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11.20 16:14수정 2007.11.20 18:07
요즘 경복궁은 광화문을 비롯해 궁내 곳곳에서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옛 광화문은 이미 철거된 상태로 고증을 거쳐 원상태로 복원될 예정이고, 현재 경회루는 내년 봄 재개장을 앞두고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10월 20일엔 100여년 만에 '경복궁내 또 다른 궁'으로 알려진 건청궁이 복원된 이후 일반시민에게 처음 공개되었다. 인터넷 사전예약을 통해 11월 19일 현재까지 한 달 동안 모두 4100여명의 일반시민들이 건청궁을 관람했다.
보통 주말과 휴일의 관람 일정에는 사전예약분이 일찌감치 마감되고 있다. 휴관일인 매주 화요일을 제외한 주중엔 다소 여유롭게 건청궁 관람을 신청할 수 있다.
건청궁은 오는 12월 31일까지 하루 6회, 매회 30명씩 제한적으로 관람이 허용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만 건청궁 관람이 허용된다. 현재는 기존 경복궁 입장료만 내면 사전예약자에 한해 선착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건청궁은 경복궁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향원정(香遠亭)과 신무문(神武門) 사이에 복원된 건물로 전통 한옥의 옛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건청궁은 전통적인 궁궐의 침전양식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지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건청궁은 민가의 사랑채에 해당하는 장안당(長安堂, 고종의 거처), 안채에 해당하는 곤녕합(坤寧閤, 명성왕후의 거처), 기타 행각과 별채 등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인 규모는 당시 양반가옥 상한선이었던 99칸의 2.5배 되는 250칸 규모다.
고종은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과 향원정 사이에 건청궁을 건립해 명성왕후와 함께 기거했다. 이후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온 이후 1896년 ‘아관파천’ 때까지 10여년간 이곳에서 지냈다.
건청궁은 188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가 가설된 곳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보다 더 앞서 전기가 가설되었다는 건청궁은 고종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청궁내 장안당 북행각에는 당시 발전시설을 갖춘 전기실로 사용되던 행각을 그대로 복원해 두었다.
무엇보다도 건청궁은 명성왕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 곳으로 비극적인 역사현장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1895년 곤녕합의 옥호루(玉壺樓)에서 시해된 명성왕후의 시신은 청휘문을 통해 바로 옆에 있는 '녹산(鹿山)'에서 불에 태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곤녕합 앞마당을 통과해 동쪽 행각 사이로 놓여 있는 청휘문을 통해 연결된 녹산은 예전에는 사슴들이 뛰어 놀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번 건청궁 복원, 개방과 함께 일반인들의 관람동선에 포함되었다.
이번에 복원된 건청궁에서 복원이 되지 않은 채 공터로 남아 있는 곳이 있다. 관문각지(觀文閣址)로 고종 10년(1873년)에 건립된 관문각 터이다. 고종 28년 (1891년) 2월에 러시아 건축가 세레친 사바틴(A.S.Sabatine)과 친군영에 의해 2층 서양식 건물로 개축되었는데 최초의 양관(洋館)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종이 거처하던 장안당의 추수부용루에 올라서면 담 너머로 향원정이 눈에 들어온다. 담 안쪽으로는 평소 고종이 좋아했다던 감, ‘고종시’ 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점차 꺼져가는 대한제국의 명멸을 지켜보던 고종의 자취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사전예약에 따라 건청궁을 관람하는 시간은 약 45분 정도. 250칸 규모의 건청궁을 돌면서 주로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안내자를 따르다 보면, 상대적으로 한옥건축의 미를 제대로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만약 건축물에 관심이 많아 한옥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는 관람객은 한두 시간의 관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몇 차례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 건청궁을 관람한 후엔 바로 옆에 있는 집옥재(集玉齋)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고종이 외국의 사신들을 접견하거나 서고로 사용되던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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