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시간이 별로 없다. 오후 1시 30분 배로 들어왔으니, 2시 도착. 4시 배로 또 나가야 한다. 중간에 사진 찍으면서 걸으면 왕복 1시간 40분 정도. 빠듯하다. 허위허위 내려가니 덥고 갈증 나고, 우리 손님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수다 중. 한 사람이 내게 포카리스웨트를 불쑥 내민다. 어이쿠, 반가워라, 내가 제일 그리워하던 것. 이럴 때 제일 고맙다. 나의 손님들.
다시 통통배 이야기로 돌아간다. 우리 회장님 오히려 내게 반박.
"그렇게 좋은 게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요. 이 불쌍한 중생(산을 넘지 못한 사람들)들 좀 구제해 주게."
"내가 분명히 말 했는데… 그럼 아까 알아보러 간 거 아니었어요?"
"아니오. 난 거기가 회 먹는 덴 줄 알고 갔었어요. 그리고 난 거기 물 들어오는데만 건너 준다는 줄 알았는데…"
이런, 이건 완전히 커뮤니케이션의 실수다. 그러나 잘한 일이었다. 문제 생기면 서로가 곤란해진다니. 그런데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은 회식으로 맛난 음식을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바닷가에서 회를 드시겠다는데 나는 아는 데가 없다. 덧붙여 아침 점심이 너무 맛이 없어서 모두들 밥을 먹을 수 없었단다. 관광지 음식, 더구나 이곳 음식은 정말 별로다.
이러다 몰매 맞을지 모르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니 쓸 수밖에. 음식만 별로가 아니다. 서비스도 그렇다. 그래서 숙소도 매번 통영이나 거제가 아닌 순천에다 잡는다. 필요에 의해서(새벽에 배를 타야 할 때) 어쩔 수 없이 통영에서 숙박한 적이 있었다.
장마철이었는데 방 하나가 비가 샌다기에, 그럼 내가 그 방을 쓰겠다고 했다. 새는 방을 손님을 줄 수가 없어서. 그런데 방만 새는 게 아니라 복도도 새서 통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뭐 새는 것 정도야, 미처 수리를 못 할수도 있지하고 이해했는데 정말 기막힌 일은 아침에 일어났다.
모닝콜이 오고 10분 만에 전화가 왔다. 빨리 방을 비워 달라는 프런트의 전화였다. 아니, 금방 모닝콜을 하고 비워달라니 무슨 말이냐고 항의했더니. 지금 밖에서 손님이 기다리신단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아무리 그래도 30분 전에는 절대 못 비워준다며 전화를 끊었다. 짐을 들고 나오다 보니 로비 한쪽 구석에서 남녀 한 쌍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단체 손님은 안 받는다나. 짧은 시간(?) 손님이나 개인 손님만 받고 단체 손님은 받고 싶지 않다나. 그 이후로 새벽에 배를 타야 할 때도 숙소는 무조건 순천이다. 그런고로 난 저녁을 순천에서 드시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손님은 꼭 바닷가에서 회를 먹어야 한단다. 바다가 멋있게 보이는 횟집에서. 마땅한 곳이 없어서 우리가 자주 가는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영 마음에 안 든다며 도리질, 결국 순천으로 달렸다.
우리가 묵을 모텔과 통화해보니 순천에서 회를 먹으려면 멀리 나가야 한단다. 순간 내 머릿속에 불이 들어왔다. 위기다. 버스 기사님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데다 순천에 도착하면 시간은 이미 저녁 8시 가까이 된다. 어제 밤새 운전한 기사가 열 받는 건 당연하고 기사 때문이 아니라도 이 대형 버스를 몰고 이 집 저 집,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순례를 다닐 수는 없다.
다시 모텔로 전화. 그 주위 먹을만한 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살아있는 꽃게로 요리하는 집이 있는데 먹을만 하단다. 즉시 회장님과 면담, 담판을 지었다. 다행이다. 차를 모텔 앞에 세우고 그 집으로 갔다. 모두 얼굴이 벌게지도록 먹고 마셨다.
회식하는 분위기에서 내 나이를 묻는다. 손님들은 모두 63, 4년생. 자기들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명랑하게 '지는 50대입니다' 했다. 50대 가이드라니, 믿기 어렵다는 눈치. 테마 여행이 처음 생기기 시작한 10년 전 가이드 제의가 들어왔었다. 여행하면서 돈도 벌고 좋지 않느냐며. 나는 사람 숫자를 세면서 무슨 여행이 되느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때까진 누가 뭐래도 여행은 아무 걸릴 것 없이 가볍게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우연히 가이드를 하게 되었다. 워낙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아는 사람이 추천을 해준 것이다. 막상 해보니 힘들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보람이 있었다. 앞에 나가서 마이크 잡고 잘난 척할 기회도 생기고. 이제 1년이 넘었다. 길을 몰라 손님을 싣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적도 있고, 놀고 싶어 하는 손님을 말리다 경을 친 적도 있지만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무궁무진 할 말이 많다.
2007.10.23 10:51 | ⓒ 2007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