대신한 김진곤 전통문화팀장, 김철호 국악원장, 전황 전 국압협회이사장, 이재숙 전 서울대교수, 이영희 명인, 이은주 명인, 신영희 명창, 윤미용 전 국악원장, 정인삼 명인.김기


이어 장소를 옮겨 열린 본격 칠순 잔치에는 정악, 민속악 가릴 것 없이 많은 하객들이 찾아와 잔치 분위기를 실감케 하였다. 모처럼만에 본 흐믓한 분위기였다. 단상에는 이영희 선생을 비롯 경기민요 이은주 선생, 전 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던 전황 선생, 이제숙 명인, 신영희 명창, 정인삼 명인, 윤미용 전 국악원장, 김철호 국악원장 등이 함께했다.

이영희 선생은 한복이 참 잘 어울리는 어른이다. 공식석상에 입고 나오는 전통한복이며, 평소 일상복으로 입고 다니는 살짝 개량한 한복까지 한국 여인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옷으로도 널리 알리고 있다. 선생을 보고는 한복집으로 달려간 사람이 부지기수일 정도다.

전북 군산 출신으로 본래 국악을 전공하고자 가야금을 잡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취미삼아 시작했다가 우연한 기회인 1961년 중앙방송국(KBS의 전신)이 개최한 국악콩쿨에서 1위를 한 계기로 본격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대학출신, 그것도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이어서 비슷한 연배인 황병기 선생과 더불어 국악계 인텔리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국악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서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후학을 길러냈다. 당시 직접 배우진 않았지만 현재 중앙대 박범훈 총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영재 교수, 중앙대 최태현 교수 등 후학들은 현재 민속악계의 거두들이다. 박범훈 총장은 이영희 선생에 대해서 ‘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선생님’이었다고 회상하였다.

국악계에는 오랫동안 드러내놓진 않지만 정악계와 민속악계의 묘한 구분과 긴장이 존재해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영희 선생만은 양쪽 모두에게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인사 중 하나로서 이날 칠순 잔치는 모처럼 양쪽 국악인들이 격의 없이 어우러지는 흐뭇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것이 종심에 이른 한 예술가의 삶의 무게가 끼친 영향이 아닐까? 선생의 단아하면서도 한편 당찬 한국여인의 본 모습을 더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는 것이 잔치에 모인 모든 사람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이영희 #가야금 #국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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