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고서점>을 찾아와 책 여섯 권을 고른 뒤 책값을 셈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책값 흥정을 합니다. 아니, 흥정이라기보다 윽박지름이랄까요. 당신이 주고 싶은 만큼만 받으라는.
지긋한 나이만큼이나 지긋이 책을 살피고, 지긋이 책값을 보듬으며, 지긋이 헌책방 일꾼을 대접해 주면 더 좋을 텐데. 어르신께서는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많고 많은 책을 사서 읽고 간수하고 나누기도 하셨을 텐데, 책 하나 싸게 더 사서 한 권 더 읽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거나 반갑거나 좋을까요.
‘아이고 배야’ 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책방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영수증 처리할 일이 있고, 그동안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책방 살림을 조금이나마 추스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눈길로 <고서점> 아저씨를 바라보고 걱정을 합니다만, 아저씨가 얼른 가게 문을 닫고 들어가 쉬는 길밖에 없는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밀려’서 이렇게 지키고 있으니…….
몸이 아프면 다른 사람 앞에서 쉬 짜증을 부릴 수도 있어서, 책값으로 윽박지르는 얄궂은 손님을 내쫓을 수도 있으련만, 끝까지 낮은 말씨로 나이든 어르신하고 마주합니다. 어르신께서는, 돈이 아닌 책을 바란다면 더는 자기 윽박지름에 매이지 말아야겠지요. 책값이 자기로서는 마땅해 보이지 않는다면, 얌전히 놓고 다른 책방으로 가면 됩니다.
다른 책방에서 당신이 바라는 책값대로 팔겠다고 하면 그곳에서 사면 됩니다. 그래, 그러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헌책이 새책처럼 ‘책손이 바라는 대로 툭툭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요, 헌책방 일꾼이라고 해서 샛장수한테 헐값으로만 사들일 수 있겠습니까. 함께 살고 서로 사는 세상인데, 책 하나 간수하고 다루는 사람들 삶을 조금 더 붙안거나 껴안아 주면 안 될까요.
실랑이 소리를 듣다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일본 손바닥책 두 권을 봅니다. <永田一○-海釣り>(保育社,1966)와 <岩城もと子-京の店>(保育社,1976). 바다낚시 이야기도 이렇게 묶어낼 수 있음을 보고, 일본 도쿄에 자리한 오래된 가게들 이야기도 이처럼 엮어낼 수 있음을 봅니다. 오래된 가게라고 모든 곳이 값어치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래도록 가게를 이어갈 만한 무엇인가 있으며, 사람들이 대물림하면서 가게를 지켜갈 만한 무엇인가 있겠지요.
이렇게 가게 하나 보듬는 마음이 있고, 바라보는 눈썰미가 있으며, 껴안는 몸뚱이가 있습니다. 문득, 우리들은 어떤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네 가게는 얼마나 한 자리에서 고이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네 가게는 얼마나 자기 발자취를 소중히 다독이면서 고마워하고 있는가요.
<김병걸-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창작과비평사,1994)이라는 수필모음을 봅니다. 김병걸 님 당신 삶을 찬찬히 돌아보며 쓴 자서전입니다.
.. 흑석동에서 나는 차마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그리고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민족적인 비극의 현장을 목격했다. 피난갔던 서울 시민들이 흑성동 일대에 파리떼처럼 모여들었다. 서울은 수복되었으나 아직은 도강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피난민들에게 밀어닥친 큰 문제는 추위와 당장 하루의 끼니를 이어가야 하는 식량 문제였다. 전선에서 결코 멀다고 볼 수 없는 지역이라서 정부의 식량배급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다. 피난민 중에는 남편을 잃었거나 남편과 헤어진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남편이 없는 여성들이 당장의 아사를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외국군인들에게 몸을 파는 것밖에 없다. 창부도 아닌 여인들이 몸을 판다는 건 바로 삶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동물적인 생명을 건지기 위해선 그 길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이 전쟁이 강요한 또 하나의 처절한 비극이었다. 그들은 추위와 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미제 담요 한 장으로 외국군인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정조를 헐값으로 팔아야만 했다. 저녁때가 되면 우리 영국부대 주변에 얼굴빛이 해쓱하고 몸이 수척한 여인들이 몰려와서 통역인 나에게 호소하는 것이었다. 담요 한 장이라도 좋으니 군인을 소개해 달라고 읍소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내가 부정적인 태도로 나오자,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통역관 아저씨, 동포 여성들과 아이들이 지금 굶어죽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쌀쌀해요.” .. 〈179∼180쪽〉
여자가 몸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음은 누가 어디에서 가르쳤을까요. 어디에서 어떻게 배웠을까요. 한국전쟁 때부터? 일제강점기 때부터? 조선 때에도? 고려 때에도? 이 나라는 없고 힘든 사람들한테 담요 하나 나눌 수 없을 만큼 쪼들리고 버거웠을까요?
