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억만 번이나 읽었다고?

[책으로 읽는 세상 35] <서재: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

등록 2007.10.15 10:47수정 2007.10.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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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한국에서는 독서를 장려하는 운동의 하나로써 거실을 서재로 바꾸자는 캠페인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거실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있는 화면이 커다란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책들이 가지런하게 꽂힌 책장을 들여놓음으로써, 저녁 시간 텔레비전이 앗아간 가족 간의 대화도 되찾고 보다 자주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하자는 것이다.


집에서부터 독서의 생활화를 실천하자는 이러한 운동은, 책 읽기를 몹시 좋아해서 때와 장소에 별로 구애 받지 않는 이들에게는 마치 글씨 잘 못 쓰는 이가 붓 타박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창 배움의 나이에 있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책 읽기보다는 시시껄렁한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 시청과 컴퓨터 게임 즐기기에 더 몰두하는 요즘의 세태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세태가 꼭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텔레비전과 컴퓨터에 빼앗기는 여가 시간은 어른들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면서도 우리 한국인들은 한 달에 평균 1권 정도에 불과한 독서량을 보이고 있다는 부끄러운 통계는 이러한 사정을 잘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거실을 서재로 바꾸자는 캠페인은 알맹이보다는 겉꾸림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는 해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캠페인에 동참하여 거실을 서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렇게 서재로 바뀐 거실에 들여놓은 책장을 채우는 일이 문제가 될 터이다.

우리 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옛 고전들을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고전연구회 사암(俟巖)에서 쓰고 엮은 책 <서재: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는 그렇게 새로 마련한 책장을 채우는 첫 번째 책으로 참 적당해 보인다. 이 책의 머리말에 볼 것 같으면, 거실을 서재로 바꾸자는 캠페인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되었음을 밝혀놓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2.


책표지 <서재: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
책표지<서재: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포럼
<서재: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는 고려 말엽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시기에 살았던 옛 선비들의 서재 30곳의 이름과 그 내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들 중에는 정약용, 유성룡, 송시열처럼 우리 역사에 그 이름을 빛내고 있는 대학자들도 몇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 듣거나 별로 익숙하지 않은 산림처사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서재 대부분이 오래 보존되어 내려오기 어려운 궁색하고 남루한 초가 신세를 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 내가 세어 보니 이 책에 소개된 30곳의 서재 중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은 송시열의 암서재와 유성룡의 옥연서당 등 6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것들조차도 오늘날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는 참으로 볼품없는 서재로만 보인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초라한 서재에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 놓고, 자신의 스승이나 친구 또는 친지 등에게 부탁하여 서재의 이름에 대한 뜻과 내력을 적은 글을 후세에까지 전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건물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으나 그 이름만은 오늘날에까지 전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글로 전해져 오는 옛 선비들의 서재 30곳을 하나 하나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옛 선비들의 서재 이름들은 대개 그들이 감명 깊게 읽은 중국의 고전들에서 따온 구절이나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한자어 또는 서재가 자리잡고 있는 지형지물의 특징을 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서재의 이름으로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은 ‘통곡(痛哭)’이나 ‘옹졸하다, 서툴다, 졸렬하다, 보잘것없다’는 뜻을 갖고 있는 글자 ‘졸(拙)’ 등 특이한 글자를 사용해서 붙인 서재의 이름도 여럿 있어서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책장을 넘겨 가면서 참으로 가지각색의 이름을 갖다 붙인 옛 선비들의 서재를 한참 들여다 보고 있자니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왜 그들은 자신이 붙인 서재의 이름에 대한 뜻과 내력을 스스로 밝히는 대신 남에게 부탁해서 글을 짓도록 했을까?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서재에 대한 이름풀이 글이 스스로가 지은 글이 아니라 남이 지어준 글이니 말이다.

서재의 이름은 스스로 지어 붙였지만 그 이름풀이까지도 스스로 하는 것은 자화자찬의 행위로 여긴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남에게 부탁하면, 내가 이름 붙이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보다 넓고 깊은 의미를 얻어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나. 그도 아니면 나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의 글에 기대어 내 서재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한 마음일지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이 연암협에 잠시 은거해서 살 때 가르쳤던 제자 최진겸의 서재 독락재에 붙인 글을 보자. 이 글에는, 이름 붙인 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바를 깨우쳐 가르치는 스승의 권위가 담겨 있어서 재산은 좀 있었으나 시골 서생에 불과했던 최진겸의 서재가 그 후광을 얻고 있다.

