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고르지 않다
11월 4일(일), 용산역에서 9시 55분 출발하는 광주행 1111호 새마을호에 올랐다. 객차 정원은 63명인데 7명밖에 승차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부산행 KTX호의 승차율도 10%를 넘어 보이지 않았다. 여행 비수기라 그럴 테지만 엄청난 자원의 낭비가 아닌가. 수원을 지나자 그제야 반 정도 좌석이 찼다. 해외를 다녀보면 우리나라 대중교통처럼 잘 연결되고 쾌적한 나라는 드물다. 이런 좋은 여건의 대중교통이 적자로 대폭 줄어들까 염려스럽다.
10시 45분, 평택역을 출발하다. 그제야 시야에 드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서울에서 평택까지는 철도연변이 거의 건물로 가렸다. 꼭 보름 만에 같은 길을 달리는 셈인데 그새 황금들판이 가을걷이로 들판은 텅 비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들판을 채웠던 곡식들이 모두 거둬지고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텅 빈 들판이 썰렁해 보이지만, 다가올 겨울에도 들판이 가득 차 있다고 가정해 보면 그 풍경이 더 더욱 을씨년스러울 것 같다.
자연은 일 년에 한 번씩 가진 것을 모두 비운다. 이것이 대자연의 순리인가 보다. 사람도 이따금 한 번씩 비워야 건강하게 사는 비결일 게다. 비워버릴 때는 가재도구와 같은 물질과 그동안 쌓였던 여러 잡념의 찌꺼기도 같이 떨쳐버려야 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산다. 친구 부인이 서울에서 남편 직장 관계로 지방으로 내려간 뒤 아이들 때문에 두 곳 살림을 하다가, 최근에 남편 퇴임으로 다시 서울로 살림을 합쳤다고 했다. 시골을 떠날 때는 그곳의 살림은 버리다시피 떠나왔는데도 사는 데 전혀 불편치 않다면서 그동안 그 가재도구에 골몰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얘기를 하였다.
나도 서울에서 문패를 달고 30여 년 동안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고 한 집에서 살다가 몇 해 전 집이 너무 낡아서 대대적으로 보수를 했다. 그때 다락방에서 나온 가재도구가 무척 많았다. 누구네 개업 기념으로 받은 그릇이나 소품, 그리고 그때그때 버리기에 아까워서 갈무리한 가재도구들이었다. 그것들을 빈 터에 쌓아두었다가 미화원에게 웃돈을 드리고 몽땅 치워버렸다.
살림살이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올 초 미국에서 머무를 때 살펴보니, 미국사람들 가운데 네댓 사람에 한 사람 꼴은 이상 비만자였다. 어떤 이는 200킬로그램이나 될 정도로 자기 몸도 주체치 못했다. 이런 비만이 이제 우리나라에까지 옮아왔다.
세상 참 고르지 않다. 몇 해 전, 중국 선양의 어둑한 밤길에서 누군가 우리 일행의 앞길을 막았다.
“선생님들, 남조선에서 오셨어요?”
15세가량의 깡마른 소년이었다. 그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었다.
“저는 북조선에서 온 꽃제비예요.”
소년의 눈빛이 너무나 애잔했다. 우리 일행은 주머니를 뒤져 몇 푼을 그 소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지구촌 한 곳에서는 비만으로 신음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식량난으로 굶주리고 있다.
그런데도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려고 아귀다툼이다. 제 몸의 체중도 주체치 못하고 헉헉거리면서 깡마른 소년의 쪽박까지 깨트리려고 한다.
가사문학의 고장, 창평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새 열차는 정읍역에 닿았다. 기특하게도 한옥역사다. 곰곰 살펴보니 시멘트에 양기와를 올려 겉모양만 한식이었지만 그래도 옛 것을 지키려는 흔적이 보여 반가웠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대단히 불만인 것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온통 고층 아파트로 뒤덮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야 땅값이 비싸 고층으로 지을 수밖에 없는 점이 이해가 가지만 요즘은 내가 사는 강원 산골조차도 고층아파트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다 버려 여간 볼썽사나운 게 아니다.
13시 59분, 새마을 열차는 정시에 광주역 플랫폼에 닿았다. 우리나라도 이제 교통으로 볼 때는 선진국이다. 여행을 해 보면 선진국일수록 일분일초도 틀리지 않게 목적지에 조용히 도착을 한다.
