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해석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BBK 투자자문>
2000년 2월 9일
이명박 회장님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709-4
영등포빌딩 1층 동아시아연구원
답신-법인 설립 및 자본금 관련 사항들
이명박 회장님
행복한 새해 잘 맞이하셨습니까? 새해 황금 용띠 해가 회장님께 건강과 번영을 가져다 주길 바랍니다. 몇가지 진행 사항들을 추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월요일에 김백준 부회장님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김백준 부회장님은 김희인 변호사님과 만나 법인 설립과 주주 계약에 대한 세밀한 사항들을 논의했습니다. 김백준 부회장님이 말한 모든 발언들이 취합됐고, 법인 설립에 관한 사항 문서는 김희인 변호사님이 회장님의 검토를 위해 완성할 것입니다. 취합된 주요 발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머지 자잘한 사항들도 포함됩니다)
1. 회사 이름은 "공란"으로 한다.
2. 직원들에 대한 최대 스톡옵션은 30%로 하고, 개인당 한계는 10%로 정했습니다.
3. 초기에 원화 200억원은 이명박 회장님이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4. 이사회는 이명박 회장님, 혹은 이명박 회장님이 지명한 자가 참석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이 사항들과 함께, 다음 사항들도 승인해주셨으면 합니다.
1. 자본금 납입 일정은 이명박 회장님이 정해주셔야 하며, 2000년 2월 14일 경으로 예상됩니다.
2. 이명박 회장님께서 하시는 초기 투자 후에, 에리카 김이 뒤이어 투자할 것입니다.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김경준
'메모'의 해석은 <연합뉴스> 21일자 기사 <한, `김경준 사업제안' 메모.편지 공개>에 잘 드러납니다.
당 클린정치위원회가 이날 공개한 김씨의 친필메모는 `2/7 Meeting(만남)' 'w/ 김백준 회장님'으로 시작한다. 지난 2000년 2월 7일 김씨가 이 후보의 최측근인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와 만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업체 인터넷 도메인명을 `ebank-Korea.co.kr' `ebank-Korea.com'으로 정할 예정이며 `이명박씨 also wants to be 대표이사'(이명박씨도 대표이사가 되길 원한다)라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아울러 이 후보가 초기자본금 20억원을 지급하며 이사회는 김씨와 이 후보나 대리인이 참석해야 유효하다는 등의 구체적인 사업계약 내용도 적혀있다.
이 메모와 편지에 대한 한나라당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1. 김경준씨는 "이명박 후보를 처음 만난 시기는 1999년 초였고 이 후보의 사업 제안에 따라 다니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동업자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습니다.
2. 하지만 한나라당은 공개한 메모를 근거로 "거짓임이 드러난다"고 지적합니다.
3. 고승덕 변호사는 "이 메모는 LKE 뱅크 설립을 위한 최초의 정식미팅을 적은 것"으로써, "사업제안을 이명박 후보가 아닌 김경준씨가 먼저 주도했음을 입증하는 메모"라고 주장합니다.
4. 또한 편지를 근거로, "김경준씨의 주장대로 1999년부터 이명박 후보와 BBK를 같이 운영하면서 사업파트너 관계였다면 굳이 이 편지를 보냈을 이유가 없는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당시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지 않았고 전화도 쉽게 할 수 없는 사이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5. 고승덕 변호사는 특히 메모 속의 "이명박씨 also wants to be 대표이사"라는 문구를 강조하며, "당초 김경준씨 혼자 대표이사를 하려다가 이명박 후보를 추가한 것으로 사실상 실무책임을 김씨가 지고 있었음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6. 뿐만 아니라, 이명박 후보가 LKE 뱅크를 창립해 김경준씨에게 공동대표를 맡긴 시점이 2000년 2월 18일임을 가정하면, 처음 만난 뒤 한달 남짓 만에 회사의 공동대표를 맡기고 수십억원대의 돈거래와 수백억원의 돈 투입을 요구했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고승덕 변호사는 "비즈니스 세계의 달인들끼리는 좀 다를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7. 한나라당은 이를 근거로 "결국 이명박 후보는 BBK와 무관함이 증명됐다"고 정리합니다.
과연 깨끗하게 해명된 것일까
<연합뉴스>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합니다.
우선 LKe뱅크의 설립일자가 문제. 이 후보측 주장에 따르면 이 후보는 지난 1999년 12월말 미국에서 돌아왔으며 2000년 2월 7일 대리인(김백준씨)을 통해 김씨와 처음 접촉했는 데 그로부터 열흘 남짓 지난 같은 달 18일 LKe뱅크를 설립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이날 공개한 쪽지에는 '2/7'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을 뿐 연도는 나와있지 않아 첫만남이 1999년 2월 7일이며 그 때부터 사업관계를 맺어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에 대해 홍준표 당 클린정치위원장은 "1999년 당시 이 후보와 함께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이 후보가) 한국으로 들어간 일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도 <이명박과 김경준, 만난 지 한달만에 회사 설립?>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2월9일 김경준이 이 후보에게 보낸 편지의 제목(Re : Articles of Incorporation and Capitalitzation)도 논란거리다. 한나라당은 이중 'Re:'를 "~에 대하여"(Regarding)로 해석하는데, '답신'(Reply)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후자로 해석할 경우 이 후보가 김경준씨에게 용건이 있어서 먼저 편지를 보냈고, 김씨는 답장을 보낸 것이 된다.
