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계회도광해군 5년(1613) 11명의 안동부 선비들이 모여 가진 계 모임을 기념한 그림이다.
장호철
광흥사가 내 흥미를 끄는 점은 이 절집에서 여러 경전들이 간행되었다는 점이다. 1999년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된 <불설대부모은중경>은 1562년(명종 17) 이 절집에서 다른 경전과 함께 간행한 것이다.
주로 산에 세워졌던 사찰은 판각용 목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등 목판 인쇄술 발달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고려의 인쇄술도 초기에는 주로 사찰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조선 중후기에는 대중들의 요구에 따라 지방사찰에서 경전을 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당시의 신앙 양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불경 외에도 고승들의 사상과 시를 담은 문집도 많았다.
불교 출판은 매우 장려되어 상업 목적의 출판이 아니었을 뿐, 유행이라고 할만큼의 다양한 책이 간행되었다. 광흥사에서 경전이 간행되었다는 것은 이 절집이 안동 지방에서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할 만한 대찰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광흥사는 광해군 5년(1613) 11명의 안동부 선비들이 모여 가진 계 모임을 기념한 그림, 임계계회도(壬癸契會圖)의 무대이기도 하다. 모임의 이름이 '임계계회'인 것은 임자(1560년)년과 계축(1561년)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여서이다. 이 계회는 무려 400여 년, 13대에 걸쳐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모임은 한 후손이 KBS-TV의 <진품명품>이란 프로그램에 이 그림의 가치 감정을 의뢰함으로써 일반에 알려졌다. ‘계’는 ‘타자와의 조화로운 삶을 중시하고 교유를 통한 인격의 성숙을 꾀한 선인들이 참여한 갖가지 사회적 모임을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신분사회의 질곡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살아온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400여 년 연면히 이어져 온 ‘우월 계급의 성찬’이나 강고한 ‘기득권의 연대’로 여겨질 수도 있지 않을까. 더구나 계회에 참여한 10개 문중(안동 권씨, 영해 박씨, 경주 최씨, 일직 손씨, 진주 하씨, 예안 이씨, 순흥 안씨, 순천 김씨, 한양 조씨, 김해 허씨)이 내로라하는 지역 명문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