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백척간두의 칼날 위에 섰다.
한나라당과 검찰은 BBK를 매개로 유착하였다. 검찰과 삼성은 떡값으로 유착하였다. 한나라당과 삼성은 권력을 매개로 정경유착하였다. 어디 삼성뿐이고 재벌뿐이랴! 전체 독점자본이 수구정치세력과 공고한 동맹을 결성하고 국가 최고의 공권력인 검찰이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난공불락의 성채를 구축하니 이름하여 '한검자 부패동맹'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나라당만을 노려보았다. 한나라당의 몰락을 낡은 정치의 퇴장으로 간주하여 정치발전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나라당 옆을 검찰이 지켜주고 있음을 보지 못했다.
그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임에도 결코 노무현의 옆을 지켜주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검찰 뒤켠에 독점재벌이 웅크리고 있는 줄은 더욱 몰랐다. 이제 다시 보니 한나라당은 부패한 독점재벌의 나팔수, 검찰은 그 하수인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삼성 비자금 문제로 독점재벌의 경제적 지배장치 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배와 사회적 지배를 위한 공고한 시스템을 확인하였다. 독점재벌의 문어발 지배장치는 검찰과 언론, 정치권과 학계를 넘어 시민사회로까지 무한정 확장되어 있다. 삼성이 주목받는 것은 단지 가장 뛰어난 장치를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보도기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꼬리만 자른 채 끝나버린 '삼성 X파일'이라고 하는 것도 실상은 그 시스템의 일환이 아니었던가.
BBK 문제로 검찰의 존재구속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검찰은 결코 국민의 검찰이 아니며 정의로운 지팡이도 아니다. 잠시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의 검찰은 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을 호가호위하던 독재의 앞잡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박정희, 전두환 앞에서 한없이 낮은 존재였지만 전체 국민 앞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권위 그 자체였다. 인혁당 사건이라고 하는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권력형 명언을 남긴 바 있다.
독점재벌과 한나라당의 유착관계는 달리 재론의 여지가 없는 정언명제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이치를 따라 한나라당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이 과정에서 독점재벌과 공공한 부패유착을 구현하였다. 88년 국회 전두환 청문회에서 드러난 정경유착, 다시 94년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파동에서 드러난 정경유착은 5년 전 대선에서 천문학적인 불법 '차떼기' 대선자금으로 확인된 바 있다.
12월 19일 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여론조사를 하는 사람은 정신나간 사람일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조사가 더 필요하고 무슨 예측이 필요하단 말인가. 높게 성채를 쌓아올린 한검자 부패동맹 앞에서는 어떤 도전도 용납되지 않으며, 따라서 더 이상의 이변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전국적 규모에서 한검자 부패동맹을 홍보선전하는 수구부패 언론 앞에서 국민들은 감히 판단을 중지한 상태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단체와 조직은 일제히 그 앞에 일렬종대로 나열하여 권력의 따뜻한 배려를 읍소하는 형국이다. 부패동맹은 '실패한 정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로 전선을 파죽지세로 유린하여 조기에 평정해버렸다.
부패동맹의 맹활약으로 인해 비판도 없고 토론도 없고 선거운동조차도 없는 침묵의 대선국면이 조성되었고 국민들은 적극적인 '주권자'가 아니라 수동적인 '투표권 행사자'로 전락하였으며, 20년을 채 못넘긴 한국의 민주주의는 무력한 민주주의로 병들어버렸다.
부패동맹의 성채 앞에 '일엽편주'
부패동맹의 이 강고한 성채 앞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이든, 창조한국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민주당이든 누가 감히 도전장을 내밀겠는가. 하나같이 바람 앞의 등불이요 일엽편주요 추풍낙엽일 뿐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원죄는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제대로 내리지 못한 데 있다. 낮에 내린 간판을 밤에 주워 뒤집어 사용하니 새로울 수 없다.
열린우리당의 문제를 재론할 이유가 없다면 오직 참회와 속죄를 바탕으로 한 칼날같은 단절의례와 치열한 거듭남만이 방책이었는데, 이들은 여전히 과거를 헤매고 있다. 옛 추억의 희미한 그림자를 더듬으면서 미래의 희망을 말하는 형국이니 어느 국민이 다시 속으랴.
여기에 인지도와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새로운 정치, 국민과 언론의 시선에서 멀어져 있는 진보정치,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선을 겪고 있는 민주당 등이 함께 혼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현상을 음모론으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패동맹의 음모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부패동맹의 음모가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스스로 자초한 결과인 것만은 분명하다. 인과관계와 선후 문제는 나중에 평론가들이 가려줄 문제로 남겨두자.
대통합민주신당이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난관을 돌파한다는 전략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구상이었다. 정동영과 문국현의 후보단일화나 연합정부 수립만으로 강고한 부패동맹을 허물어뜨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러한 후보단일화가 그 이상의 연대를 촉발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서를 제대로 밟지 못한 합당론은 조기에 무산되었고, 정동영과 문국현의 후보단일화는 사실상 결렬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니 이제 민주노동당과는 무엇을 협력할 것인지 이야기조차 꺼내보지 못하고 선거일을 맞게 될 비극적 운명이다.
이제 선택은 자명해졌다. 차떼기와 삼성 비자금과 BBK로 확인된 강고한 부패동맹과 맞서 싸울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싸운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의 문제뿐이다. 이 시점에서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연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은 무의미한 것이다.
백척간두에 서서 '왜 싸워야 하는지' 되물을 것인가
왜군이 부산 앞바다로 밀려들어와 삼도의 백성을 유린할 때 역적의 손자 이순신은 기묘사화의 잘잘못을 물어 따지지 않았다. 백성의 고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다시 300년이 지나 왜군이 강화도로 들어왔을 때 녹두장군은 왜 일제가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조정과 대원군에게 따져묻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도 될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검자 부패동맹이 30년 군사독재의 정교한 변형태로서 그 독수가 전 사회적 파급효과를 갖는 것이라면, 민주와 진보를 동시에 겨냥한 총체적 지배시스템이 올해 대선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대응방식도 분명하다.
대통합민주신당과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4자연대를 통한 대응체제가 불가피하다. '정문권이'의 반부패동맹만이 한검자 부패동맹에 맞설 유일한 대안이다.
그 연대의 방식이 합당이어도 좋고 후보단일화여도 좋고 정책연대여도 무방하다. 그것이 연합정부를 지향하는 것이어도 좋고 단순한 연대여도 좋다. 가장 중요한 최상의 가치는 부패동맹에 대한 연대에 있다. 부패동맹에 저항하는 다른 유효한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4자연대가 최상의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이것만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 어떤 방식이든 한 가지 전제조건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대가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또한 연대가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을 극복하지 못한 대통합민주신당의 자기반성은 꼭 필요하다. 그것도 구두선의 통과의례식 사과가 아니라 통렬한 자기반성과 실천이어야 한다. 국민들의 심장에 깊이 각인된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이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솔선수범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정대화 기자는 상지대(정치학) 교수입니다.
2007.12.09 19:21 | ⓒ 2007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한검자' 부패동맹, '정문권이' 연합으로 깨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