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살면 된다?

<그게 정말 다 내 탓(21)

등록 2007.12.01 12:17수정 2007.12.0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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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서 갈 필요가 있지, 공무원이 되겠다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기사를 보니 이명박 후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왜 다들 그런 소극적 생각에 매달릴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취업난은 해가 가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도전적인 일자리를 찾아가지 않는 젊은이 탓이라는 어른들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더 나은 기회를 찾고자 해외로 나온 한 젊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어떻게든 삶에 도전하려는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반성하고 도와주어야 할 부분은 없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1부 <그래 다 내 탓이다, 하지만>에 이어 2부 <정말 다 내 탓?>를 연재하고자 한다. 부디 나무를 통해 숲을 그릴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기자 주>

 

여자 원장은 억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남아 있는 선생들에게 다소 격앙되게 물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아까도 밥을 먹다가 밥이 안 넘어갑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

 

학원과 이미 감정이 많이 상한 상태이긴 했지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울화통이 터질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남아 있는 선생들 역시 그리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고, 더구나 원장에게 자기 잘못도 아닌 그 선생 잘못 때문에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는 확실히 모든 사실이 밝혀진 것이 아니었다.

 

"원장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을 겪으면 저희도 기분이 좋지 않거든요.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나가버리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남은 강의를 책임져야 합니다. 당연히 힘듭니다. 그리고 인조인간 선생 아버님이 다른 병원에 있을 수도 있고 하니 좀 더 기다려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도 원장의 물음에 답을 못하자 학원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외계인 선생이 나서서 답변을 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여자 원장은 그 말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어 보였다. 여자 원장 입장에서 보자면 남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치솟아 오르는 화를 억누를 길이 분명 없었을 것이다. 그 반면 남아 있는 선생들에게는 점차 배신감이 몰려오고 있었다.

 

"설마 아버지를 팔아서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모르죠.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도망친 것일 수도 있죠."

 

그 날 밤 외계인 선생과 나는 숙소에서 인조인간 선생이 정말 그런 연극을 꾸며 한국으로 돌아간 것일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계인 선생은 '설마'라는 뜻을 보였지만 어쩐지 나는 '진짜' 연극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가지 선생이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나와 외계인 선생을 불렀다.

 

"인조인간 선생님한테 전화 왔었는데요, 정말 미안하다고 그러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썩소'가 절로 지어졌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인조인간 선생이 내게 했던 얘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내가 가르치는 애들이 선생님 정 붙일 만하면 가고 정 붙일 만하면 가고 그러면 어떡해요? 인조인간 선생님 가시면 저희들 학원 안 다녀요 이러는 거예요. 이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참 좋은 거 있죠."

 

분명 아이들이 자기를 믿고 따라준 것이 기쁘고 고맙다고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버지가 아프다는 거짓 핑계를 대고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제야 단지 학원과 고용된 선생의 관계보다 아이를 두고 벌이는 학원과 선생들의 전쟁이 눈에 보였다.

 

그래, 솔직히 인정한다. 아직도 나는 학원보다는 선생들 입장에 더 동조하고 싶다. 하지만 여자 선생들이 최근 벌였던 말없이 학원을 나가는 등의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분명 책임감 없는 행동이었다. 그들보다 일찍 일을 시작한 나 역시 학원을 그만두고 싶고, 대판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학원에 퇴직금 명목으로 적립된 돈을 온전히 받고 싶다는 생각에 싸움을 피한 부분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했다.

 

그러나 그보다 그런 식으로 학원과 등 돌리면 분명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더구나 국어는 나 이외에 다른 선생이 없었기에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사라져버리면 학원뿐 아니라 애꿎은 아이들도 오랜 시간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지금껏 학원에 대해 가졌던 섭섭함만큼이나 선생들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답답함도 커져갔다.

 

"인조인간 선생이 그런 방법 아니면 나갈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랬다네요. 선생님들한테 말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

 

가지 선생이 인조인간 선생이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다 하는 말을 듣자 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수 천 수만 가지의 생각이 다 떠오른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대체 학원에 어떻게 말했길래 학원이 별 말 없이 한국에 보내줬을까요?"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순순히 학원에서 보내줬을까 하는 점이다. 자세히 알아보니 학원에서 인조인간 선생을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놓아준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건으로 학원과 선생들 간의 대화 통로가 원활하지 못해 선생들이 잘못 이해한 거였다.

 

실상은 인조인간 선생이 아버지께서 아프시니 잠시 한국에 가서 일단 병세를 보고 곧 돌아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조인간 선생은 그것을 다른 선생들에게 한국으로 아주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이고, 심지어 남아 있는 선생에게 남은 짐을 붙여 달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잠시 다녀오는 것인데 다 들고 나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할 것이고, 학원도 이상하게 생각할 터 그런 묘수를 생각해낸 모양이었다.

 

남은 짐을 붙여 달라고 부탁 받았던 선생님의 배신감이 얼마나 클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전에 학원과 안 좋은 결말을 맺었던 선생들의 경우 무조건 난 선생 편에 서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인조인간 선생 편을 들 수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단지 자기 편의만을 위해 자기 이익만을 위해 주변 사람 모두를 속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조인간 선생은 학원에서 방학 끝나고 수고비 명목으로 보너스까지 받았다는 것이었다. 학원에서 인조인간 선생에게 주면서 다른 선생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겠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법 아니던가.

 

학원에서 학원 나름대로 배려까지 해주었는데 학원은 물론 다른 선생들까지 자기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구로 이용한 셈이었다. 배신감이 들다 못해 슬펐다.

 

그리고 그 선생의 그런 행위는 결국 학원과 그 때까지 일하고 있던 선생 사이에 정말로 깨기 힘든 단절의 벽을 만들어 버렸다. 친한 사이에서도 오해가 생기는 법인데 단절의 벽으로 가로막힌 학원과 선생들 사이라면 쌓이지 않을 오해도 쌓일 가능성이 높은 법이었다.

 

내가 처음 학원에 와서 원장과 실장, 다른 선생들과 같이 웃으면서 잔을 부딪치며 웃던 그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학원과 선생들 간의 사이는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21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위에 나온 지명 및 인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2007.12.01 12:17ⓒ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위에 나온 지명 및 인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청년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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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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