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전부인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백남식씨(53·전주시청)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이 40살 들어 나은 늦둥이 아들을 떠나 보내는 마음이 오죽하랴만 그의 표정을 보면 가장 숭고하고도 옳은 선택을 했다는 신념만은 분명한 듯 했다.
백씨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8일. 중학교 1학년(13살) 어린 나이지만 키 172cm의 건장한 체격에, 운동선수까지 제안 받을 정도로 건강했던 아들 승기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승기 군은 지금까지 큰 병 한 번 앓은 적 없었고, 병원에 입원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러던 승기군이 학교에서 오래 달리기를 하다 돌연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은 백씨에게 도저히 받아들이기도, 인정하기도 힘든 현실이었다. 하지만 백씨는 아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판단,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처음에는 일부 친지들의 반대도 있었다. 딸 셋을 낳고 8년 만에 얻은 아들을 잃었는데 장기 기증까지 한다는 것이 장남인 백씨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백남식·하정희씨 부부는 아들의 죽음으로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숭고한 믿음으로 가족들을 설득했고, 결국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공직에 있는 입장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된다는 생각도 어려운 결정을 하는데 큰 힘이 됐다.
승기군의 장기는 25일 오전 전북대병원에서 적출돼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6명의 환자들에게 전해졌다. 승기군은 간과 췌장, 신장, 각막 등을 기증했다. 이 가운데 신장은 전북대병원에서 이식 수술이 이뤄질 예정이며, 췌장과 간 등은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다른 지역 환자들에게 이식될 예정이다.
백남식씨는 “그렇게 귀하게 키운 아들이 이제는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도 “그래도 누군가에게 새 생명과 기쁨, 희망을 줄 수 있고, 또 그 사람 속에 내 아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해 우리나라 뇌사 장기 기증자수는 141명으로 2005년 91명에 비해 50명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1만8310명에 달하는 이식 대기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며, 올해 현재까지 기증자수도 100여 명에 불과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북중앙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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