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11.07 11:14수정 2007.11.0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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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나야.”
“예, 어머니세요.”
“낼모레(음력 9월 25일)가 아범 생일인데 가지는 못하고 김치 담가놨으니 아범보고 가는 길에 들러 가라고 해라.”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김장은 물론 철따라 이것저것 골고루 김치를 담가 주시는 시어머니, 직장에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혼자 사시는 어머님께 며느리가 해다 드려야 마땅함에도 뭔가 거꾸로 된 듯한 역할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어머님 댁에 들러오라고는 했는데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에서야 거의 다 왔으니 내려오라고 전화가 왔다. 나가보니 벌써 도착을 해 차 안에서 짐꾸러미를 꺼내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몰라, 어머니가 주시는 대로 싣고 왔으니까.”
주섬주섬 엘리베이터에 옮겨 싣고 집에 가지고 들어왔다. 짐을 풀어보기 전에 어머님이 걱정 하실까봐 전화부터 드렸다.
“어머니, 아범 잘 도착했어요. 근데 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많긴…. 저녁에 맛있게들 해 먹어.”
“네, 잘 먹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게 다 뭐지?” 하며 하나하나 풀어보았다. 김치 2통, 마늘 다진 거 1통(저 많은 걸 일일이 까서 절구에 빻느라 얼마나 손이 아프셨을까?), 굴비, 몇 가지 나물, 고구마, 도토리묵, 무 등 봉지를 풀 때마다 “어멈아, 사랑한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그만 “어머니”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들만 삼형제인 집안에 맏며느리로 시집 와서 시부모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시어 기억 속에만 남아 계신 시아버님은 당신 혼자 쓰시기도 넉넉지 않았을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예쁜 옷이 눈에 띄면 사다주시곤 했다.
사실 그때는 다른 시부모님들도 다 이렇게 하시나보다 정도였지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주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두 분의 며느리 사랑이 남다르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알았어도 되돌려 드릴 생각은 못하고 그냥 받기만 했으니…. 어느새 어머님은 팔십을 바라보시고 20대에 시집 온 며느린 오십이 넘었다. 아들로 인해 맺어진 고부 간, 어머님의 성격을 반만 닮았어도 좋으련만 속 좁은 며느린 큰애를 낳았을 때 딸이라고 서운해 하시던 어머님 말씀이 가슴에 박혀 선을 그어버리곤 더 이상 다가가지 않으려 했다.
단지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하려 했을 뿐 살가운 정 한 번 드린 적이 없는데 마치 딸을 챙기는 친정 어머니마냥 뭐든 주고 싶으셔서 둘째 아들네가 사다드린 굴비까지 싸 보내신 어머니, 이 빚을 어찌 다 갚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여태껏 서운함만을 꽁하니 가슴에 묻고 살았답니다. 저도 머잖아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겠죠? 아들이 없어 며느리는 맞지 못하지만 두 사위에게 당신께 배운 대로 아낌없는 사랑을 듬뿍 주렵니다. 어머니! 제가 곰살갑지 못해 겉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저도 어머니 사랑해요.'
아마도 이 다음에 돌아가시고 안 계시면 문득문득 어머님 생각에 눈물 많이 흘릴 것 같다.
"요즘 날씨도 쌀쌀한데 기름 아끼지 마시고 따뜻하게 불 넣고 주무세요."
2007.11.07 11:14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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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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