2월 9일 편지에 있는 'Just wanted to update you'라는 구절도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상당 수준의 대화가 오간 게 아니냐는 추정을 낳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김경준이 한국에 남기고 간 편지인데, 왜 그렇게 썼는지는 모른다"고 얼버무리고 있다.
설령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2000년 1월 중순 김백준과 김경준이 처음 접촉하고 2월 7일 사업 메모를 교환했다고 해도 2월 18일 자본금 20억원의 LKe뱅크를 설립하는 게 가능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김경준은 2월 9일 편지에서 이 후보에게 "내일(2월 10일) 만나자"고 제안했다. 2월 10일 회동이 순조롭게 이뤄졌다면 이 후보는 8일 뒤 LKe뱅크를 공동 설립한 셈이다. 그러나 사업이라면 잔뼈가 굵은 이 후보가 김씨의 어떤 점을 보고 20억원의 거금을 선뜻 출자했을 지 의문이다.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건설통(이명박)과 금융통(김경준)이 만났으니 (회사를 신속하게 세우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다. 오히려 2000년 이전에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상당 수준의 교감이 있었기에 2000년 2월 LKe뱅크가 설립된된 게 아니냐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나라당이 '2000년'을 강조하는 이유는, BBK투자자문이 1999년 4월에 창업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연도상의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BBK'와 '이명박 후보'와의 관계가 무관한 것임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개된 편지·메모와 한나라당의 해명은 <연합뉴스> 측 문제제기 외에도, 납득이 어려운 주장들이 많습니다.
일단, 지금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바로 "이명박씨 also want to be 대표이사", 고승덕 변호사는 ""당초 김씨가 혼자 대표이사를 하려다 이 후보를 추가한 것으로 사실상 실무책임을 김씨가 지고 있었음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해명입니다.
"이명박씨 also want to be 대표이사"는 표현 그대로 "이명박씨가 대표이사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고승덕 변호사의 주장이 맞으려면 메모에는 "(I) want 이명박씨 to be 대표이사"가 돼야 합니다. 즉, "(나는) 이명박씨가 대표이사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죠. 그야말로 기초적인 문제에서 벌써 의문을 제공해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편지 어조를 잘 보면 대단히 익숙한 사람에게 보내는 듯한 인사와 안부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내용 자체도 뭔가 논의가 깊게 이뤄진 듯한 분위기. 편지에는 I와 같은 주어도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잘 보시면 편지 속에는 'update'라는 말이 보입니다. '처음 접촉해서' 'update'를 이야기하고 200억원을 대뜸 투입해달라는 것 역시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봐도,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깊이 논의해온 과정이 잘 드러납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 편지와 메모는 한나라당의 입장을 드러내고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명박 후보, 왜 '자필 서명 요구' 거부하나
검찰은 김경준씨가 제출했다는 '이면계약서'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이명박 후보의 친필서명을 요구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이명박 후보의 친필서명을 받아야 수사를 하든지 말든지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그 이유를 들어보니, "검찰로부터 공식적으로 요청받은 바도 없지만, 검찰이 그런 요구를 한다면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 개시로 파악하면서 응할 수 없다는 원칙을 밝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친필서명 요구를 무리한 요구'라고 주장합니다.
왜 '무리한 요구'냐면, "그동안 모든 관계서류를 제출하고 참고인을 출석시키는 등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지금까지 제출한 서류를 검토한다면 서명 요구의 필요성이 없다. 대선 직전에 야당 후보를 수사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으므로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상한 것은, 왜 한나라당에 유리하지 않은 정황에 대해서는 늘상 '김대업', '정치적 악용', '야당에 대한 탄압'의 표현만 반복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면계약서의 진위여부, 이명박 후보의 필체분석이 핵심입니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이명박 후보가 메모지에 서명 한번만 하고 검찰에 제출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하면, 모든 정황이 다 밝혀지고 "김경준=제2의 김대업"임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을텐데,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웹상에서 충분히 공개되고 돌아다니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친필서명 이미지를 올려보도록하겠습니다. 검찰은 이 이미지만 참고해도 수사에 도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치밀한 근거 제시할 수 있어야
LA에서 있었던 김경준씨의 처 이보라씨의 기자회견에서도 사실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물론 '이면계약서'의 사본이 공개됐다고는 하나, 엄밀히 말해 '공개'라고 하기도 어려운 수준입니다. 게다가, 직접 회견하겠다던 에리카 김 변호사도 나오지 않았죠. 무슨 계산, 그리고 어떤 이후가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 상황에서, 한나라당 역시 '반전'을 시도하고자 편지와 메모를 공개했지만, 어설픈 영어해석으로 인해 의문점만 더 확산시켜놓은 꼴이 됐습니다. 수사에 가장 확실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친필서명'조차도 '정치적 탄압'이라는 이유로 거부해버렸습니다. 의혹을 돌파하겠다는 것인지, 소문을 더욱 확산시키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갑니다.
정말로 BBK와 이명박 후보가 서로 무관한 것이라면, '사기남매'와 '김대업'이라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전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어리석은 판단으로는, 이명박 후보의 친필서명만큼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근거도 없어 보입니다. 한나라당의 보다 확실한 판단과 해명이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1.22 09:45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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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고승덕 변호사, '영어 공부'부터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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