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만나 하나돼 하늘 품고 흐르는 강에서

[포토에세이] 두물머리의 가을

등록 2007.10.31 09:19수정 2007.11.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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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초입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두 강이 만나 한강이 되는 그 곳.
두물머리 초입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두 강이 만나 한강이 되는 그 곳.김민수
▲ 두물머리 초입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두 강이 만나 한강이 되는 그 곳. ⓒ 김민수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강이 산하를 휘휘돌고 돌아 만나는 곳이 있다. 두물이 만나 한 강이 되는 곳 두물머리, 둘이 만나 하나되어 하늘을 품고 흐르는 강이 된 것은 언제였을까.
 
저 강과 이 강이 한 강이 되고, 이 길과 저 길이 한 길이 되고, 이 산과 저 산 등성이가 만나 산맥을 이루니 이것과 저것의 경계는 없는 것이다.
 
경계없는 강을 나누고, 산을 나누고, 하늘을 나누고, 바다를 나누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저 강이 멈추고, 산이 끊어지고, 하늘이 통곡을 하고, 바다가 울부짓는다.
 
두물머리 두물머리의 상징처럼 황포돗대가 떠있다.
두물머리두물머리의 상징처럼 황포돗대가 떠있다.김민수
▲ 두물머리 두물머리의 상징처럼 황포돗대가 떠있다. ⓒ 김민수
 
둘이 만나 하나되어 하늘을 품고 흐르는 강처럼 우리도 그리해야 한다.
 
좁은 땅덩어리 나눠진 것도 부족하여 이념과 지방색으로 나뉘어져 갈등하고, 이를 부추기며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는 한, 우리는 하늘을 품고 흐르는 강을 닮을 수 없다.
 
저 강은 이 강이고, 이 강은 저 강이다. 이 강과 저 강이 다르지 않고 단지 이 강과 저 강을 구분하려고 이 강과 저 강이라 부른다. 그리고 둘이 만나면 그냥 한 강이다.
 
두물머리 느티나무에 단풍이 노랗게 들었다.
두물머리느티나무에 단풍이 노랗게 들었다.김민수
▲ 두물머리 느티나무에 단풍이 노랗게 들었다. ⓒ 김민수
 
강이 숨죽여 우는 소리를, 산이 숨죽여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다가 몸부림치는 모습을, 나무 혹은 하늘이 몸부림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파본 사람만이 아파본 만큼 위로할 수 있다. 더도 덜도 아닌 그만큼만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강의 울음소리와 산의 울음소리와 바다의 몸부림치는 모습과 나무 혹은 하늘이 무너지는 모습을 듣고 본 사람들은 강을 닮고 산을 닮고 바다를 닮고 나무 혹은 하늘을 닮는다.
 
두물머리 아침햇살에 강이 빛나고 있다.
두물머리아침햇살에 강이 빛나고 있다.김민수
▲ 두물머리 아침햇살에 강이 빛나고 있다. ⓒ 김민수
 
그래서 하늘을 품은 사람도 있는 것이고, 강을 품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멀리 작은 섬이 하나 있었다. 너무 작아 아무도 살 수 없는 곳, 그 작은 섬도 나무를 품고 있다. 나무뿐일까? 사람의 손길 닿지 않는 그 곳에서 그들은 저마다의 생을 충만하게 살아갈 것이다.
 
두물머리 두물머리에서 바라보면 작은 섬이 하나 있다.
두물머리두물머리에서 바라보면 작은 섬이 하나 있다.김민수
▲ 두물머리 두물머리에서 바라보면 작은 섬이 하나 있다. ⓒ 김민수
 
어떤 모습일까? 아, 쓰러져 가는 나무가 있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강물에 기대어 그동안의 삶을 마감할 것이다. 경쟁구조 속에서 위태위태 살아가는 군상들을 보는 듯하여 슬프다.
 
두물머리 보고 또 봐도 정겨운 모습이다.
두물머리보고 또 봐도 정겨운 모습이다.김민수
▲ 두물머리 보고 또 봐도 정겨운 모습이다. ⓒ 김민수
 
아직 지난 밤 긴 밤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강은 잔잔하다. 이렇게 평온한 아침을 맞이할 때도 있겠지만 때론 밤새 울부짓는 때도 있을 것이다. 감히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아우성치는 날, 그 날은 그들이 홀로 있고 싶은 날일 게다.
 
우리도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들도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양평 두물머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양평두물머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김민수
▲ 양평 두물머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 김민수
 
두물머리에서 나와 청평, 대성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양평의 작은 시골마을, 나무들마다 가을빛을 담고 있었다. 어디나 가을빛이 충만하다는 것도 감사하고, 가을빛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가을임에도 가을빛 한 번 느낄 겨를도 없이 지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단지 마음이 메말라서가 아니다. 허튼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만도 아니다. 가을빛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기 때문에 가을빛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양평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양평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김민수
▲ 양평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 김민수
 
내가 보고 남이 보지 못한다고 내가 보는 것 전부라고 하지 말자. 두 물이 만나 하나가 되기 전의 강, 그 강을 바라본다. 그 강도 하늘을 품고 흐르고 있었다. 하나이기 전에도 그들은 하늘을 품고 있었으니 둘이 하나가 되어서도 하늘을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혼자이기 때문에 둘이 하나가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지 말자. 수많은 잎들이 '하나 둘 셋!'하는 순간 노랑빛으로 변한 것이 아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혼자서 변했고, 그 하나하나가 만나 하나의 가을빛을 만들어낸 것이다.
 
은행잎 아이들처럼 뛰어놀고 싶다.
은행잎아이들처럼 뛰어놀고 싶다.김민수
▲ 은행잎 아이들처럼 뛰어놀고 싶다. ⓒ 김민수
 
아이처럼 뛰어놀고 싶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음은 점점 더 간절해지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인가 보다. 그래도 '싶다'는 소망이라도 내겐 소중하다. 그것마저도 없으면 삶이 참 무미건조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계단 저 계단 끝에 서면 하늘을 만질 것 같다.
계단저 계단 끝에 서면 하늘을 만질 것 같다.김민수
▲ 계단 저 계단 끝에 서면 하늘을 만질 것 같다. ⓒ 김민수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계단, 저 계단의 끝은 분명히 하늘과 맞닿아 있는데 그 곳에 서면 또 하늘은 저만치 멀어져 있다. 그렇다. 하늘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이미 맞닿아 있었다. 지금 여기에서 하늘의 뜻이 이뤄지는 것처럼 말이다.
 
저 강과 이 강이 한 강이 되고, 이 길과 저 길이 한 길이 되고, 이 산과 저 산 등성이가 만나 산맥을 이루는 것과 같은 경계 없는 삶을 살지언정, 경계 없는 강을 나누고, 산을 나누고, 하늘을 나누고, 바다를 나누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저 강을 멈추게 하고, 산허리를 끊어내고, 하늘을 통곡하게 하고, 바다를 울부짖게 하는 삶을 살지는 말아야겠다.
2007.10.31 09:19ⓒ 2007 OhmyNews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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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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