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찾아 중랑천을 따라 걷다

등록 2007.12.03 08:41수정 2007.12.0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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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냥터는 중랑천. 충전기에 꽂혀있는 명함크기만한 디카와 핸드폰을 챙겨서 점퍼주머니 이 쪽 저 쪽에 나눠 넣고 발편한 등산화를 꺼내 신고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전거 전용도로의 좁다란 왕복선엔 자전거와 롤러브레이드가 사람들 사이사이를 비켜가며 씽~씽~ 잘도 달린다.

길 옆 자연학습장엔 이름 모를 농작물이 두 차례 내린 눈에도 끄떡없이 마냥 버틸 것처럼 푸르름을 뽐내고, 물 위엔 몸집이 작고 병아리처럼 동글동글 목이 짧은 흰뺨검둥오리 떼가 무리 지어 물 속 깊숙이 머리를 묻고 물고기를 낚는 모양이다.

새들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습성이 있는지 저만치 떨어진 곳에는 고방오리들이 제철을 만난 듯 물살을 가르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금슬 좋은 중년부부의 모습을 닮은 고방오리
금슬 좋은 중년부부의 모습을 닮은 고방오리김정애

난 사냥감을 발견한 포수처럼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한 쌍의 고방오리에게 시선이 멈춘다. 살금살금 숨을 죽이고 조준 그리고 발사~  찰칵~!  금슬 좋은 중년부부의 모습을 닮은 고방오리의 다정한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또 무엇이 있나 두리번거리며 발길을 옮겨본다. 저만치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아가씨의 모습도 놓칠세라 줌으로 당겨 찰칵~! 흐르는 물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포클레인 두 대가 사이좋게 하천 제방공사를 하고 있는 광경도 눈에 들어온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나온 아가씨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나온 아가씨김정애

 포크레인 두 대가 사이좋게 제방공사를 하고 있다.
포크레인 두 대가 사이좋게 제방공사를 하고 있다. 김정애

저 멀리 수락산 중턱에 세워진 송전탑이 평소엔 산의 경관을 해치는 이물처럼 느껴지더니 오늘은 어느 예술가가 설치해 놓은 조형물처럼 꽤 멋스러워 보인다.

 수락산 중턱에 송전탑, 어느 예술가가 설치해 놓은 조형물처럼 멋스러워 보인다.
수락산 중턱에 송전탑, 어느 예술가가 설치해 놓은 조형물처럼 멋스러워 보인다.김정애

문득 원효스님의 ‘一切唯心造’란 말이 떠올랐다. 그가 당나라에 유학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숲 속 무덤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잠결에 몹시 갈증이 나 바가지에 담긴 물을 달게 마시고는 다시 잠에 빠진다.


그런데 이튿날 깨어보니 그 물은 바로 해골바가지 속에 고여 있는 물이었다. 순간 갑자기 구역질이 나면서 쓴물까지 다 토해내며 깨닫게 된다. 간밤에 달게 마신 물이나 지금의 물이 하나도 다를 게 없는데 더럽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 마음의 작용임을. 지금 이 느낌도 바로 그 거였다.

나만큼이나 추위를 타시는지 완전무장을 하고 나오신 노부부의 느릿하면서도 당당한 뒷모습에서 풍성한 자식농사와 겨울채비를 다 끝낸 듯한 여유로움이 배어나온다.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겨울채비를 다 끝낸 듯 여유로움이 배어나온다.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겨울채비를 다 끝낸 듯 여유로움이 배어나온다. 김정애

온 길을 돌아보니 꽤 먼 거리를 와 버렸다. 손도 시리고 하천바람의 차가움이 뺨에 닿는다. 춥기도 하거니와 다시 되돌아 갈 엄두가 나질 않아 대로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여학생의 움츠린 어깨가 더 춥게 느껴진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아 디카에 담긴 사진을 보면서 이것을 글감으로 기사를 쓸 생각을 하니 흡족한 마음에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하교길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학생 혼자가 아닌 둘이라서 더 보기가 좋다.
하교길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학생 혼자가 아닌 둘이라서 더 보기가 좋다. 김정애

요리사가 여러 가지 식재료를 손질해 갖은양념으로 맛을 내고 예쁜 그릇에 담아 손님 앞에 내놓고 음식에 대한 평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쓸 만한 사진을 선별하여 크기를 조절하고 그에 맞는 스토리를 전개, 수차례의 퇴고를 거처 송고를 한 다음 편집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사로 태어났을 때의 신선한 기쁨은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이 되어 또 다른 글감을 찾아 나서게 된다.  
#중랑천 #고방오리 #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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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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