대합실에서 고영준 선생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웃 고태석 선생과 동행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제5회 창평 전통 음식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숙소에다 여장을 푼 후 곧장 축제장인 장터마을로 갔다. <오마이뉴스> 기자로 창평지킴이 고병하 선생님(광주 봉주 초등학교)이 반겨 맞아 주셨다. 세 분 모두 제봉 고경명 선생 후손으로 한 집안이었다.
가사문학의 고장인 창평은 숱한 인물을 배출하면서도 보수와 진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바, 그 원인은 모두가 제봉 의병장의 제사를 모시는 장흥 고씨 집안의 정 때문이라고 세 사람은 은근히 의병의 맥을 이어온 집안자랑을 했다.
창평 명물 장터국밥을 먹은 뒤 <한옥에서>라는 한옥에 들려 녹차에, 매화차에, 맨드라미꽃차에, 국화차 등 그윽한 차를 하현달이 떠오를 때까지 마신 뒤 숙소로 돌아왔다.
부끄러움에서 출발한 의병 연구
11월 5일(월). 나는 답사기간에는 숙소에서 일어나면 커튼을 열어젖히는 게 습관이 되었다. 6시, 커튼을 걷자 날씨가 아주 쾌청했다. 일기예보도 포근하다고 한다. 오늘 일정을 그리면서 취재인물들 기록을 살피고는 짐을 쌌다. 이번에는 노트북은 물론 스캐너까지 가방에 넣어왔기에 만만치 않다.
의병 후손들이 간직하는 귀한 문서나 사진이 나오면 염치없이 빌려 달라고 떼를 쓸 수야 없지 않은가. 카메라 녹음기 취재수첩 등 장비를 다 챙기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고영준 선생이 숙소 문을 두드렸다. 고태석 선생도 동행을 자청했다.
10시, 주암휴게소에서 늦은 아침을 들고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지리산 일대의 단풍이 절정이었다. 금수강산을 지켜주신 조상님이 얼마나 고마운가. 섬진강에 햇살이 비치자 더욱 눈이 부시다. 10시 50분 순천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2호관 514호 홍영기 교수 연구실 문을 두드리자 홍 교수가 빠끔히 문을 열었다.
50대 초반임에도 10대 소년 마냥 얼굴이 발그레 물들었다. 우리를 위하여 녹차를 끓이던 중이었다. 연구실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홍 교수와 대담을 나눴다.
- 역사의 전공분야는 대단히 넓은데 왜 하필 호남의병을 전공하셨습니까?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은사님의 영향으로 고대사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대학원을 진학하면서도 고대사로 결심을 굳혔는데 은사님이 다른 대학으로 옮기시더군요. 저는 국립사범대학을 졸업하였기에 군에서 제대한 뒤 곧장 교사 발령을 보성 문덕중학교(현재는 폐교)로 받았습니다.
그때는 보훈대상자라고 하지 않고 원호대상자라고 하여 조사를 하는데, 제 반의 한 학생이 원호대상자였습니다. 그 학생에게 누구 때문에 원호대상자가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증조할아버님이 의병장 ‘염재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그때는 그분을 잘 몰랐습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내 고장 의병장을 모르는 게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나중에야 그분이 안 담살이(머슴) 의병부대의 염재보 부대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때의 부끄러움이 제 전공의 방향을 정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동지를 만난 듯, 더욱 반가웠다. 의(義)의 출발은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내 고장 출신의 왕산 의병장도 모른 채 50여 년을 살았던 내가 하얼빈에서 그 사실을 알고서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 ‘홍영기 교수의 역사 강의’를 보면 백낙구 의병장이 맹인이라고 나오는데, 정말 그분은 맹인이었습니까?
“사실 저도 문헌을 들추면서 그런 사실을 알고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백낙구 의병장은 처음부터 맹인이 아니라 의병 활동 중 동학농민혁명 이후 악성 눈병에 걸려 시력을 잃었습니다. 보통사람이라면 대부분 의병 활동을 포기할 텐데 그분은 불굴의 의지로 일제에 항쟁하다가 장렬히 전사하셨습니다.”
순간 나는 눈을 감고 묵념을 드렸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내가 감히 그릴 수 없는 영웅이시다. 일제 강점하 두 눈을 뜨고 산 게 부끄럽지 아니한가.
친일한 이들이여, 맹인 백낙구 의병장 앞에서는 그대들의 어떠한 변명도 구차하지 아니한가.
2007.11.26 10:07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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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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