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존재하는 것들, 겨우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들은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감각이 살아 있지 않으면 그들의 실체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아내가 고맙다. 물론 아내가 좀 더 강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먼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 숨 푹 자고 나면 몸이 거뜬해지는 그런 건강한 여자와 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아내를 위해서라도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아내와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남들처럼 체력이 강건하지는 못해도 가까운 산이나마 함께 오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내 덕에 천천한 걸음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또한 천천한 걸음으로 가을을 떠나보낼 수 있으니 또한 기쁜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문득 학창시절에 본 영화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워드워즈의 시구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되돌려지지 않는다고 해도 서러워말지어다.
오히려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얻으소서!
2007.11.11 12:13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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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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