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지금, 대통령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유세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유권자를 직접 만나 한 표라도 더 모으겠다는 것이 후보 캠프의 생각이고, 마음이 바쁘다 보니 하루에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문 후보는 12일 영등포에 있는 당사에서 故 이상윤 경북선대위 유세기획단 단장의 분향소를 찾아 참배를 했고, 곧장 천안으로 달려가 세종국제교육도시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연기군으로 간 문 후보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방문한 후 전주로 가 유세와 인터뷰 일정을 소화했다. 이 정도만 해도 전국의 반을 도는, 힘에 부치는 유세 활동이다.
그런 문국현 후보가 자정 무렵 강남역에 나타났다. 술을 거의 못 마신다는 문 후보가 술이 당겼던 것일까? 아니다. 문 후보는 대리기사들과의 만남을 가지겠다며 나섰고, 대리기사들의 집결지 중 하나인 강남역을 택해 간담회를 연 것이다.
"여러분은 수많은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간담회가 있다는 소식에 강남역의 대리기사들은 삼삼오오 교보타워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대리기사들이 주로 모이는 시간인 새벽 2시보다는 이른 시간이라 많은 수의 기사들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문 후보와의 만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작정하고' 나온 듯했다.
우선 문 후보와 함께 근처 대리운전 회사를 찾은 뒤 대리기사들의 '성토회'가 이어졌다. 대리운전기사들은 무한 경쟁 속에 급격히 떨어진 대리운전 요금, 회사의 횡포와 각종 비용으로 수익이 생기지 않는 고충, 쉴 곳이 없어 공중전화 부스에서 몸을 녹여야 하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문국현 후보는 울분 섞인 그들의 얘기를 듣고자 몸을 가까이하며 차분하게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에서는 조목조목 질문을 하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대리운전 기사분들이 생기면서 교통사고가 연간 20% 가까이 줄었다고 합니다. 매년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이 8억에 달하니까, 여러분은 2조에 해당하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계신 것이지요.
여러분은 취객, 손님뿐만 아니라 그 손님의 가족들의 행복까지 책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손님의 가족들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우선 경기가 좋게 해서 과당 경쟁 없이 적절한 요금을 받으며 일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창출해낸 이익이 여러분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여러분이 일하면서 쉴 수 있는 장소도 마련하도록 제안해보겠습니다. 또한, 이처럼 소중한 일을 하는 여러분이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보겠습니다."
문국현은 왜 대리기사를 불렀을까?
세상에는 참 다양한 직업이 있다. 그 중에는 기업의 회장과 같은 빛나는 직업도 있지만,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손가락질 받는, 남모를 설움을 삼켜야 하는 직업도 많다. 왜 그러한 직업군 중 문국현 후보는 하필이면 대리운전기사와의 만남을 자청했을까?
대리운전기사는 최근 대한민국에서 생겨난 '신종 직종' 중 하나다. 안정된 직장을 잃고 실업자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드는 직종이 바로 대리기사인 것이다.
대리기사는 직종의 특성상 회사의 횡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정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원 간의 단합과 교섭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운전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대리기사로 일할 수 있기에 반항하는 직원은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 이 점을 악용해 대리운전회사는 과당경쟁을 통해 가격을 내리면서 이 부담을 대리기사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공평한 노사관계 때문에 설움을 겪는 노동자는 많다. 대표적인 직종이 할당을 채우지 못해 가짜 회원을 만들어야 하는 학습지 교사이며, 일부 자동차 영업사원, 회사택시기사 등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비슷한 현실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대리운전이란 직종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상징적'인 직종이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며 실업자와 비정규직으로 몰린 이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붙든 것이 바로 '대리운전'이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사회적 경쟁이 본격화되자 자신의 건강을 희생해가며 돈을 벌기 위해 나선 이들이 지금의 '대리'들이다.
'사람이 희망인 사회'와 대리운전
'사람중심'을 늘 외치고 다니는 문국현 후보가 이들을 주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대리기사라는 직종만큼 비정규직화, 양극화의 폐단을 잘 보여주는 직종도 없고, 이 문제의 해결이 문국현식 경제해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문 후보가 대리기사들과의 간담회에서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경쟁을 완화하고, 대리기사분들이 대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은 그의 철학이 대리기사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춰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문 후보는 간담회 자리에서 직접 전화로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다. 간담회에 참석한 많은 대리기사가 행운의 '콜'을 잡기 위해 기다렸지만, 막상 달려온 것은 20대의 한 청년이었다. 경제적 양극화의 비극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하는 젊은이들조차 대리운전시장으로 몰만큼 매정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었다.
늦은 시간 강남역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수백, 수천 명의 군중을 몰며 유세를 하는 여타 후보들의 유세장과는 사뭇 다른 자정의 '간담회'였던 셈이다. 그러나 문국현 후보는 자신의 정책과 비전이 가장 필요한 곳을 찾아 그 해법을 모색하는, 색다른 방법의 대통령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07.12.13 16:14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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