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그리스에선지 로마에선지 발견된 비문에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읽었다. 그리고 이 말은 그 ‘젊은 것’들이 다시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젊은 것’들에게 지금도 되돌려주곤 하는 말이다. 이 말처럼 자주 되풀이되는 말들 중에 하나가 ‘교육이 문제’라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거나 이 말은 되풀이 된다. 하지만 지금 교육은 ‘경제의 양극화’와 함께 이번 대선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이다. 어디에서부터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인가?
교육이 문제다. 맞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들을 돌아다니며 친구 사귈 시간도 없고 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를 부담하느라 등골이 휘어진다. 자식 교육을 위해 이민 간다는 사람도 많고, 이산가족이 되어 돈 대는 기계가 된 기러기 아빠들도 많다. 온통 난리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사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자료도 없고 내 전공도 아니어서 미흡 하겠지만, 한국교육사에서 교육이 문제가 된 시기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이 돌아가는 길이다. 그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보자.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 처음 교육이 문제가 된 시점은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던 50년대부터였다. 하지만 아직 중등교육조차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치맛바람은 소수 특권층의 문제였다.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초등교육을 마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60년대까지 대학교육은 여전히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고 상고와 육사가 가난하지만 똑똑했던 사람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교육문제는 박정희시대의 경제개발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산업화와 함께 숙련된 노동력, 각 분야의 중간 관리자 그리고 사무직 고용이 급속하게 늘었고, 정부는 부족한 학교건설 비용을 메우기 위해 중고등과정의 사립학교의 설립을 권장했다.
더 나은 학력은 더 좋은 일자리를 의미하게 되었다. 70년대부터 대학 교육은 엘리트가 되기 위한 필수과정이 되었다. 명문대학 합격률이 명문고의 상징이 되었고, 이미 말썽이 되었던 명문고 입시경쟁은 박정희 정권의 특정인맥 출신 우대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 ‘TK’나 ‘경북고-서울법대’의 엘리트코스가 정착되었다.
정치의 민주화가 진행된 80년대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경제개발의 성과를 차츰 누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고교평준화와 본고사의 폐지, 졸업정원제의 실시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엘리트 코스였던 대학교육이 대중교육화 되어가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그 이전에는 대학만 들어가면 엘리트일 수 있었지만, 80년대를 거치면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엘리트가 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대학의 서열화가 진행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대학’이 문제가 된 시기였고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이 ‘교육문제’의 주된 해결책으로 인식된 시점이었다.
대학교육이 대중화된 80년대부터 이미 엘리트들은 대학원을 가거나 해외유학을 떠나기 시작했다. 학력 인플레가 시작되었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인플레현상은 더욱 확산되었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와 함께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이 유행했고 외국에서의 어학연수나 단기 혹은 장기적인 유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던 ‘영어’구사능력이 회사의 취업기준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충격은 97년의 경제위기였다. 늘어나는 대학생의 수에 비해서 갈수록 줄어들던 취업의 문이 갑작스럽게 닫혀버렸다. 청년 실업자들과 비정규직들이 늘어났고,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능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좋은 일자리는 명문대 출신자들에게 우선 배당되었고, 명문대를 가기 위해서는 사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영어 교육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더욱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영어구사능력은 학교만이 아니라 대학졸업 이후 취업에서도, 심지어 영어를 전혀 사용할 일이 없는 곳에서도,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학력의 기준으로 격상되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어 능력의 습득은 체계적인 교육에 덧붙여 외국인들과의 잦은 접촉을 통한 반복이 필수적이다. 비싼 사교육비를 들이느니 차라리 외국에서의 교육이 선호되었고, 조기유학과 기러기 아빠들이 늘었다.
교육이 문제다. 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면 교육은 늘 문제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육문제는 교육‘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문제는 전체 사회, 보다 좁혀서는 경제와 교육이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가의 문제이고, 이는 다시 ‘엘리트 교육’과 ‘대중교육’의 경계를 어디에 설정하는가의 문제로, 그리고 다시 엘리트와 대중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의 문제로 환원된다.
덧붙이는 글 | 지난번에 쓴 글로 ‘파리유학생’이 되어버린 김정인입니다. 이제는 더 빼낼 시간이 없어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이 글은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제까지 먹은 밥값은 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참고로 저는, 비록 아직도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학생의 신분이지만, 10년이 훨씬 넘도록 프랑스 교육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홍세화 선생님의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는 칼럼을 읽고 난 후였는데 아무래도 바로잡을 것이 있어서였습니다. 미적거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마침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께서 교육관련 공약을 발표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몇 마디는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입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6개의 글로 짧게 나누어 하루에 2편씩 사흘동안 올리겠습니다. 참고로 다음은 각 편의 제목입니다.
1. 교육이 문제다?
2. 이해찬의 함께 켜져 있는 양쪽 깜박이
3. 홍세화의 프랑스식 모델, 대학평준화?
4. 이명박의 미국식 모델, 자율형 사립고?
5. 토론을 위한 전제들
6. 교육문제, 문국현이 정답이다
본문에서는 편의상 존칭을 생략하였습니다.
2007.10.23 08:33 | ⓒ 2007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