최씨 집안의 자제 진겸(鎭謙)이 하계(霞溪)가에 서재를 짓고 뜻이 맞는 몇몇과 더불어 그곳에서 독서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 서재의 이름을 독락재(獨樂齋)라고 했는데, 이것은 옛 사람의 도(道)에 뜻을 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뜻이 크다고 여겨서 이와 같이 글을 짓는다. 그가 독서에 더욱 전념할 수 있도록 해, 그의 독락(獨樂)을 중락(衆樂)이 되게 하려고 한다. 이것은 그 즐거움을 세상 사람들과 누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집 ‘독락재기(獨樂齋記)’>

사실, 옛 선비들에게 있어서 서재는 단순히 책을 읽고, 글을 짓고, 사색에 잠기는 등 혼자만의 즐거움을 누리는 공간이 결코 아니었다. 서재는 그와 동시에 벗과 어울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누추하고 비좁을 망정, 마음 맞는 다정한 벗과 함께 서재에서 함께 나누는 즐거움 만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자칭 간서치(看書痴, 책벌레라는 뜻)라고 부를 정도로 독서광이었던 이덕무가 친구 이서구에게 보낸 편지는 그 기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내 집안에 있는 물건 중 가장 좋은 것은 다만 <맹자> 7편뿐인데, 오랫동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돈 2백 닢에 팔아 버렸네. 밥을 배불리 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유득공)의 집으로 달려가 크게 자랑했네. 그런데 영재 역시 오랫동안 굶주린 터라, 내 말을 듣더니 그 즉시 <춘추좌씨전>을 팔아 버렸네. 그리고 술을 사와 서로 나누어 마셨는데, 이것은 맹자가 손수 밥을 지어서 내게 먹이고, 좌구명(<춘추좌씨전>의 저자)이 친히 술을 따라서 내게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덕무, '청장관전서' 이낙서에게 주는 편지(與李洛瑞書)>

그 처연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이 편지에서 이덕무는 자신의 서재인 구서재(九書齋)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덕무가 말한 구서(九書)란 책을 읽는 독서(讀書), 책을 보는 간서(看書), 책을 간직하는 장서(藏書), 책 내용을 뽑아 베껴 쓰는 초서(鈔書), 책을 바로잡아 고치는 교서(校書), 책을 비평하는 평서(評書), 책을 저술하는 저서(著書), 책을 빌리는 차서(借書), 책을 볕에 쬐고 바람에 쐬는 폭서(曝書)를 말한다.

이처럼 옛 선비들에게 있어서 서재는 단순히 여가 시간에 홀로 한가롭게 책을 읽으면서 소일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서재는, 책 읽기를 가장 중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여 실천하는 생활의 장이요, 마음 맞는 벗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는 사교의 마당이었다.

또한 자신의 삶에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새겨놓은 과정을 통하여 평생에 걸쳐 삶을 수련하는 정신의 도량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선 중기에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백곡 김득신의 서재 억만재에 얽힌 내력만큼 이를 잘 보여주는 예도 드물 것이다.

‘억만재(億萬齋)’는 글자 뜻 그대로 김득신이 글을 읽을 때 1만 번이 넘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괴강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김득신의 옛집, 취묵당(醉墨堂)에 걸려 있는 ‘독수기(讀數記)’에 보면, 그가 평생 1만 번 이상 읽은 글 36편의 목록이 가득 적혀 있다. 여기에는 김득신이 <사기>(史記) ‘백이전(伯夷傳)’을 무려 1억1만3천 번이나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1만 번 이상 읽은 글이 36편이나 되고 그 중 하나는 1억 번이나 넘게 읽었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성복의 시집 <남해금산>에 관한 짤막한 기사를 하나 쓰기 위하여, 무려 백 번이나 그 시집을 읽었다는 소설가 김훈의 일화도 여기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김득신 만큼은 아니더라도 조선의 선비들은 너나없이 이렇게 대나무 가지에 횟수를 표시해 가면서 독서할 정도로 글을 반복해서 읽고 외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랬기에, 앞서 소개한 이덕무나 유득공의 일화처럼, 그렇게 소중하게 읽던 책을 팔아 술을 사다 마시는 일조차도 처연함보다는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리라. 너무나 많이 읽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외우고 몇 쪽에 무슨 구절이 씌어져 있는 것까지도 훤하니 구태여 책을 지니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았겠는가!

3.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처럼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책을 읽었던 옛 선비들의 독서관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서재에 채우고자 했던 것은 남이 지은 책들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삶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이 책에 붙인 제목 <서재: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가 몹시 불만스럽게 여겨진 것은 당연한 일. 우리나라 옛 선비들의 서재의 내력을 다루고 있는 책에 ‘디스플레이(display)’라는 영어 단어를 쓴 것도 그렇거니와, 책을 읽어보면 옛 선비들의 서재가 단지 지식과 교양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혹시 다음에 개정판을 내게 된다면, 좀 더 적합한 제목으로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스스로 다짐을 해본다. 그리 넓지 않은 내 서재의 빈 공간을 채우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읽었으되 내 것으로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고. 그래야 나도 나중에 내 책들을 팔거나 남에게 주어야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내 책들을 떠나 보낼 수 있을 터이니.

덧붙이는 글 | <서재 : 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

ㅇ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쓰고 엮음
ㅇ 포럼 펴냄
ㅇ 가격 1만 5천원


덧붙이는 글 <서재 : 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

ㅇ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쓰고 엮음
ㅇ 포럼 펴냄
ㅇ 가격 1만 5천원

서재 - 지식과 교양을 디스플레이하다

고전연구회 사암 엮음,
포럼, 2007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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