손바닥책 <레오 휴버맨/문선유 옮김-노동의 역사>(현장문학사,1989)를 집어듭니다. <김수현 엮음-새로운 카메라사진교실>(흥문도서,1976)도 살펴봅니다. <새로운 카메라사진교실>은 일본책을 몰래 베껴냈구나 싶습니다. 그나저나, 책이름에 ‘카메라사진’교실이라고 적었는데, ‘카메라’와 ‘사진’을 함께 붙여서 적으면 좀 …….
<3> 부산 이야기책
<토박이 (2)>(동보서적,1986)을 봅니다. 부산에서 뜻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서 엮어내는 잡지입니다. 예전에 1호를 본 적이 있으나 2호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봅니다. 2호 뒤로 3호나 4호까지도 펴냈을까요?
.. 우선 쉽게 얘기를 시작해 보자. 낙동강하구둑 건설에 따른 주민보상 문제, 이주대책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제대로 풀어져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는데, ‘낙동강하구매립 공단조성 계획’이 발표되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답답하고 어리둥절하다. 낙동강하구의 드넓은 갯벌과 모래톱을 애당초 누가 언제부터 매립할 생각을 가졌는지, 아니면 하구둑공사를 시작해 놓고 보니 물이 남을 것 같아 이왕이면 더 넓게 하구해역을 매립하여 공단을 조성해서 국가경제에 획기적인 보탬을 주자는 기특한 계획에서 나왔는지,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하구를 매립해 공단을 만들 속셈이었고, 그러려면 하구둑 건설이 절대 필요한데, 이를 모두 밝히면 하구둑 공사조차 더 거센 반발에 부딪혀 착공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에서 이를 숨겼다가 하구둑이 착공되자 짐짓 모른 체 하구매립계획을 이제야 내놓는 것인지 도무지 앞뒤가 엇바뀌어 그 논리를 정립할 수가 없다 .. 〈125쪽 / 낙동강, 그 생명력의 부활을 위해(박정인)〉
낙동강 끝어귀를 막는 공사를 둘러싼 참거짓을 살피는 글을 먼저 읽어 봅니다. 나라에서 밀어붙이는 개발정책치고, 동네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리고 밝히면서 하는 일은 참으로 드물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는 ‘자연 삶터를 살뜰히 가꾸거나 돌보는 일’은 개발이나 발전이 될 수 없고, 자연 삶터를 어떻게든 파헤쳐서 돈벌이가 잘 되는 공장만 올려세우면 반가운 일로 여겨지는지 모릅니다.
<부산교육> 183호(1976.6.)가 보여 구경삼아 들추어봅니다. 책 앞쪽에 실린 화보에는 ‘총력 안보, 학도호국단 교련종합실기대회’ 사진이 여러 장 실립니다. 부산 어디메 있을 운동장에 고등학교 학생 대표(교련단)를 불러모아서 ‘카드섹션’을 시키고 가장행렬을 시킵니다. 전투기 모형을 만들어 차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갈고닦은 젊은 지성, 조국 ……’이라 적은 걸개천도 들고 다니고, 방위성금을 내는 모습도 있고.
다음 화보에는 ‘도시 새마을 운동의 이모저모’가 실립니다. 학생들이 옷을 맞춰 입고 북을 두드리고 동네를 돌면서 ‘새마을 조기 청소 계몽’을 합니다. 학생들이 걸어가는 골목길 한켠에 “근면 자조 협동으로 유신체제 확립”이라는 걸개천이 보입니다. ‘거리질서 확립’이니 ‘쓰레기장을 녹지대로’니 해서, 아이들은 쉴 틈 없이 끌려다닙니다.
