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으면 바로 이렇게 박이 됩니다." 동화책에서만 보던 박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다.
송기영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에서 한바탕 출근전쟁을 벌이고 나면 '아,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실행에 옮겨지기 어렵다. 경험도 없을뿐더러 쉬 용기가 나지 않는 까닭이다.
오늘 만날 정경섭(60)씨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11년 전 귀농했다. 경험은 없었지만 용기는 있었다. 지난 10월 초 가을걷이에 한창인 정씨를 만났다. 꾹 눌러쓴 벙거지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 장화까지, 제법 농사꾼 티가 났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대기업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어느새 상무라는 자리에 올랐고 부와 지위를 얻었다.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마음 속에 응어리졌다.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꼈고 몸은 조금씩 지쳐갔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당뇨입니다."
올해는 느타리버섯이 풍년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이라 신경을 써주지 못했는데, 어른 손만하게 자랐다. 과수원에 나가 배를 몇 개 따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됐다. 오늘은 장독에 묻어둔 묵은지를 꺼내 꽁치와 함께 볶았다. 시큼한 냄새에 벌써 침이 고인다. 제각각 일터에 나가 있던 가족들이 모두 식탁 앞에 앉았다. "여보, 버섯이 풍년이야."
이 상반된 두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정경섭씨다. 97년,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했다. 반복되는 회사생활에 염증이 나서였다. 동료들은 모두 말렸다. 힘들어하는 경섭씨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오히려 그를 지지해주었다. 가족의 응원을 뒤에 업고 망설임 없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이제 우리 농사지으면서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살자." 경섭씨는 가족에게 약속했다.
제2의 고향 양수리 그는 평소 일 문제로 양수리를 지나면서 "서울에서 1시간 떨어진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하며 감탄했다. 운명이었는지, 귀농할 곳을 알아보는 중에 양수리에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과수원이 딸린 2층 집. 이곳에서 경섭씨와 가족은 새로운 삶을 일궈나가기 시작했다.
첫해, 과수원에 사과를 심었다. 가족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농약과 화학비료는 절대 쓰지 않았다. 한해 애면글면 키운 사과는 수확 때가 되자 제법 튼실해졌다. 처음부터 팔 목적이 아니었기에 도시에 사는 지인들을 불러 수확의 기쁨을 함께하며 사과를 나눠 먹었다.
이듬해에도 지인들을 불러 같은 행사를 개최했는데 어찌 알고 왔는지 지난해보다 더 많은 사람이 경섭씨의 과수원에 몰려들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수확의 기쁨을 줄 수 있어 한해 농사가 보람됐다. 모두가 웃고 즐기는 순간, 경섭씨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걸 우리 마을 전체의 축제로 만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