.. 3년 전 학생 가정방문의 첫 날―그것도 제일 처음 방문하는 집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학급에서 성적의 저조와 출석불량, 이성교제로 해서 말썽을 부리던 학생의 집을 가기로 작정하고 가정방문에 나섰던 것이다. 그 집은 길 언덕 아래에 있는지라 집안을 훤히 볼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서서 있었기 때문에 대문 입구에서 ‘김순영(가명)’ 하고 학생의 이름을 불렀더니, 그 학생이 대답은커녕 집 뒤로 뛰어가서 하는 말이, “엄마! 선생 왔다”라고 하니, 그 어머니의 대답이, “없다카지, 와?” 하는 것이었다. 이 무슨 날벼락 같은 호통인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학생을 불러 “오늘은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다”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되돌아와 버렸다. 뒷날, 그 학생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대답이 또한 걸작이다. “우리의 동생들이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데, 선생님들이 오실 때마다 음료수와 과자, 그리고 차비를 넣은 봉투를 준비해야 하니 우리 생활에 짜증스러워져서 그렇게 되었으니 용서를 빈다”는 내용이었다 .. 〈176쪽 / 동주여자상고 원수일〉
요즈음은 가정방문을 안 하는 줄 압니다. 하기도 어렵지 싶고, 아이들 집으로 찾아갈 만큼 교사들이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지 싶어요. 교사라는 자리가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만 집어넣는 사람이 아니라 한다면, 아이들이 저마다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부모와 어울리면서 자라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고 느끼는 가운데, 아이마다 가장 알맞는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끔 옆에서 이끌어 주는 몫을 힘껏 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웬만한 중고등학교는 학교옷을 입으니, 똑같은 옷을 맞춰 입는 아이들을 보면, 이 아이들한테 무엇이 개성이고 다양성인지 찾아보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욱이 그 학교옷 속에 숨겨 놓고 있는 아이들마다 다 다른 이야기와 삶을 어떻게 끄집어낼까요. 몇 학년 몇 반 몇 번이 아닌, ‘어느 동네에서 누구와 함께 사는 아무개’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무슨 대학교를 바라는 학생이 아니라, ‘무엇을 꿈꾸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로 마음 기울이는’ 푸른나무로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4> 나들이
<고서점> 안쪽까지 죽 둘러보고 나옵니다. 더 둘러보고 싶어도 아저씨가 몸이 힘들고, 우리도 주머니가 홀쭉해서 책 살 돈이 모자랍니다. 바깥에 내놓으신 책을 한 뭉치씩 들어서 옮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안부 이야기를 나눕니다. 책뭉치를 날라 드리고 싶으나, 아저씨 나름대로 안에다 차곡차곡 쌓아야 하기 때문에 돕지도 못합니다.
“올 때마다 번번이 책도 제대로 구경 못하게 하고 보내네요. 언제 한 번 막걸리 같이 마셔야 할 텐데.” “그러게요, 저도 부산에 오기가 쉽지 않아 한 해에 한 번씩은 오고 두 번을 겨우 맞춰 보는데, 올 때마다 비가 오더니. 그래도 이번에는 비가 안 왔지만, 늘 책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막걸리도 못 마시네요.”
그래도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막걸리잔은 함께 부딪히지 못하지만 마음에 담은 뜻이나 생각이 살며시 만나니까요.
그러나저러나, 다음에 언제 또 부산 나들이를 할 수 있을는지. 2008년 9월에 다섯 번째로 열 보수동 헌책방골목 잔치 때나 나들이할 수 있을는지. 그 사이에 한 번 더 나들이할 수 있을는지.
덧붙이는 글 | - 부산 보수동 〈고서점〉 / 051-253-7220
http://www.oldbookshop.co.kr
지난 9월 마지막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네 번째 헌책방골목 잔치"를 열었습니다. 어느덧 석 달이나 지난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맡기고 찾고 스캔 하고 이러는 동안 시간이 퍽 흐르는 바람에, 좀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느즈막히 올리는 소식이기는 하지만, 헌책방골목 문화, 또 헌책방 일꾼들 스스로 마련하는 지역 문화 잔치, 여기에 2008년에 다섯 번째로 치르고자 또다시 바지런히 준비하고 있을 여러 분들 몸씀을 북돋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몇 가지 기사를 붙여서 띄워 보고자 합니다.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7.12.05 13:18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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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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